강철 괴물과 직면한 1차 대전 독일군의 대전차 대책<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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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병기들과 숨겨진 명품들

강철 괴물과 직면한 1차 대전 독일군의 대전차 대책<上>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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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괴물과 직면한 1차 대전 독일군의 대전차 대책<上>



세계 제 1 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7월 1일, 더글러스 헤이그(Sir Douglas Haig)가 이끄는 영국 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의 공세로 시작된 솜므(Somme) 공세는 전투 첫날 58,000여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이는 그때까지 하루 사상자 기록으로는 세계 최고 기록이었으며 이 중 3분의 1이 전사자였다.


기관총구 앞으로 이렇게 터벅터벅 걸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솜므 전투 당시..


첫날의 이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개똘팍 영감탱이 헤이그는 다음날 재차 진격을 명령했고 이는 성공하긴 하지만, 또다시 수많은 피해와 함께 결국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진 못했다(1차 대전의 참호전과 보병 닥돌과 관련해선 워낙 많이 떠들었으므로 생략..)

오늘날 가장 논란이 많은 지휘관 중 한 명으로 간주되는 헤이그(그는 무제한적인 낙관주의와 자신감을 고집과 완벽히 결합시킨 인물로 평가된다..담에 기회 되면 탈탈 털어보자..)의 닥돌 명령에 의해 꾸역꾸역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진격한 영국군은 10일 후 독일의 첫 번째 방어선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지만, 이날 독일군은 베르됭 지역에서 15개 사단을 빼내 이 지역으로 이동시켜 곧바로 후방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기관총은 과장된 무기로 대대당 2정이면 충분하다..똘팍 영감 헤이그..


이후 이 지역의 독일군 방어선은 재편되고 더욱 강화되지만 헤이그는 그 명성(?)에 걸맞게 이 공세를 여름을 지나 11월까지 계속하게 되고 비록 몇 번의 괄목한만한 성과도 있었지만 전선은 다시 고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온갖 지랄을 해봐야 그뿐..전선은 다시 교착 상태로..

 

9월 초순, 프랑스 제 10 군까지 이 공세에 가담하고 산발적인 공세가 계속되었는데 이 값 비싼 일련의 행동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영국군은 어떡하든 성과를 내기 위해 9월 15일 또 다른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
이 새로운 노력의 선두 주자는 연합군의 모든 시도를 잔인하게 분쇄시키며 저항한 독일군의 철조망과 기관총이 거치된 견고한 참호 시스템을 박살내기 위해 고안된 영국의 비밀 병기였다.


그래 될 때까지 하는 거이야~!! 이번엔 비밀 병기가 뙇~!!


서부 전선에서의 피 묻은 교착 상태를 끝내기 위해 이때 처음으로 전차가 등장하자 이 강철 괴물의 등장으로 독일군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비록 이 시기 전차들이 많은 기계적 결함으로 그리 신뢰받지는 못하였지만 어쨌든 최초로 전선에 투입된 이 날의 전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런 충격에도 불구하고, 적은 수의, 파워가 부족하고 느린 강철 괴물들은 연합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진 못했으며 솜므 지역의 전투는 11월 중순까지 결국 끝없는 정체 상태로 돌아갔다.


솜므에서 전차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별 뾰족한 수는 못되었다..

 
하지만 이때 최초로 등장한 전차는 그 신뢰성이 한참 떨어지는 병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에 의해 계속 사용되어질 것임은 분명했고, 이것을 깨달은 독일군은 새로운 위협에 맞서 싸울 길을 모색했다.
새로운 영국제 강철 괴물과의 첫 만남을 겪은 독일군 병사들의 과장된 이야기는 이에 대처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독일군 상층부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애들 얘기에 의하면 엄청난 놈이 나타났다더라!! 대책 마련에 올인!!

 
독일이 개발한 초기 대전차 전술은 서부전선의 심각하게 훼손된 지형과 초기 전차들의 기계적 불안정성, 그리고 이 새로운 무기인 전차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된 기괴한 시도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조금이라도 더 항속거리를 늘이기 위해 프랑스군이 시도했던 전차 상부에 여분의 연료 탱크를 설치하는 헛짓거리는 독일군이 꿀렁거리며 굴러오는 전차 마빡에 뻔히 보이는 연료 탱크에 대한 정확한 사격 실력만 갖춘다면 해당 전차와 승무원의 확실한 소각을 보장했다.


뻘구덩도 문제지만 등에 연료 탱크를 지고 다니면 어케 된다고?

 
어쨌든 당시 독일군이 개발한 최초의 가장 효과적인 대전차 대책 중 하나는 초기 전차들은 주변의 모든 보병을 제거하기에 충분한 화기를 갖추려하였고 이는 상대적으로 화력을 투사할 많은 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최대한 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초기 독일군의 대전차 전술은 이 강철 몬스터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었고 당시 독일군 병사들에게 만연해있던 “전차 공포증(tank fright)”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의외로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


독창적 디자인의 수류탄이었던 방망이 수류탄(Stielhandgranate..“stalk hand grenade”의 독일어..)을 4개 또는 6개를 묶어 폭발력을 최대 7배까지 늘였고 “게발트 라둥(Geballte Ladung..묶음 폭탄..)”이라 이름 붙여진 이놈은 전차의 많은 구멍 중 하나에만 던져 넣어도 그 내부가 확실히 파괴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비록 추가된 무게로 인해 던지기가 더 어려워졌으며, 크기가 커지면서 한 손으로 들고 다니기도 버거워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였지만 어쨌든 최초 출연 당시 전차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던 독일군 보병들에게 고장으로 퍼지거나 험한 지형에 갇힌 전차를 공격하여 약점을 파악하게 만들어 주는 등, 이 간단한 무기는 전차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크 따위 별 것 아니다! 접근해서 구멍에 던져 넣으면 된다능~~ 흑~ ㅠ.ㅠ


하지만 이 보병에 의한 근접 돌입과 수류탄 던져넣기는 당연히 위험천만인 일이었고 이를 감안하면 역시 안전한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집속 수류탄의 사용과 마찬가지로 전차가 튀어나오는 긴급 사태에 대응하여 최전방 병사들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조치로, 독일군은 당시 병사들의 표준 개인화기로 지급된 마우저(Mauser) 소총에서 발사되도록 고안된 7.92×57mm 철갑탄을 개발했다.


병사들이 소총으로도 전차를 잡을 수 있도록 하면 되쟈나? 간단하고만~~


K 탄(The K-Round)라 명명된 이 철갑탄은 일반적인 탄환에 사용되는 부드러운 합금 대신 텅스텐 카바이드 관통자가 있는 탄환이었으며 처음에는 참호전 당시 적의 기관총과 저격 위치를 보호하는 금속판에 구멍을 뚫기 위해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 탄환은 최대 100미터 거리에서 12~13mm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고 이는 전차 내부의 승무원을 살상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이 정도 거리에서는 총 3번 이상의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개발된 개인화기용 철갑탄인 K 탄..


또한 독일군은 이 탄환을 소총뿐만 아니라 기관총에도 배치하였고 1917년 6월에 벌어진 메신(battle of Messines Ridge) 전투에 사용되어 당시 대량으로 투입된 영국군의 Mark IV 전차들의 승무원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하였다(마크 IV 전차의 갑옷 두께는 6.1~12mm)


소총탄에도 퐁퐁 뚫리는 이 따위 것이 무슨 전차여?


하지만 1917년 중순을 넘어가면 영국의 전차 설계는 장착된 특수 강판이 발전함에 따라 K 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지점까지 진행되게 되었고, 이 시기 독일군은 표준 철갑탄인 7.92mm K 탄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독일군은 새로운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더욱 가죽이 두터워진 강철 괴물에 맞서야만 했고 그것은 대전차 고속 소총을 개발하여 새로운 대전차 무기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더욱 가죽이 두터워진 강철 괴물에 맞설 대책이 필요하다..

 
이들은 전쟁 전 아프리카 식민지 등에서 코끼리를 사냥하기 위해 제작되던 소위 “코끼리 총(Elephant gun)”과 같은 고성능 소총에 주목했고 실제 영국과 독일 양측은 참호전에서 교착 상태를 깨기 위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급히 공수한 코끼리 총을 배치했으며 영국군은 6~10mm 두께의 강철 방패로 자신을 가리고 자신들의 참호선으로 슬금슬금 접근하는 독일군 스나이퍼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 코끼리 총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영국군은 코끼리 잡던 이놈을 야밤에 접근하는 인간 땅크(?) 잡는 데에..


한편, 독일군은 연합군의 전차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던 코끼리 총의 군용버전을 개발했고 이때 마우저(Mauser) 사에서 제작된 탕크게베르(Tankgewehr) M1918은 세계 최초의 대전차 소총이었으며, 처음부터 장갑화된 목표물을 파괴할 목적으로 설계된 최초의 라이플이자 1차 세계대전에서 실전 투입된 유일한 대전차 소총이었다.
1918년 5월부터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여 15,800정이 생산된 이 대전차 소총은 13.2x92mm  철갑탄을 사용하여 “13mm 대전차 라이플”이라고도 불렸으며 단발의 볼트 액션식 소총이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개발된 대전차 라이플 탕크게베르 M1918..


이 총에는 권총 손잡이와 개머리판이 달려있었지만, 머즐 브레이크(muzzle brake) 같이 엄청난 반동을 줄이는 방법 따윈 없었으므로 반복적인 사격은 사수의 신체에 골 때리는 문제를 발생시키기에 충분했다.
500m에서 18mm, 200m에서 23.5mm, 100m에서 26mm 두께의 수직 강판을 관통시킬 수 있었던 이 대전차 총은 훈련받은 사수와 부사수로 구성된 2인이 1개조로 운영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연대 당 2~3정의 대전차 라이플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반동과 소음으로 인해 적의 저격수, 혹은 전차 자체 그리고 뒤따르는 보병들에게 쉽게 노출된다는 것에 더 해, 제한된 사격 범위와 반동으로 인한 불안정한 정확도로 인해 실제 병사들에게는 크게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wio.ru/tank/ww1tank.htm
http://50anosdefilmes.com.br/2010/a-batalha-de-passchendaele-passchendaele/
https://metro.co.uk/2017/08/21/this-ww1-tank-crew-were-part-of-the-greatest-war-story-youve-never-heard-of-6867884/
http://thechive.com/2016/02/09/ww1-tank-death-trap-schneider-ca-1-68-photos/
http://www.atlantamusic.us/world-war-tanks/
https://owlcation.com/humanities/About-World-War-1-German-Bullets-vs-Allied-T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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