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교를 놀린 빨간 엉덩이의 원숭이/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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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하이델베르크

대주교를 놀린 빨간 엉덩이의 원숭이/하이델베르크

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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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전에 오래된 다리 위에서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한때는 이 지방을 호령했던 선제후 경 대주교가 거처했던 곳이라 이름에 걸맞게 화려 했겠지만,

세월이 흐르니 일부 부서진 모습도 보이고...

 

네카어 강을 건너 강남으로 들어가면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가 나옵니다.

하이델베르크는 우리나라가 한강의 남쪽을 개발해 강남 건설을 하기 훨씬 전부터 강남이었네요.

 

그런데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을 보면 원숭이 청동 조각상이 보입니다.

손에 거울을 들고 있는데...

다리를 장식하기 위해 다른 멋진 조형물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원숭이를 이곳에 세워두었을까요?

원래 이 원숭이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하네요.

오래전에 네카어 강 주변에 거울을 든 원숭이가 살았는데 이 거울로 사람의 선악을 구별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 이곳 주민은 전쟁이 일어나면 원숭이에게 거울을 하나씩 나누어 주어

적을 향해 반사하게 했다고도 하고요.

그 반사된 빛을 본 적군은 이곳에 방패를 든 군인이 많다고 착각해 물러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또 마지막으로 늙은 원숭이가 버림받고 낙담한 나머지 사람에게 거울을 비추면서

너도 늙으면 나처럼 된다고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원숭이 조각상이 있는 바닥 아래 쥐를 만지면 다산을 하게 되고

원숭이 머리를 만지면 현명해진다는...

그리고 거울을 만지면 재물 복이 따르고, 손가락을 만지면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방문하고...

리얼리? 그럼 다 만져야지요.

 

뭐든지 만병통치약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곳 원숭이 청동상에서 원숭이 얼굴 안에 직접 머리를 넣고

손으로 거울을 만지면 만사형통하지 않을까 생각해 과감하게 원숭이 얼굴 안으로 머리를 넣었습니다.

이제 현명하고 재물도 따르고 하이델베르크도 다시 방문할 수 있고...

이렇게 하고 보니 원숭이가 비웃는 듯하여 참 바보 같습니다.

역시 철학의 도시답게 원숭이를 등장시켜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을 혼돈에 빠뜨리나요?

사실, 15세기 하이델베르크는 도시 문장으로 원숭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우리가 개를 비하하는 것처럼 원숭이를 천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시와 멸시의 대상인 원숭이를 도시의 상징으로 삼다니요?

이는 당시 하이델베르크는 급진적인 진보 성향이었기에 그런 과감한 결정을 했다네요.

그러니 당시의 사회를 빗대어 비유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했다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입니다.

당시 이 지방을 다스리던 대주교의 궁전이 마인츠에 있었는데 그 방향으로 원숭이 엉덩이를 돌려놓았다고 합니다.

워낙 신교 세력이 강했던 이 지역인데 대주교가 사사건건 간섭을 하니 엿이나 드시라고요.

그러나 7년 전쟁으로 모두 부서지고 지금 우리가 보았던 원숭이 동상은 1979년 게르노트 룸프의 작품이라고 하네요.

 

다리 앞의 원숭이 구경을 하고 구시가지 골목길로 접어들며 앞에 보이는 것은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성령교회(Heiliggeist kirche)가 보입니다.

가운데 마르크트 광장(Heidelberger Marktplatz)이 있고요.

이제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하겠습니다.

 

이 광장은 구시가지의 중심광장이지요.

늘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고요.

역시 하이델베르크의 유명한 중심지역이기에 주변은 여행자를 위한 시설이 대부분이지요.

 

광장 가운데에 보이는 분수에는 헤라클레스 청동상이 있네요.

유럽에서는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중세에는 이곳에서 죄수를 공개적으로 처형했던 장소라고 하니 한이 어린 장소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하이델베르크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네요.

 

가운데 마르크트 광장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마주 보이는 건물은 시청사(Stadt Heidelberg)입니다.

이곳도 30년 전쟁 당시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1703년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 중이라고 하니 역사 또한 대단하네요.

 

시청사 뒤로는 코른 마르크트 광장(Kornmarkt)이 있어 이곳이 하이델베르크의 중심지라고 보아도 되겠네요.

이곳에는 늘 시장이 얼렸고 시청에서 주민에게 알릴 많은 공고문이 붙는 곳이기도 했을 것이고요.

코른 마르크트 광장은 원래 곡물 시장이 열렸던 시장 광장이라고 합니다.

황금빛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 조각상이 있는 분수가 눈길을 끄네요.

광장에 서서 마돈나 상 뒤를 바라보면 하이델베르크 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광장입니다.

광장 뒤로 들어가면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를 탈 수 있는 승강장이 있습니다.

또한 중세에 유행했던 마녀사냥과 같은 일도 이곳 광장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경범죄를 지은 사람은 새장에 매달아 두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시청광장 가운데는 붉은색 둥근기둥 위로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세운 분수가 있지요.

프랑스와 팔라틴 사이에 벌어진 왕위 계승 전쟁은 하이델베르크를 폐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이곳 주민마저도 참혹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전투 중에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은 다른 지방으로 쫓겨나기까지 했다네요.

대부분의 건물 또한 부서져 버렸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전쟁이 끝나고 하이델베르크에는 남은 것이 거의 없어 행정기능마저 뒤셀도르프로 이전했다네요.

이때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150여 명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참혹한 전쟁이었나 알 수 있네요.

선제후인 요한 빌헬름은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건설해 일으키고자 시작한 상징적인 첫 번째 작업이

바로 헤라클레스 분수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모두가 파괴되고 절망 상태에 빠져있었기에 힘을 주는 치어리더로 헤라클레스만 한 것도 없으니까요.

 

1703년 조각가 요한 마르틴 라우브(Johann Martin Laub)에게 분수대를 부탁했고 다른 조각가

하인리히 카라스키(Heinrich Charrasky)에게는 힘자랑에 최고라는 헤라클레스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해

1706년에 완공한 의미 있는 분수 조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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