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플랫단조 Op.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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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소나타 (동영상)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플랫단조 Op.35 ☆

朴泳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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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ave - Doppio movimento

Pollini plays Chopin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5

게시일 : 2010. 2. 26.
Frédéric Chopin composed his Piano Sonata No.2 in b-flat minor, Op.35

mainly in 1839 at Nohant near Chateauroux in France, although

the third movement, which comprises the funeral march had been

composed as early as 1837.
The sonata consists of four movements.

1. Grave Doppio movimento
2. Scherzo
3. Marche funèbre: Lento
4. Finale: Presto

                                  Grigory Sokolov plays Chopin Sonata No.2, b-flat minor, Op.35 1st mvt

게시일 : 2008. 3. 5.  (I. Grave, doppio movimento)
Chopin, Piano Sonata No.2 in b-flat minor, Op.35
Grave : Doppio movimento

Pollini plays Chopin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5 - 2. Scherzo

게시일 : 2010. 2. 26.

Chopin - Funeral March (3악장 장송행진곡,Orchestral version)

게시일 : 2014. 11. 15.     엘가(Edward Elgar)편곡에 의한 3악장 관현악버젼 

Sir Adrian Boult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1975
Chopin's Funeral March from his Piano Sonata No.2 in b-flat minor,

was transposed into D minor and transcribed for full orchestra

by Sir Edward Elgar, in 1933.

Its first performance was at his own memorial concert the next year.

It was also transcribed for large orchestra

by the conductor Leopold Stokowski

this version was recorded for the first time by Matthias Bamert.

쇼팽 -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 장송행진곡

게시일 : 2018. 12. 13.   이국재 아나운서 (추천 클래식 82회)   Marche funèbre : Lento                            

     Sonata No.2 Op.35 in -b Flat minor "Funeral March"   Arthur Rubinstein  

Pollini plays Chopin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5 - 4. Finale. Presto

게시일 : 201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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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y Kissin plays Chopin Sonata No.2 Op.35

게시일 : 2012. 2. 29.                

Seong-Jin Cho – Chopin Sonata No.2 b flat minor Op.35 (second stage)

게시일 : 2015. 10. 9.

Narodowy Instytut Fryderyka Chopina/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2015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Polish Television TVP 

       

                       Chopin playing the piano in prince Radziwills salon.                       

                           Henryk Siemieradzki, 1887년작                           


          

                                     

작곡 연도 : 1837~1839년                                                                                                                  

작곡 장소 : 쇼팽의 연인 죠르쥬 상드가 살던 프랑스 베리주 노앙(Nohant)의 저택.

출판/판본 : 작곡은 1839년 여름.

단, 제3악장의 <장송 행진곡>은 단독으로 1837년에 작곡. 출판은 1840년.

헌정, 계기 : 헌정한 대상은 없음. 이 <장송 행진곡>은 잃어버린 조국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이 있음.

초연 연도 : 미상

초연 장소 : 미상

초연자 : 작곡가 자신으로 추정됨.

                             1악장 그라베 도피오 모비멘토 b flat 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2악장 스케르초. e flat단조 3/4박자. 3부 형식.                                                                

3악장 마르슈 퓌네브로 b flat단조 4/4박자. 3부 형식. 유명한 <장송 행진곡>이다.

4악장 프레스토 b flat단조 2/2박자.

I. Grave - Doppio movimento (06 : 10) 신음하는 듯한 어둡고 무거운 화음으로
4마디의 서주에 이어 과격한 저음부의 펼친화음의 반주 위에 조급한 제 1주제가 제시된다.
곡은 불안한 가운데 점차 거칠어 지고 과겨해지나 애절한, 그리고 조용한 D플랫장조의
제2주제가 나타나 어느정도 정상적인 분위기를 되 찾는다.
재현부의 첫 머리에 제2주제가 먼저 나온 것도 관례적인 소나타 형식과는 다르며, 
종결부에서 제1주제의 단편적인 동기가 회상되고 끝난다.
II. Scherzo - Piu lento - Tempo I (07 : 03) 곡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로 시작되어
점차 정감이 고조되면서 격렬한 공포의 분위기 마저 느끼게 한다. 마치 검은 먹구름이
감돌고 뇌성이 울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듯 반음계적인 연속악구가 이어진다.
퓨 렌토의 중간부인 트리오는 마치 천사의 음성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운 주제로 된 감미로운
부분으로, 다시 스케르쪼의 주부가 반복된 다음 중간부의 주제가 종결부의 선율로 되풀이
되어 여운을 남긴다.
III. Marche Funebre (Lento) (09 : 14) 유명한 "장송행진곡" 으로, 
 이 곡은 소나타가 착상된 이전 1837년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잃어버린 폴랜드의 조국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 국민의 고통과 탄식이 그의 마음에
반영된 인간만이 쓸 수있는 음악이다" 라고 알려지고 있듯이 조종과 같은 저음위에
장송 행렬의 무거운 발걸음을 묘사하듯 정중한 행진곡 주제가 나타난다.
중간부의 트리오는 무겁고 침울한 화음과는 달리 비통한 심정을 위안하듯 조용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주부의 행진곡이 되돌아와 우리들을 슬프게 하지만 마치 장송 행렬이
멀리 사라지듯이 조용히 끝난다.
IV. Finale : Presto (01 : 41) 대단히 짧은 악장으로 이 곡은 시종 동음으로 연주되는 
 셋잇단 음표가 반복되는 특이한 악상을 가지고 있다. 황량항 폐허의 고독감과 처참한 느낌을
주는 동기로 시작되며, 이 악상은 지칠줄 모르고 계속되어 끝까지 동일한 악상으로 일관 한다.
슈만은 이 악장을 가리켜,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조롱에 가깝다.
그러나 이 비선율적인 즐거움도 없는 악장에서 반항 하려는 혼을 힘센 손으로 누르고 있는
어떤 무서운 혼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마치 매혹되듯이 불평도 못하고 그렇다고 칭찬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입장에서 복종할
수 밖에 없다" 라고 했으며,
클라크는 "가을 바람이 새로운 묘 위에 나뭇잎을 뿌리고 있다" 라고 詩的 표현을 하고 있다. 
▣ 쇼팽 피아노 소나타 제2번 b-flat단조 이 소나타는 1839년 여름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1804 - 1876)의 고향 노앙(Nohan)에 있는 그녀의 저택에서 작곡되었다.
쇼팽에게 그곳은 아주 좋은 정신적, 육체적 안식처였던 것 같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중부의 평화로운 곳에서 그는 애인인 상드와 세상살이의
고달픔에서 벗어나 평안한 생활을 만끽했다. 그 생활은 결핵으로 점점 쇠약해 가는
그의 육체적 정신에 큰 생기를 불어 넣었다. 특히 1839년은 그 전해에 마조르카 섬에서의
요양이 실패로 끝나, 그해 봄 프랑스로 급히 돌아온 직후여서 차도에 더욱 큰 효과가 있었다.
따라서 그의 창작력도 되살아나 "장송 행진곡" 이 붙은 이 소나타가 작곡되었다.
이 곡이 그 해 여름 노앙에서 작곡되었다는 것은 쇼팽이 친구인 폰타나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b-flat단조 소나타를 한 곡 작곡하고
있는데,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장송 행진곡" 이 이 곡 안에 들어갈 것 같네.
알레그로 악장에 이어서, e-flat단조의 스케르초가 되고, 그 다음이 행진곡,
그리고 마지막에 악곡 세 페이지의 짧은 피날레가 있어. 행진곡 다음에 왼손이 오른손과
같은 음(유니즌)으로 대화하지." 악곡은 위의 편지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미 1837년에
작곡된 "장송 행진곡" 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임에 틀림없다.
이 "장송행진곡" 은 잃어버린 조국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도 있어,
곡 전체가 이 점을 보다 확대하여 강조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카라소프스키(Moriz Karasowski)는 "이런 '장송행진곡' 은 온 국민의 고통과 비탄이 
 마음속에 번영되어 있는 사람만이 작곡할 수 있다." 라고 3악장의 "장송행진곡" 에 대하여
회상하고 있다. 이어지는 D-flat장조의 트리오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평온과
위안을 주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맑은 선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곡상의 구성에 대해서 슈만은 "이 작품을 소나타라고 부르려는 생각은, 농담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시적이 기분일 뿐이다.
왜냐하면 쇼팽은 그의 난폭한 네 아이들(4악장)을 하나로 동여매어, 어떤 곳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것처럼 여러가지 논의를 낳았지만, "장송 행진곡"을
발상의 중심으로 하여 전체를 조립하는 방법에는 일관된 논리가 엿보인다.
비록 통상적인 소나타 구조에 대한 악속을 무시했다고 하더라도 여러가지 소타타 중에서
이 작품 만큼 감성과 서정이 가득하고 , 독창성이 풍부한 작품도 드물은 그런 의미에서
소나타사에 빛나는 걸작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곡은 1839년 여름이지만,
제3악장의 "장송 행진곡" 은 단독으로 1837년에 작곡되어 1840년 출판되었다.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7.1 - 1876.6.7)는 자유 분방한 연애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아망틴 뤼실 오로르 뒤팽(Amantine Lucile Aurore Dupin)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4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부 프랑스의 베리주 노앙에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22년 12월 10일, 18세때 지방의 귀족인 뒤드방 남작과 결혼하였으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고, 1831년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파리로 옮겼다.

1832년 친구의 권유로 신문소설 《앵디아나》를 써서 일약 유명해지면서부터 남장 차림의

여인으로 문인들 사이에 끼어 문필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의 자유 분방한 생활은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특히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적인 연애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사랑의 여신’이었다.

그녀의 일생은 모성애와 우애와 연애로 일관된 자유 분방한 생애로서 그야말로 낭만파의 대표적

작가다운 모습을 보여 주여주고 있으며, 선각적인 여성해방운동의 투사로서도 재평가되고 있다.


그는 뮈세쇼팽 등의 예술을 사랑하였으며, 2월 혁명 때에는 크게 활약하였다.

그의 문학 활동은 크게 4기로 나누는데, 자서전적인 작품을 쓴 제1기에는 <앵디아나>,

<발렌티>, <렐리아> 등이 있으며, 인도주의와 사회주의적인 작품을 쓴 제2기에는

<프랑스 여행의 길동무>, <안지보의 방앗간지기> 등이 있다.

제3기는 전원 소설인 <마의 늪>, <사랑의 요정> 등이 있고, 제4기는 동화와 희곡을 쓴 안정된

말년의 시대로서 <빌르메르 후작>과 그의 최고 걸작인 <내 생활의 역사>가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인도적인 이상주의와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이 넘쳐 있으며, 스탈 부인과 함께

유럽 여성 문학의 창시자이다.


일반적인 프랑스어 발음 및 표기법에 의하면 "Sand"에서 "d"는 묵음으로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상"으로 표기해야 하지만, 조르주 상드의 성 "Sand"는 한때 연인이었던

쥘 상도(Jules Sandeau)의 성(姓)인 상도(Sandeau)를 축약한 필명이기 때문에 'd' 발음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상드"로 표기한다.


연애 소설 《앵디아나》 (1832년)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1833년)

인도주의적 사회소설 《콩쉬엘로》 (Consuelo, 1842년)

전원소설 《마(魔)의 늪》 (1846년)

기아 프랑수아》 (1848년)

사랑의 요정》 (1849년)

피리 부는 사람들의 무리》 (1853년)

회상록 《내 생애의 역사》 (1854년 ∼ 1855년) 등.

특히 그의 편지(26권)는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쇼팽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작가 조르주 상드(1804~1876)입니다.

쇼팽보다 6년 연상이지요. 오늘은 이 유명한 여성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시골 영주의 안주인으로 살 수 있는

여성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뒤드방 남작과 헤어진 채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들어서지요.

그게 1831년의 일이었고 이듬해에  앵디아나(Indiana)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한다.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은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사용한 필명이었는데 이후에도 계속 같은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한데 ‘조르주’는 남자 이름이지요. 영어로 하면 ‘조지’가 됩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여성작가들이 남자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사실 ‘소설 쓰기’는 그 무렵의 지적인 부르주아 여성들이 도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문직’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차별’이라고 해야 할 성역할이 엄연히 존재했으니까요.

여성의 참정권 제한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에서도 여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학 교육을 받아야 가능했던 철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이름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이 활약할 수 있었던 분야로 ‘소설 쓰기’ 외에 또 다른 것을 떠올려보자면

아마도 음악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남성들이 주도했습니다.

쇼팽과 상드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의 기억나는 여성 음악가로는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 또 멘델스존의 누나였던 파니 멘델스존 등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한데 당시에 작가 조르주 상드는 과연 어느 정도의 인기를 누렸을까요?

한마디로 말해 엄청났습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발자크나 빅토르 위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영국에는 찰스 디킨스가 있었습니다.

상드는 불어로 소설을 썼지만 영국에서도 번역돼 인기를 누렸던 작가였고,

그녀가 받았던 원고료는 앞에서 언급한 ‘세 분’보다 오히려 한 수 위였지요.

게다가 상드에게는 이른바 ‘무명 시절’이 없었습니다. 처녀작이었던앵디아나』

요즘말로 ‘대박’이 나면서 단숨에 유명작가로 부상했습니다.

 

그녀가 파리로 들어섰던 1831년에 폴란드의 청년 쇼팽도 역시 파리에 옵니다.

물론 우연이었겠지만 훗날 두 사람의 열애를 떠올린다면 필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830년 11월에 폴란드를 떠난 쇼팽은 오스트리아 빈에 체류하다가 프랑스 파리로

들어온다. 그 여정 중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을 때, 조국 폴란드의 독립운동 봉기가

러시아 군대에 진압됐다는 소식을 듣고 연습곡 12번 ‘혁명’을 작곡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좀 불투명합니다. 실제로 음악가 쇼팽이 ‘폴란드 민족주의자’로

채색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는 조국 폴란드를 분명히 사랑했고 자신의 음악에, 특히 ‘마주르카’에 폴란드

민속음악의 체취를 강하게 담아내기는 했지만

민족주의 운동가로서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좀더 보편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할 성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쇼팽을 일컬어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 수식어야말로

쇼팽을 설명하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서양음악사의 인물 수식어는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경우들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악의 어머니 헨델’일 겁니다.

같은 시대의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칭해놓고 그와 대구를 이루는 표현으로 등장한 듯한데,

참으로 얼토당토 않은 수식어입니다. 하지만 쇼팽의 경우에는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물론 이런 표현 앞에서 쇼팽보다 한 살 아래인 리스트를 먼저 떠올릴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두 사람은 당대의 피아노 음악을 수 놓았던 천재들입니다.

쇼팽에 비해 리스트의 피아니즘은 좀더 소설적이고 영화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지점에서 또한 떠올릴 것은 당대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차지했던 위상입니다. 

19세기로 접어 들면서 비약적인 발전과 개량을 이룬 악기, 그와 더불어 대량생산과 대량 보급이

가능해진 악기로 피아노를 빼놓을 수가 없다. 말하자면 19세기 초중반에 가장 인기 있던 악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악기가 바로 피아노였습니다.

집안의 거실에 프랑스산 플레옐이나 영국산 브로드우드, 혹은 독일산 베흐슈타인 피아노를

들여놓는 것이 교양과 품위의 상징이던 시대였다.

오늘날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스타인웨이는 이보다 조금 후발주자였습니다. 
 
음악의 발전은 악기 발전과 궤를 같이 합니다. 쇼팽과 리스트는 ‘피아노 르네상스’의 선택을

받은 음악가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831년 9월, 기진맥진한 심신으로 파리에 들어선 쇼팽은

약 6개월간 꽤나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주머니에 돈도 떨어진데다 파리에서는 아직 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듬해 2월에 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가졌던 데뷔 연주회가 큰 성공을 거둡니다.

조르주 상드가 처녀작 <앵디아나>로 일약 유명작가 대열에 올라섰던 바로 그 해에, 쇼팽은

피아노 회사 플레옐이 만든 콘서트홀에서 성공적인 데뷔 연주회를 치렀던 것입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836년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였습니다.

남장을 하고 시가를 피우는 유명 여성작가, 아마도 사회주의자였을 조르주 상드에게 쇼팽은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또한 확실한 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의 강렬한 개성에 끌렸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약 1년 뒤부터 전개된 둘의 열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첫 만남에서 진짜로 거부감을 느꼈다면 아마 둘은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두 사람은 1838년 가을, 스페인 마요르카 섬으로 가서 동거 생활을 시작합니다.

상드의 두 아이들인 모리스와 솔랑즈도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마요르카에서의 생활이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두 사람과 아이들은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살았는데 주거 여건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상드와 쇼팽의 관계를 의심한 동네 사람들의 비난과 구박도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기가 닥치는 바람에 몸이 약한 쇼팽은 건강을 크게 상한다.

아마도 폐병으로 추정되는데 쇼팽은 이때 각혈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상드는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지만 아무 차도가 없자 할 수 없이 마요르카 섬을 떠납니다.

마르세이유에서 잠시 요양을 한 후,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 중부의 노앙(Nohant)으로

쇼팽과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이때부터 1846년까지 쇼팽과 상드는 노앙과 파리를 오가며 지냅니다.
 
상드는 쇼팽의 음악인생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특히 노앙 시절은 쇼팽의 삶에서 매우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쇼팽, 기질적으로 예민한데다 신체적

질병까지 있었던 그는 상드의 모성애적 사랑에 큰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물론 당대와 훗날까지도 일부 남성들은 상드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험담을 퍼부었다.

남성 편력이 많은데다 과시욕이 넘치는 여자, 소설이 많이 팔리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는 못한 B급 작가라는 등의 비난이 많았습니다.

보들레르와 니체는 아주 대놓고 상드를 욕했던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쇼팽과의 관계에서 상드가 보여줬던 태도는 헌신적이었습니다.

귀족적 취향에 까탈스럽고 병약한, 때로는 상드의 남자관계를 의심하기까지 했던 쇼팽의 곁에

상드는 9년간이나 함께 지낸다. 지나치게 모성애적인 연애관계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상드는 쇼팽에게 행복과 영감을 줬던, 어머니 같은

연인이었고 예술의 뮤즈였습니다.     


쇼팽의 창작적 전성기는 바로 그 시기, 상드와 사랑에 빠져 있던 마요르카에서 노앙까지의

시절이었습니다. 마요르카에 머물던 시기에 쇼팽은 24곡의 전주곡을 완성했고, 노앙 시절에도

많은 곡을 썼지만 그중에서도 <소나타 2번 b플랫단조>와 <소나타 3번 b단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자는 노앙에 당도한 직후였던 1839년 여름에, 후자는 노앙 시절의 막바지였던

1844년 여름에 작곡했습니다.

 

이 두 곡 중에서 소나타 3번을 음악적으로 더 원숙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장송’이라고 불리는 소나타 2번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형식적 완성미는 3번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감성적으로 호소력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절망적인 색채감, 무겁고 어두운 리듬이 두드러진 소나타입니다.

특히 3악장 ‘장송행진곡’이 유명한데 쇼팽은 이 악장을 1837년에 이미 작곡했다가

2년 뒤에 소나타 2번에 포함시키지요.

 

1악장은 네 마디의 무겁고 느린 서주로 막을 엽니다. 이어서 곧바로 빨라집니다.

왼손으로 저음부를 격렬하게 짚어나가면서 오른손으로 짧은 악구를 집요하게 반복하는

첫번째 주제, 그리고 두번째 주제에서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이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뜨거워집니다. 끊어 치는 리듬으로 돌진하듯이 막을 여는 2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딴딴다다단’ 하는 리듬형을 잘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이어서 우아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중간부가 등장했다가 다시 무겁고 저돌적인 스케르초,

그리고 마지막 코다에서 중간부에 등장했던 우아한 악구가 다시 얼굴을 내밉니다.

긴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입니다.

 

이어서 소나타 2번의 백미인 3악장 ‘장송행진곡’으로 들어섭니다.

마치 장송의 행렬이 서서히 걸음을 떼는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무겁고 장엄하면서도 비애감이 느껴집니다. 장송의 발걸음이 점차 크고 무거워집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중간부의 애수 어린 선율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마 처음 듣는 분들도 단번에 마음을 빼앗길 만한 선율일 겁니다.

마지막에 다시 장송의 주제로 돌아왔다가 곧바로 짧은 피날레 악장에 들어서지요.

이 피날레는 왠지 그로테스크합니다. 셋잇단음표를 양손으로 계속 연주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악구를 펼쳐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강렬한 포르티시모 한 방으로 음악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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