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희 마지막 동거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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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적】

안두희 마지막 동거녀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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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안두희의 아내 김명희 씨를 1996년 11월 5일 인천지방검찰청 255실로 불러 진술조서를 받았다. 진술을 통해서 안두희에 관해 많은 부문을 알게 된다.

문 : 진술인이 김명희인가요
답 : 예, 제가 김명희입니다.

문 : 진술인의 학력은 어떠한가요.
답 : 경남통영에서 충열국민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안두희와 부부생활을 해왔다고 하였는데, 언제부터 부부생활을 해왔는가요.
답 : 1982. 10월경부터 부부생활을 해왔으나,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문 : 진술인 안두희를 만난 경위는 어떠한가요.
답 : 위 시 경에 저는 서울 송포구 가락동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때 부근에 있는 산에 아침마다 올라가서 베드민턴을 하던 친구 임옥희 부부가 저에게도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서 베드민턴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임옥희 부부를 따라서 같이 운동을 나가 약 1년 동안 베드민턴을 치러 다니던 중 친구 부부가 안 선생이 혼자 살고 있으니까 도와주라고 권유하면서 안두희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문 : 안두희와 동거생활을 시작한 이후 약 14년간 동거생활을 하여 사실상 부부생활을 하여 오면서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안두희는 저에게 혼인신고도 하고 같이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도 다녀오자고 했으나 제가 호적을 다시 옮기기 싫다고 하여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문 : 진술인이 처음 안두희를 소개받았을 때에 안두희가 역사적으로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었는가요.
답 : 제가 안두희를 소개받을 때에 안두희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받은 것이 아니고 안두희가 안영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서 안영준으로 소개를 받았었고 당시 저뿐만 아니라 같이 베드민턴을 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모두 안영준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자였기 때문에 안두희가 역사적으로 어떠한 인물인지에 대하여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그러면 안영준이라는 이름은 가명이고 실제 이름은 안두희이고 안두희가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았는가요.
답 : 제가 안두희와 동거생활을 시작한 곳은 안두희의 아들 안홍보의 이름으로 되어 있던 서울 송파구 가락동 잠실 가락아파트 119동 510호(약 7평이었다 함) 이었는데, 동거 생활을 시작한 후 약 1년이 경과하였을 때에 안두희가 방안에서 보던 책을 놓고 잠시 방을 비웠을 때에 제가 무슨 책인가 하고 궁금하여 그 책을 펼쳐보던 중 책의 뒷 표지 안쪽에 안두희라고 기재되어 있어서 제가 안두희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사촌형이라고 하여서 그때에도 저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에 이사를가 살다가 약 1년이 지났을 때에 남편 안두희가 서울에 다녀온다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 나갔다가 마포구청 앞 노상에서 권중희로부터 나무 몽둥이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 제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안병준이 아니고 안두희라는 사실도 알고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문 : 그러면 그때까지 4~5년 동거생활을 해오는 동안에는 남편이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는가요.
답 : 저희가 위 가락동 아파트에 살던 중에 언젠가 아침에 산에서 베드민턴을 치고 내려오는데 (권중희 저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에 의하면 1984. 5~6경에 있었던 일로 보임) 젊은 기자들이 저와 안두희에게 사진기를 들이댔습니다. 그때 저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기자들을 피해 내려왔었고 안두희도 기자들을 피해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며칠 후부터 며칠동안 계속해서 기자 한 사람이 저희 아파트에 찾아와서 안두희와 바둑을 두면서 안두희로부터 어렸을 때에는 어떠한 부모님과 더불어 생활을 하였는지, 가정 환경은 어떠했었는지 등등에 대하여 묻고 그 대화 도중에 바둑판 아래 소형 녹음기를 놓고 녹음을 하는 것 같더니 곧바로 월간조선에 기자와 남편과 대화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기사에 백범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어서 남편이 백범 선생을 죽인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몰랐었기 때문에 제가 안두희에게 조선일보 기자가 저의집에 찾아와서 과거에 대해 물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자와 대화 내용이 월간조선에 실린 경위는 어떠한지 등등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안두희가 자신이 안두희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백범 김구 선생을 저격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왜 백범 선생을 죽였느냐 묻자 안두희는 백범 선생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에 자신의 아버지가 백범 선생에게 자금을 주는 등 백범 선생과 친하였으나 백범 선생 주변에 빨갱이가 많아서 백범 선생을 저격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안두희의 이 부문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김구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다. 중국 관내를 떠나지 않았으며, 안두희 아버지는 친일파 기업인이었다. - 필자)

문 : 같이 살던 사람이 안영준이 아니고 안두희라는 사실을 알고서 어떠한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요.
답 : 그때까지 제가 안두희와 같이 사는 동안 안두희는 인자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또한 남들에게도 자존심 상하게 하지 않는 등 저에게는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자여서인지 역사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고 또한 백범 선생을 죽인 사건이 그렇게 큰 사건인지도 몰랐었기 때문에, 또한 여러 번 백범 선생을 죽인 동기 등에 대하여 물어보는 것은 저희 부부사이에 별로 좋지도 않을 것 같아서 더 이상 안두희에게 백범과 관련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문 : 가락아파트에서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로 이사한 경위는 어떠한가요.
답 : 당시 가락아파트가 약 7평으로 너무 작았기 때문에 시골에 가서 좀 넓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골로 이사를 하자는 말이 나와 이사를 한 것입니다.

문 :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에는 얼마 동안이나 살았는가요.
답 : 약 1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1987. 3. 경 마포구청 앞에서 안두희가 권중희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은 다음에는 다시 아파트생활을 하기로 하여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약 1년 살았고, 그 다음인 1988. 6. 경에 다시 지금의 주거지인 인천 중구 신흥동 3가 소재 동명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문 : 진술인이 지금까지 안두희와 동거해오는 동안 생계비는 어떻게 조달을 했는가요.
답 : 안두희는 전처와의 사이에 3남2녀의 자녀들이 있었고 현재는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 자녀들이 약 3개월마다 한번씩 약간의 생활비를 보내주어 그것으로 생활비를 하였습니다.

문 : 안두희가 이번 사건을 당하기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최근 안두희의 건강상태는 어떠했는가요.
답 : 약 1년 전인 1990년 경부터 중풍에 걸려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하였고 말도 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3년 전인 1993. 11. 경부터 치매증상이 왔습니다. 치매가 온 직후에는 창문 밖으로 물건을 버리기도 하는 등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더니 점점 그러한 증세는 없어졌으나 집안에서 화장실만 다녀오는 정도로 움직이고 그외에 거동을 못하였습니다. 어느 때에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여 자신이 누워있는 자리에서 대소변을 누기도 했습니다.

사건 당일날 아침에도 제가 오랜만에 면도를 해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가라입힌 직후에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번에 사건을 당하기 전에 제가 보기에는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이 보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이번에 1996. 10. 23. 11:30경 안두희가 박기서로부터 살해되는 현장에 있었지요.
답 : 예. 위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사건 당일 제가 며칠 만에 안두희에게 목욕을 시켜주고 옷을 가라 입혀준 다음 제가 슈퍼에 가서 쌀도 좀 사고 비누 등 생활필수품도 몇 가지 사러 가려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기서로부터 변을 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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