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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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2)

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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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불교도의 마음가짐

 

월폴라 라훌라 지음

마성 옮김

 

인간은 가장 존귀하다

종교의 창시자들 가운데 붓다(만일 그를 일반적 의미의 종교적 창시자로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면)는 순수하고 소박한 한 인간 이상의 다른 주장을 한 적이 없는 유일한 스승이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은 신(神) 혹은 다른 모습을 띤 신의 화신(化身)이거나 신의 감응을 받은 사람들이다. 붓다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신이나 외적인 힘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영감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깨달음과 달성 및 성취를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지성의 결과라고 했다. 인간 오직 인간만이 붓다가 될 수 있다. 바라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붓다를 지고의 인간으로 부를 수 있다. 그의 인간성은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그는 나중에 대중종교에서 거의 ‘초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불교에 의하면 인간의 위치는 지극히 높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스승이며, 자신의 운명을 심판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존재나 세력은 없다.

 

자기는 자기 자신의 의지처

‘자기는 자기 자신의 의지처인 것인데, 다른 누가 의지처가 되겠는가?'1)라고 붓다는 말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다른 누구로부터도 도움이나 귀의처를 절대 찾지 말라고 권고했다.2) 사람은 그 자신의 개인적 노력과 지성을 통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해탈을 이끌어 내도록 용기를 돋우고 자극하였다고 붓다는 가르쳤다. ‘여래3) 오직 길만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당신이 당신의 일을 해야 한다’4)라고 붓다는 말했다. 만일 붓다가 모든 측면에서 ‘구세주’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그가 해탈, 열반(Nirvāṇa)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여 보여 주었다는 의미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우리들 자신들이 밟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

붓다는 바로 이러한 개인적 책임의 원리를 토대로 제자들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붓다는 마하빠리닙바나 숫따(Mahāparinibbāna-sutta, 大般涅槃經)에서 그는 상가(Saṅga, 僧團)5)를 통제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고, 상가가 그에게 의지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가르침에는 비전(秘傳)의 교설은 없으며, ‘스승의 꽉 쥔 주먹(Ācariya-muṭṭhi, 師拳)’에 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몰래 준비한 어느 것도 결코 없다고 붓다는 말했다.6)

 

붓다에 의해 허용된 사고(思考)의 자유는 종교역사의 다른 부분에서는 들은 바가 없다. 붓다에 의하면 인간의 해탈은 순종적인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신의 자비로운 은총이나 어떤 외적인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진리 실현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는 필수적인 것이다.

 

붓다는 한때 꼬살라(Kosala) 왕국의 께사뿟따(Kesaputta)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깔라마(Kālāma)라는 공통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붓다께서 그들의 도시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깔라마들이 붓다를 찾아와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곳 께사뿟따를 방문한 몇몇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설만 설명하고 해명할 뿐 다른 이의 교설은 경멸하며 비난하고 일축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이 와서 그들 역시 차례가 되면, 자신들의 교설만 설명하고 해명할 뿐 다른 이의 교설은 경멸하며 비난하고 일축합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희들로서는 이들 존경하는 사문과 바라문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언제나 의심과 혼란만 일으킵니다.”

 

그러자 붓다는 종교 역사상 유래가 없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그렇다. 깔라마들이여, 의심은 의심스러운 문제에서 일어나므로 너희들이 의심하고 당혹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 깔라마들이여 보아라. 보고나 전통, 혹은 소문에 이끌리지 마시오. 종교 경전의 권위, 단순한 논리나 추론, 겉모양의 고려, 사변적 견해에 대한 기쁨, 외관상의 가능성, ‘이것이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관념 등에 이끌리지 마시오. 그러나 오! 깔라마들이여, 스스로 어떤 일들이 불선(不善, akusala)이며, 잘못되고 나쁜 것임을 알았을 때에는 그것을 과감히 버리시오. 그리고 스스로 어떤 일들이 선(善, kusala)하고, 좋은 것임을 알았을 때에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따르시오.”7)

 

붓다는 더욱 나아가서, 제자는 여래(붓다) 자신조차 시험해 보아야만 그가 따르는 스승의 진정한 가치를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구들에게 말했다.8)

 

의심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의심(疑心, vicikicchā)은 진리의 명료한 이해와 정신적 발전 과정(혹은 그 문제에 관한 어떤 발전에)에 방해가 되는 다섯 가지 장애(蓋, nīvaraṇa)9)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불교에는 믿음의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의심은 죄가 아니다. 사실 어떤 종교에서 알려진 죄와 같은 것이 불교에는 없다. 모든 악의 뿌리는 무명(無明, avijjā)과 사견(邪見, micchā diṭṭhi)이다. 의심․혼란․동요가 있는 한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분명히 보지 못하는 한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더욱 진전하기 위해서는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분명히 보아야 한다.

 

사상의 자유

의심해서는 안 된다거나 믿어야 한다는 말에는 별 의미가 없다. 단지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당신이 이해하고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학생이 수학 문제를 풀 때, 그 다음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모르는 단계에 이르면, 의심과 혼란에 빠진다. 이 의심을 갖고 있는 한,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만일 그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원한다면 이 의심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의심을 용해시키는 길이 있다. ‘나는 믿는다.’ 혹은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분명히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일을 이해 없이 자신에게 믿거나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이지 정신적이거나 지성적인 것은 아니다.

 

붓다는 언제나 의심을 간절히 제거하고 싶어 했다. 그가 열반에 들기 직전에도 그는 제자들에게 만일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떠한 의심이라도 갖고 있으면, 그러한 의심들을 해결하지 않아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에게 물으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침묵했다. 그러자 그가 한 말씀은 감동적이다. “만약 아무 것도 질문을 않는 것이 스승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면, 너희 중 누군가가 친구에게 알려라. (즉 누군가가 친구에게 말해서 그 친구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질문할 수 있게 하라)”10)

 

관용

사고(思考)의 자유뿐만 아니라 붓다가 허용한 관용도 종교사 연구자에게는 놀라운 것이다. 한때 나란다(Nāḷandā)에는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 자이나교의 Mahāvīra)11)의 재가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던 저명하고 재력 있는 장자였던 우빨리(Upāli)가 있었다. 마하비라는 붓다를 만나 업설(業說)의 중요한 요점에 관해 토론하여 붓다를 쳐부수라고 우빨리를 긴급히 파견했다. 왜냐하면 업설에 관해서 붓다는 마하비라와 견해를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토론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의외로 우빨리는 붓다의 견해가 옳았고, 그의 스승의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평신도(Upāsaka)의 한 사람으로써 그를 받아 달라고 붓다께 간청했다. 그러나 붓다는 ‘조심스럽게 숙고하는 것이 당신과 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에게 좋을 것’이므로 서두르지 말고 재고해 보라고 그에게 말했다. 우빨리가 다시 간청했을 때 붓다는 그가 해왔던 것처럼 그의 옛 종교의 스승을 그대로 존경하고 받들어 모실 것을 그에게 당부했다.12)

 

기원전 3세기에 위대한 불교도였던 인도의 아쇼카 황제는 이 성스러운 관용과 이해의 모범을 본받아 그의 광대한 제국에서 다른 모든 종교를 존중하며 후원했다. 오늘날에도 그 원본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바위 위에 새겨진 그의 칙령 가운데 하나에서 아쇼카 황제는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오직 자신의 종교만 존중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말고, 오히려 이런 저런 이유를 찾아 다른 종교도 존중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종교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다른 종교에도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대의 행동은 자신의 종교에 무덤을 파는 것은 물론 다른 종교에도 해악을 입히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에만 경의를 표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자는 누구나 “나는 나의 종교에 영광을 더한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종교를 진실로 숭앙하기에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도리어 자신의 종교에 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종교에서 주장하는 교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라.’13)

 

여기서 덧붙이면, 이러한 호의적 이해의 정신은 오늘날 종교적 교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용과 이해의 정신은 처음부터 불교문화와 문명의 가장 소중한 이상 가운데 하나이다. 2,500년이라는 유구한 불교역사상 사람들을 불교로 개종시킬 때나 불교를 포교함에 있어서 단 한 번의 박해 사례나 한 방울의 피 흘림도 없었던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불교는 평화적으로 전 아시아 대륙으로 전파되었고, 오늘날 5억이 넘는 불자를 확보하고 있다. 어떠한 핑계 하에서든지, 모든 형태의 폭력은 붓다의 가르침과는 절대적으로 상반되는 것이다.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불교는 종교인가, 혹은 철학인가’라는 질문이 간혹 제기된다. 불교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이 없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명명(命名)하든지 불교의 본질은 그대로다. 명칭은 대수롭지 않다.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하여 부여한 ‘불교’라는 명칭조차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부여한 이름은 비본질적인 것이다.

 

이름 속에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에,

다른 이름을 부여하더라도 냄새는 향기로울 것이다.

 

진리에는 표식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에는 표식이 필요하지 않다. 진리는 불교도, 기독교도, 힌두교도 혹은 이슬람교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독점물도 아니다. 종파적인 표식은 독자적인 진리의 이해에 장애가 되며, 인간들의 마음에 해로운 편견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것은 지적․정신적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에 대하여(영국인 · 프랑스인 · 독일인 · 미국인 혹은 유대인과 같은) 어떤 표식을 붙인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 호칭으로 연상된 편견을 가지고 그를 대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게 부여한 그러한 속성으로부터 그는 완전히 벗어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구분을 위한 표식을 너무 좋아하여 모두에게 공통된 인간성과 정서에도 이름을 붙일 정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비에도 다른 ‘표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불교의 자비 혹은 기독교의 사랑으로, 그리고 다른 사랑의 표식을 경멸한다. 하지만 사랑은 종파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도, 불교도,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불교도의 것도 기독교도의 것도 아니며, 단지 모성애일 뿐이다. 사랑 · 자비 · 동정 · 관용 · 인내 · 우정 · 탐욕 · 증오 · 악의 · 무지 · 속임수 등과 같은 인간성과 정서에는 분파적인 표식이 필요 없다. 그것은 특별한 종교에 속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구도자에게 관념이 어디서 오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관념의 근원과 발전은 학문적인 문제이다. 사실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르침이 붓다나 다른 누구에게서 유래한 것인지 아는 것조차 필요하지 않다. 본질적인 것은 사물을 보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중부경전(Majjhima-nikāya, sutta no. 140)에는 이를 예시해 주는 중요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붓다는 한때 옹기장이의 움막에서 밤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움막에는 먼저 도착한 젊은 유행자가 있었다.14)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붓다는 그 유행자를 관찰하고, ‘이 젊은이의 법도가 호감을 준다. 그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래서 붓다는 그에게 물었다. “오! 비구여, 당신은 누구의 이름으로 집을 떠났습니까? 당신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누구의 가르침을 좋아합니까?”

 

“오! 벗이여, 석가의 가문을 떠나 수행자가 된 석가족의 아들 사문 고따마가 있습니다. 그는 아라한(Arahant, 阿羅漢), 즉 완전히 깨달은 분이라는 높은 명성이 파다합니다. 그 축복 받은 분의 이름으로 나는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 스승이며, 저는 그의 가르침을 좋아합니다.”라고 그 젊은이는 대답했다.

 

“지금 그 축복 받은 자이며, 아라한이고, 완전히 깨달은 분은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벗이여, 북쪽 나라에 사왓티(Sāvatthi, 舍衛城)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 축복 받은 자, 아라한, 완전히 깨달은 분께서 지금 머물고 계십니다.”

 

“당신은 그 축복 받은 자를 본 일이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그를 본다면 그를 알아 볼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축복 받은 자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만일 제가 그를 보더라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붓다는 이 무명의 젊은이가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붓다는 말했다.

 

“오! 비구여,15) 내가 그의 설법을 당신에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귀를 기울려 잘 들으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벗이여”라고 그 젊은이는 동의했다.

 

그러자 붓다는 이 젊은 수행자에게 진리를 설명한 아주 훌륭한 법문(그 요지는 나중에 다룬다)16)을 설했다.

 

이름이 뿍꾸사띠(Pukkusāti)였던 이 젊은 유행자는 그 법문이 끝날 때쯤, 그에게 설법한 그 사람이 바로 붓다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 붓다 앞으로 가서 스승의 발에 예배한 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벗’17) 이라고 부른데 대하여 사죄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붓다께 자신을 불제자로 받아주고, 상가(Saṅgha, 僧團)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붓다는 그가 발우와 가사를 갖고 있는지를 물었다. (비구는 세 가지 종류의 가사와 음식을 빌기 위한 발우가 있어야만 한다) 뿍꾸사띠가 없다고 대답했을 때, 붓다는 여래는 발우와 가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승단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뿍꾸사띠는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지만, 불행하게도 암소에게 받혀서 죽고 말았다.18)

 

나중에 이 슬픈 소식이 붓다께 전해졌을 때, 붓다는 '뿍꾸사띠가 이미 진리를 발견한 현자였으며, 열반(涅槃) 실현에 있어서 끝에서 두 번째 단계에 도달했고, 아라한(Arahant)19)이 될 천상에 태어났고, 마지막 죽음이고, 결코 이 세계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20)고 설했다.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뿍꾸사띠가 붓다의 법문을 듣고 그의 가르침을 이해했을 때, 그는 누가 자신에게 설법했는지 혹은 누구의 가르침이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진리를 보았다. 만약 약이 좋다면 질병은 치료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준비했는지 혹은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고자 할 필요는 없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보고 이해하라

거의 대부분의 종교들은 다소 맹목적 신앙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신앙에 토대를 두고 이뤄져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신앙이나 믿음이 아닌 보고․알고․이해함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불교의 경전에

 

Notes:

1) Dhammapada v.160; 譯註: "Attā hi attano nātho, ko hi nātho paro siya. attanā hi sudantena, nāthaṁ lobhati dullabhaṁ." 진정 자기야말로 자기의 의지처, 어떻게 남을 자기의 의지처로 삼으랴? 자기를 잘 단련시킴으로써만, 자기를 의지처로 만들 수 있는 것. 이는 실로 성취하기 어렵다.

2) Dīgha-nikāya Ⅱ, p.100; 譯註: Dīgha-nikāya Ⅲ, p.58, p.77; "atta-dīpa (bhikkhave)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a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비구들이여, 자기의 섬[自洲]에 머무르고, 자기에게 귀의[自歸依]하라. 他에 귀의하지 말라. 법의 섬[法洲]에 머무르고, 법에 귀의[法歸依]하라. 他에 귀의하지 말라.”   

3) 여래(Tathāgata)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진리로 들어간 사람’ 그것은 ‘진리를 발견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술어는 일반적으로 붓다가 자신에 관해 언급할 때 혹은 일반적인 붓다를 가리킬 때 사용했다.  

4) Dhammapada v.276; 譯註: "Tumhehi kiccamātappaṁ, akkhātāro tathāgatā. paṭipannā pamokkhanti, jhāyino mārabandhanā." “너희 스스로 힘써 노력하라. 여래는 다만 길을 보여줄 뿐이다. 누구든지 마음 집중과 내적 관찰을 수행하면, 마라의 묶임에서 풀려나리라.”

5) 상가(Saṅgha)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집단’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이 술어는 ‘불교 승려의 집단’ 즉 승려들의 단체를 가리킨다.

6) Dīgha-nikāya Ⅱ, p.100.

7) A. (Colombo, 1929), p.115; A. Ⅰ, pp.188-9.

8) Vīmaṁsaka-sutta(思察經), no. 47 of M.; M. Ⅰ, p.317f.

9) 다섯 가지 장애는 五蓋(pañca-nīvaraṇa)는 혹은 五障(pañca-āvaraṇa)라고 한다. 즉 ⑴ 애욕, ⑵ 악의, ⑶ 물질적 정신적 무감각과 권태, ⑷ 근심과 걱정, ⑸ 의심이다. 譯註: 五蓋와 五障의 팔리어 원문과 한역은 다음과 같다. 즉 ⑴ kāmacchanda(貪欲), ⑵ abhijjhā-vyāpāda(瞋恚), ⑶ thīna-middha(昏沈), ⑷ uddhacca-kukkhucca(掉擧), ⑸ vicikicchā(疑心).

10) Dīgha-nikāya Ⅱ, p.155.

11)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Mahāvīra)는 붓다와 동시대의 사람이었으며, 아마 붓다보다 몇 살 위인 것 같다.

12) Upāli-sutta(優波離經), no. 56 of M.

13) Rock Edict, Ⅻ.

14) 인도에 있는 옹기장이의 움막은 넓고 조용하다. 팔리경전에서 고행자들과 유행자들 뿐만 아니라 붓다 자신이 유행하는 동안 옹기장이의 움막에서 밤을 보낸다는 것이 인용되고 있다.

15) 붓다가 불교 승려들에게 사용했던 ‘빅쿠(Bhikkhu, 比丘)’라는 용어로 이 유행자를 불렀다는 것은 흥미로운 것이다. 결국 그가 붓다께 자신이 승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는 비구가 아니었으며, 승단의 일원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 붓다 재세 당시에 ‘비구’라는 용어가 당시의 다른 고행자들에게도 구별하지 않고 사용했거나 붓다께서 이 술어를 엄격하게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의 의미는 ‘음식을 비는 자’, ‘걸식자’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글자 그대로의 원래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의 ‘비구’라는 용어는 오직 불교 승려, 특히 세일론 버마 태국 캄보디아 치타공과 같은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16) 세 번째 고귀한 진리에 관한 제4장의 57쪽을 보라.

17) 사용된 용어는 친구라는 의미의 ‘아부소(Āvuso)’이다. 이것은 동년배들에게 말할 때 쓰는 예의 바른 용어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붓다께 말할 때는 이 용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은 대략 ‘Sir(님)’ 혹은 ‘Lord(주)’라는 의미의 ‘반떼(Bhante, 尊師)’라는 용어를 쓴다. 붓다 당시에 그의 상가(Saṅgha, 僧伽)의 스님들은 ‘Āvuso’ 라고 다른 스님을 부른다. 하지만 붓다는 입멸(入滅)하기 전에 젊은 스님들은 장로들에게 ‘Bhante(尊師)’ 혹은 ‘Āyasmā(尊者)’ ‘존경할 만 한 분’으로 부르라고 가르쳤다. 반대로 장로들은 젊은 스님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Āvuso’라고 호칭하라고 했다. (D. Ⅱ, p.154.)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상가(僧團)에서 유지되고 있다.

18) 인도에서 소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러한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소들은 유순하며 난폭하거나 위험하지 않다.

19) 아라한(Arahant)은 탐욕 · 증오 · 악의 · 무지 · 자만 · 독단 따위와 같은 모든 더러움과 번뇌로부터 스스로 해탈한 사람을 말한다. 아라한은 네 번째 단계, 혹은 열반 실현에 있어서 가장 높은 궁극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며, 또한 지혜와 자비, 청정하고 고귀한 성품을 완전히 갖춘 사람이다. 뿍쿠사띠(Pukkhusāti)는 잠깐 사이에 ‘아나가미(Anāgāmi, 不還果)’라고 불리는 세 번째 단계에 도달했다. 두 번째 단계는 ‘사까다가미(Sakadāgāmi, 一來果)’라고 불리며, 첫 번째 단계는 ‘소따빤나(Sotāpanna, 預流果)’라고 불린다.

20) Karl Gjellerup가 지은 The Pilgrim Kamanita라는 책은 뿍쿠사띠의 이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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