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1)

댓글수0 다음블로그 이동

불교자료실/초기불교

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1)

마성
댓글수0

B008-1.pdf

 

 

이 글은 Walpola Sri Rahula의 What the Buddha Taught (London: Gordon Fraser, 1959)를 완역한 것입니다.

PDF 파일을 출력하여 활용하면 초기불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역자 주 --

 

 

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월폴라 라훌라 지음

마성 옮김

 

팔리문헌연구소

 

2007

 

 

 

차   례

 

 

 

서문

머리말

붓 다

 

제1장 불교도의 마음가짐

인간은 가장 존귀하다/ 자기는 자기 자신의 의지처/ 책임/ 의심/ 사상의 자유/ 관용/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진리에는 표식이 없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보고 이해하라/ 진리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뗏목의 비유/ 상상적 공론은 불필요하다/ 실천적 태도/ 유행자의 비유

 

제2장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

불교는 비관주의도 낙관주의도 아닌 현실주의다/ 둑카의 의미/ 경험의 세 가지 양상/ 괴로움의 세 가지 양상/ 존재란 무엇인가?/ 오온(五蘊)/ 물질과 반대되는 정신은 없다/ 흐름/ 생각하는 자와 생각/ 삶은 시작이 있는가?

 

제3장 두 번째 고귀한 진리(集聖諦)

정의(定義)/ 네 가지 음식물(四食)/ 고와 윤회의 근본 원인/ 죽음은 무엇인가?/ 재생(再生)은 무엇인가?

 

제4장 세 번째 고귀한 진리(滅聖諦)

열반이란 무엇인가?/ 언어와 절대 진리/ 열반의 정의(定義)/ 열반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 진리란 무엇인가?/ 열반과 윤회/ 열반은 결과가 아니다/ 열반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잘못된 표현/ 아라한 사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무아(無我)라면 누가 열반을 실현하는가?/ 현법열반(現法涅槃)

 

제5장 네 번째 고귀한 진리(道聖諦)

중도(中道) 혹은 팔정도(八正道)/ 지혜와 자비/ 윤리적 행위/ 정신적 수행/ 지혜/ 두 가지 종류의 이해/ 사성제에 대한 네 가지 의무

 

제6장 무아(無我)의 교의(敎義)

영혼 혹은 자아란 무엇인가?/ 신과 영혼: 자기보호와 자기보존/ 역류문(逆流門)의 가르침/ 분석적․종합적 방법/ 연기법(緣起法)/ 자유의지의 문제/ 두 가지 종류의 진리/ 어떤 잘못된 견해/ 붓다는 분명히 ‘자아’를 부정한다/ 붓다의 침묵/ 자아관념의 막연한 생각/ 자아가 없다면 누가 업(業)의 결과를 받는가?/ 무아(無我)의 교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제7장 명상, 정신수양

잘못된 견해들/ 명상은 삶의 도피가 아니다/ 두 가지 형태의 명상/ 염처(念處)/ 호흡에 관한 명상/ 행위에 대한 집중/ 현재 순간에서의 삶/ 감정에 관한 명상/ 마음에 관한 명상/ 윤리적․정신적․지적 주제에 관한 명상

 

제8장 붓다의 가르침과 현대 세계

잘못된 견해들/ 모두를 위한 불교/ 매일의 생활 속에서/ 가정과 사회생활/ 재가자의 삶을 높이 존중했다/ 어떻게 불교도가 되는가?/ 사회·경제적 문제/ 빈곤: 범죄의 원인/ 물질적·정신적 진전/ 재가자를 위한 네 가지 종류의 행복/ 정치·전쟁·평화에 대하여/ 비폭력/ 통치자의 열 가지 의무/ 붓다의 메시지/ 이것이 실용적인가?/ 아쇼까왕의 사례/ 불교의 목표

 

경전 초역(抄譯)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다. / 불의 설법 / 보편적 사랑 / 축복 / 모든 근심과 걱정을 여의다 / 옷감 조각의 비유 / 올바른 관찰의 기초 / 시갈라에 대한 충고 / 진리의 말씀 / 붓다의 마지막 말씀

 

약어표

정선된 참고문헌

용어 풀이

역자 후기

 

 

 

서   문

 

 

폴 데미에빌

프랑스 학술원 회원, 프랑스 대학의 교수

파리 고등연구원의 불교학 학과장이다.

 

여기에 이 종교의 가장 훌륭한 자격을 갖추고 학식 있는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에 의해서 결연한 현대의 정신으로 인식된 불교의 해석이 있다. 월폴라 라훌라 박사는 세일론에서 불교 승려의 전통적인 훈련과 교육을 받았으며, 붓다의 계율이 아쇼카왕 시대부터 번영했고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그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 섬의 선도적인 사원교육기관(Pirivena) 가운데 한 곳에서 저명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는 고래의 전통으로 성장하였지만 모든 전통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때인 이 시대에는 국제적인 과학적 학문의 정신과 방법으로 방향을 전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세일론 대학교에 들어가서 문학사 학위(런던)를 받았으며, 세일론 불교사에 관한 우수한 논문으로 세일론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켈커타(Calcutta) 대학교에서 저명한 교수로 재직하면서 티베트에서부터 극동 지역 불교를 지배하는 양식인 大乘(Mahāyāna)의 고승과 교제하면서 그는 초교파적 식견을 넓히기 위해서 티베트어와 중국어로 된 경전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가 대승의 저명한 철학자 아쌍가(Asaṅga, 無着) ― 그의 중요한 저작은 원래 산스끄리뜨어(Sanskrit, 梵語)로 씌어졌지만 소실되었고, 단지 티베트어와 중국어 번역본으로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의 연구에 대비하기 위해 파리(소르본) 대학교에 들어옴으로써 우리에게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라훌라 박사가 황색 가사를 두르고, 서양의 공기를 마시며, 우리의 혼란스런 거울 속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인 종교의 보편적 반영을 찾으면서 우리와 연구한지 8년이 되었다.

 

그가 서양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친절하게 나에게 자문을 구했던, 이 책은 산스끄리뜨어로 된 ‘아가마’(Āgama, 傳承)와 팔리어의 ‘니까야’(Nikāya, 正典的 集成)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경전에서 찾을 수 있는 불교 교설의 근본적인 원리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놓은 명료한 설명서이다. 이 경전들에 대하여 견줄 데 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라훌라 박사는 계속하여 거의 그것들만을 인용했다. 경전들의 권위는 수없이 많았고, 현재도 많은 불교의 부파들로부터 이의 없이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글자 자체의 뜻 이상으로 그 정신을 보다 좋게 해석할 작정으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결코 지금까지 이 경전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해석은 수세기동안 광대한 지역을 통해 불교가 확장되는 동안 실로 가지각색으로 행해져 왔으며, 계율은 한 가지보다 많은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여기 인문주의자이며 합리주의자이고, 어떤 점에서 소크라테스적이며, 다른 점에서는 복음주의자, 혹은 거의 학술적인 라훌라 박사에 의해 제공된 불교의 양상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믿을 만한 경전적 증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는 이 증거가 경전들을 옹호하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빈틈없고 정확하게 번역된 그의 인용에 덧붙인 설명은 명료하고, 간결하며, 올바르며 모든 학설 따위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가 팔리 자료 안에서 대승의 모든 교설을 재발견하고자 원했을 때와 같이 그 가운데 몇 가지는 논쟁으로 이끌겠지만, 이들 자료에 대한 그의 정통함은 그에게 이 자료들이 새로이 조명할 수 있게 한다. 그가 현대인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지금 여기 저기에서 제기된 현대 세계의 특정한 사상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 무신론 · 실존주의 · 정신분석학 등과의 비교를 강행하는 것을 삼갔다. 이것은 독자가 진정한 학문적 업적으로서 자신에게 대단히 풍부하게 제시된 한 교설의 적용 가능성, 즉 현대성을 평가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머리말

 

오늘날 전세계에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수많은 단체와 학습 그룹들이 생기고, 붓다의 교설에 관한 다수의 책들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진짜 적임자가 아닌 사람들 혹은 주제를 잘못 해석하고 나타낸, 타종교로부터 끌어온 오도된 가정들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한 사람들에 의해서 씌어진 것은 유감스럽다. 최근 불교에 관한 책을 저술한 한 비교종교학 교수는 붓다를 시봉한 아난다(Ānanda, 阿難)가 빅쿠(Bhikkhu, 比丘)라는 것조차 모르고 그가 평신도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책들에 의해 전파된 불교지식은 독자들의 상상 속에 남겨질 수 있다.

 

나는 이 부족한 책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붓다의 실제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나 이에 대해서는 교육받은 바가 없는 학식과 지성을 갖춘 일반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독자를 위해서 나는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현존의 기록이라고 학자들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팔리 원전인 띠삐따까(Tipiṭaka, 三藏)에서 찾을 수 있는 붓다가 사용했던 실제 언어에 대한 충실하고 정확한 설명을 가능한 직접적이고 간단명료하고 짧게 서술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사용했던 자료와 인용문은 이 원전에서 직접 취한 것이다. 몇 군데에서 나는 약간의 후대 작품을 참고하기도 했다. 

 

나는 또한 이미 붓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그 학문을 심화시키고자 원하는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중심어(key words)에 상당하는 팔리어뿐만 아니라 원전에 대한 참조를 각주와 참고문헌에서 제시하고 있다.

 

나의 작업에서 어려웠던 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친숙하지 않은 것과 널리 알려진 것 사이에서 한 방향을 조종하고, 오늘날의 영어권 독자에게 붓다의 가르침의 내용이나 형식 어떤 것도 희생함이 없이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하고자 시도했었다. 저술을 하면서 필자는 원전을 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독자가 스승이 사용했던 방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구전의 전통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것과 같은 붓다의 설법의 일부인 동의어와 반복을 의도적으로 유지했다. 나는 가능한 원전에 가깝게 다가갔으며, 나의 번역이 쉽고 읽기에 재미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경계를 넘어서면 붓다가 전개시킬 관심을 가진 특별한 의미를 단순성의 흥미에 끌려 성실하지 않고 한 개념을 취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었다. 이 책을 위해 선택했던 ‘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서처럼, 의미의 왜곡이라는 위험이 있지만 이해 가능성이라는 손쉬운 충족을 제공할 번역물보다는, 오히려 붓다의 말씀과 그가 사용한 비유도 직접 적지 않으면 그릇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에서 붓다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가르침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 그것은 사성제설(四聖諦說) · 팔정도(八正道) · 오온(五蘊) · 업(業) · 재생(再生) · 연기설(緣起說) · 무아론(無我論) · 염처(念處) 등이다. 당연히 논의에서 서양독자들에게 생경한 표현법이 있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논의될 표현법은 서양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흥미를 느낀 독자는 첫 장을 처음으로 읽고, 제5장 · 제7장 · 제8장을 읽은 다음, 제2장, 제3장, 제4장, 제6장으로 돌아가면 일반적 의미가 보다 명료하고 보다 생생할 것이다. 상좌부와 대승불교의 사상 체제에서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주제를 다루지 않고, 붓다의 가르침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테라와다(Theravāda)’라는 술어는 ― 히나야나(Hīnayāna) 혹은 ‘소승’은 식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 ‘장로들의 학파’로 그리고 마하야나(Mahāyāna)는 ‘대승’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에 알려진 불교의 두 중요한 양식으로 사용되었다. 원래의 정통 불교로 여겨지는 테라와다는 세일론 · 미얀마 · 태국 · 캄보디아 · 라오스 그리고 동파키스탄의 치타공에서 뒤따랐다. 비교적 나중에 발전했던 마하야나는 중국 · 일본 · 티베트 · 몽골 등과 같은 다른 불교 국가들에서 추종되었다. 두 부파 사이에 주로 어떤 신앙 · 실천과 의식에 관한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논의한 것과 같은 가장 중요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테라와다와 마하야나가 이의 없이 동의한다.

 

사실 이 책을 쓰도록 이끌었고, 나에게 모든 도움을 주었으며, 이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읽어주신 루도익(E. F. C. Ludowyk) 교수께 나의 감사의 말씀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봐주었고, 귀중한 제안을 해주신 미스 마린이네 모홀께도 깊이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파리에서 나의 스승이었던 폴 데미에빌 교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서문을 써준 그의 호의에 감사드린다.

 

월폴라 라훌라

파리에서

1958년 7월

 

 

 

To Mani

 

Sabbadānaṃ dhammadānaṃ jināti.

'The gift of Truth excels all other gifts.'

진리의 선물은 모든 다른 선물보다 수승하다.

[諸供養中 法供養最]

 

 

 

붓 다

 

 

 

붓다의 개인적인 이름은 싯닷타(싯다르타)이고, 성은 고따마(Skt. 가우따마)로 기원전 6세기에 북인도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 숫도다나는 사캬 왕국(지금의 네팔)의 통치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마야(Māyā) 왕비였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서 그는 아주 어린 16세의 나이에 미모와 자애를 겸비한 야소다라(Yasodharā) 공주와 결혼했다. 젊은 왕자는 마음대로 호사를 부리며 그의 궁전에서 살았다. 하지만 갑자기 삶의 실재와 인류의 괴로움과 맞서게 되어 그는 이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인 해탈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외아들 라훌라(Rāhula)가 태어난 직후인 29세 때, 그는 왕국을 떠나서 이 해탈을 찾는 고행자가 되었다.

 

6년 동안 고행자 고따마는 갠지스 유역(流域)을 방황하다가 유명한 종교적 스승을 만나서 그들의 체제와 방법을 따라 공부하고, 준엄한 고행의 실천에 헌신했다. 그들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전통적 종교와 그들의 방법을 포기하고, 그 자신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같이 하여 35세 때인 어느 날 저녁 붓다가야(Buddha-Gaya; 현대의 Bihar의 Gaya 근처)에 있는 네란자라(Neranjara) 강기슭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그 이래 Bodhi 혹은 Bo-tree ‘지혜의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래 앉아서, 고따마는 깨달음을 이루었다. 깨달음 이후 그는 붓다(Buddha), 즉 ‘깨달은 자; 覺者’로 알려졌다.

 

그의 깨달음 이후, 고따마 붓다는 베나레스 근처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 지금의 사르나트)의 사슴 동산에서 그의 옛 동료인 다섯 고행자들에게 첫 설법을 했다. 그 날부터 45년 동안, 그는 모든 계급의 남자와 여자를 ― 왕들과 농부들, 바라문들과 부랑자들, 은행가들과 거지들, 성자들과 도둑들 ― 아무 구별 없이 가르쳤다. 그는 카스트 혹은 사회적 계급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가 설법한 진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따를 준비가 된 모든 남녀들에게 열려 있었다.

 

붓다는 80세 때 구시나라 (현재의 인도 웃따라 쁘라데쉬)에서 입적했다.

 

오늘날의 불교는 세일론 · 미얀마 · 태국 · 캄보디아 · 라오스 · 베트남 · 티베트 · 중국 · 일본 · 몽골 · 한국 · 대만, 그리고 인도 · 파키스탄 · 네팔의 일부, 그리고 또한 소련에서 발견된다. 세계의 불교 인구는 5억이 넘는다.

 

이 글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Copyright 2012 Research Institute for Pali Literature

 

- 첨부파일

B008-1.pdf  
   
맨위로

https://blog.daum.net/riplmaseong/204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