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피카소의 뛰어난 그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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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카소의 뛰어난 그림세계

희천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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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의 뛰어난 그림세계

 


가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프랑스와즈 지로는 이 초상화가 티벳의 승려를 닮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분명히 표정에서 금욕적이며, 엄격함을 보여 주는 초상화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가 누구의 초상이라는 것보다는 그 당시의 피카소의 흑인 조각연구에 연유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1906년 봄, 피카소는 이 작품을 그리다가는 지워 버리고,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그녀를 닮겠지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비로 이 초상화의 모델은 아메리카의 여류 작가 스타인이었다. 구도나 표현의 박력에서는 피카소의 초상화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나, 과연 스타인 자신이 만족했느냐에 관해서는 전하는 바 없다.



푸른 옷의 여인

1901년 마드리드에 머문 피카소는 일련의 부인상을 연작했다. 그것들은 대체로 모자를 쓴 무용수 같은 여인들로서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콤포지션도 대담 하지만 묘사력도 능란한 작품이다. 피카소의 부친이 피카소에게 인물을 묘사할 때는 특히 손을 정확히 그리라고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서도 왼쪽 손의 묘사가 뛰어난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 때 작품 가운데 대부분은 인물이 주제로 되어 있는 데, 그 많은 인물 작품들에서 보여 주는 것은 손의 멋진 묘사력이다. 90도 각도로 뻗은 팔과 양산을 잡은 왼손만 보아도 이 모델의 활달한 성격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아비뇽의 아가씨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직접적으로 힌트를 준 것은 이 벨리아 조각과 흑인 조각이라고 전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오른 쪽 여인의 얼굴 습작이며 다분히 흑인 조각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가면을 쓴 여인으로서 가면 뒤 쪽의 목 처리로 보아서 가면에 숨겨진 머리는 가면보다, 훨씬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왜 <아비뇽 의 아가씨>의 오른쪽 두 여인의 코를 그렇게 과장해서 그렸으며, 또 삐뚤게 했을까. 피카소는 이렇게 말을 남기고 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의 삐뚤어진 코를 보고 그들의 코는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근위기병과 나부

피카소의 최근작에는 이로우터메니아(erotomania)화한 작품이 많고 이것도 그중의 하나다. 나부의 얼굴이 이전과 같이 정면상과 프로필의 융합이면서도 아무래도 정면상으로 살아있지 않은 흠이 보인다. 이런 종류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피카소가 감상자를 향하여. "두 개의 유방 말입니까?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감상자에게 영합이라고 하는 것인지 색채도 품격을 다 잃어버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피카소의 성적 절망으로까지 논하기도 하나, 아무튼 지난 날의 그토록 번쩍이던 피카소는 보이지 않고, 낙서같이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안락의자의 올가의 초상

올가는 러시아 육군 대령의 딸로서 1912년에 디아기레프 발레단에 있었다. 피카소는 1917년 이탈리아 여행 중 올가를 만나서 이듬해인 1918년 7월에 결혼하였는 데 시인 쟝 콕도, 아폴리네르등을 초청하였다. 피카소가 올가를 맞이한 후부터 그 생활은 규칙적이 되었고, 의복도 단정하게 변하여 그의 벗들을 놀라게 했다. 피카소는 이러한 생활을 하는 동안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정 어린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이 작품에서도 다분히 앵그르풍의 리얼리즘이 보인다. 이 밖에도 올가를 그린 작품들이 있으나 그표정들은 한결같이 우수에 잠겨있다.



마 졸리

우리들은 어떤 물체를 한눈에 모든 각도에서 볼 수는 없으나, 큐비즘 작품들은 어느 정도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형태들을 상호 침투하면서 공간을 전개하며, 정지하지 않고 조용히 호흡하는 것은 분석적 큐비즘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합적 큐비즘 시대에 들어서면 화면은 또다시 조용해진다. 다시 평면적인 데로 복귀하는 것이다. 색채의 수도 많아지며, 물론 그 색채란 화려하지 않고 친숙하며 소박한 분위기로 감싸여 진다. 시인 폴 엘뤼아르는 큐비즘에 있어서 "색이란 공간에서 낳아진다기보다는 '색' 그 자체가 공간인 것이다."라고 했다. 분석적 큐비즘 다음에 제작된 비교적 차분한 작품이다.

앉아 있는 피에로

1917년 쟝 콕도의 무용극 '파라드'의 무대 장치와의 상을 맡아 피카소는 무대 위의 인물들에 크게 흥미를 지녔다. 이 발레의 무대 막은 비현실적인 강력한 색채로써 만들어졌다. 그와 같이 이 작품도 노랑, 빨강, 주홍과 같은 소리 높은 색채들이 피에로의 하얀 의상에 흩어져, 비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피카소 '청색 시대' 때도 피에로를 즐겨 그렸으나, 대상이 같다고 하더라고 그 결과는 판이한 것을 보여 준다. 청색 시대의 피에로가 현실이 모습이며 그래서 공감을 더했다면, <앉은 피에로>는 실인생과 무대의 상이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피에로는 인형일 뿐이다.



소의 두개골

피카소는 1946년 12월 이렇게 말했다. '밤의 빛의 효과는 매우 매력적이다. 자연 광선보다는 더 좋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서도 밤에 한 번 찾아와 주기 바란다. 대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광선, 내 그림을 둘러싸고, 뒤 벽에 비치는 깊은 그늘, 이 빛을 당신은 내가 거의 밤에 제작하는 정물화에서 발견할 것이다. "전쟁 중에 피카소는 인간이나 두개골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한 점이다. 또 4월 16일에는 피가 흐르는 두개골, 새하얗게 바랜 염소의 두개골을 흑백의 단순한 구성으로 제작하였다. 흑과 백, 낮에 대한 밤, 폭력에는 결코 굴할 수 없는 피카소의 저변이 있다.




앉은 아를캥

이 그림의 모델은 피카소의 벗인 화가 살바드이다. 피카소는 그를 아를캥으로 몇 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나, 한결같이 초상화로서의 성향이 짙고, 차분히 가라앉은 인물화였다. 아를캥은 원래 이탈리아 희극의 어릿광대 역이나, 여기에서는 웃기기는커녕 오히려 엄숙한 분위기마저 보인다. 피카소의 연구가들은 살바드의 정면상 아를캥과 독일 르네상스의 화가 한스 홀바인이 초상화 <안느 드 크레브>와 비교를 하고 있으나, 오히려 앵그르의 초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무튼 피카소의 신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화가의 초상

출처 : 하면된다51
글쓴이 : 옹고집 원글보기
메모 : 피카소의 뇌속을 파고들려하고 있다. 인간들은 역시 남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발견해 내는 것에 기뻐하는 모양이다. 그의 의식은 보이지 않아 모르겠으나 역시 그림 실력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극사실주의에 끌린다. 그리하여 내 그림의 형편없음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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