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주먹자랑 말라던 곳의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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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3/한국 가곡

[스크랩] 주먹자랑 말라던 곳의 음악가

박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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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선은 1901. 6. 11 전남 보성 벌교에서 출생하여 1953. 2. 2 부산에서 사망한

바이올린 연주자겸 작곡가.

 

채동선은 1901년 6월 11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서 무역회사를 경영하며 벌교의 이름난 부호였던 채중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00년전 벌교초등학교를 세워 그 당시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친 선각자이며, 또한송덕비가 세워질 만큼 지역사회의 여러가지 공익사업에 힘을 기울인 시대를 앞서간 이 였던것 같다. 그런만큼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도 남달라서, 어린 채동선은 여덟살 때까지 벌교에서도 수십리 떨어진 순천공립 보통학교까지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어른(머슴)들에 업혀서 통학을 하였다. 그는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의 제일고보(현 경기고교)에 입학하게 된다. 

순천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제일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채동선은 홍난파의 바이올린 독주를 듣고 그 소리에 매료된다.  풍부한 선천적 감수성의 채동선은 이때 음악가로의 길을 바라보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뛰어난 학업 성적과 학우들의 지도적 위치에서 조국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민족의식에 대한 투철한 이념을 키워간다. 결국 1919년 '3·1만세사건'이 발발하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고, 왜경의 감시가 계속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결국 4학년때 경기고보를 떠나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채동선의 이러한 자세는 훗날 그의 음악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로 작용하였고 이의 실천을 위해 평생동안 온 몸을 던지게 된다. 와세다대학 입학후에도 계속하여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물론 이 시절에도 채동선은 일본 바이올린계의 원로인 忠朝 문하에서 4년동안 바이올린 수업을 계속하였다. 대학을 마치고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잠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한다. 1926년 그 본격적인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슈테르쉔 음악원'(훗날 '베를린예술대학'으로 확대개편됨)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리햐르트 할체에게 바이올린을 그리고 빌헬름 클라테에게 작곡을 배운다. 

1929년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음악이론과 바이올린을 가르치면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와 제2의 삶을 함께 하게될 부인 이소란 여사를 만나게 된다. 두사람의 만남은 채동선의 여동생인 채선엽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당시 이소란과 채선엽은 이화여중 동기로서, 나란히 이화여전의 영문과와 음악과에 진학하였고 주위에서 쌍둥이라고 부를 정도로 늘 함께 다니며 다정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채선엽은 이소란에게 늘 오빠 자랑을 하였고, 마침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른 채동선을 두 사람이 마중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가 아마 초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원산항에 바로 도착하여 서울역까지는 기차로 온다더군요. 그래서 선엽씨와 함께 서울역에 밤 9시 30분에 마중 나갔지요. 그런데 독일에서 유학한 학생이라 해서 씩씩하고 야심에 찬 청년인줄 알았는데 매우   수수한 사람이더군요"라고 부인은 당시를 회상하였다.  

1933년 정지용의 시(그리워)에 곡을 붙여 그의 여동생인 소프라노 채선엽(蔡善葉)의 목소리로 처음 발표되어 도쿄[東京] 유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1937년에는 작곡발표회를 갖고 작곡집도 펴냈다. 현악4중주단을 조직하여 실내악 활동을 했고, 193  8년 동아일보사 주최 제1회 전조선창작곡발표 대음악제에서 (환상곡 D단조)를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로 발표하였다. 1931년에 이화여전을 졸업한 소프라노 채선엽은 1934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아! 목동아', '한 떨기 장미꽃' 등을 취입하였고, 1937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의 오사카 공회당에서 제1회 독창회를 가졌는, 당시 '아사이'신문에는 '精度에 들어선   유망한 예술가'라는 평이 실리기도 하였다.   1938년 귀국하여 부민관에서 귀국독창회를 가진 후 계속된 국내활동으로 그녀는 당대   최고의 인기성악가의 명성을 누린다. 채동선 집안의 음악적 소질에 대한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통음악에도 관심을 보여 (육자배기)(춘향가)등 민요나 판소리를 채보했고 (진도아리랑)(새야새야)(뱃노래) 등을 편곡하기도 했다. 8·15해방 직후 고려음악협회를 조직하여 협회장에 취임했고 문필가협회 부사장, 국립국악원 이사장, 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으며, 고려합창협회를 조직하여 합창단 지휘를 하기도 했다.

1953년 52세에 부산 피난중 급성복막염으로 죽었다. 1983년 '채동선 기념사업회'가 그의 부인 이소란과 평론가 박용구 등의 주도로 조직되었고 1984년 '채동선 음악상'을 제정했다.

대표작으로 가곡 (고향, 망향, 그리워),(모란이 피기까지는), 그밖에 현악4중주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모음곡, 교성곡 (한강), 진혼곡(조선),(조국) 등이 있다. 

가곡 '고향', '망향', '그리워'는 같은 곡으로써 정지용의 시 '고향'에 곡을 붙였던 것이나 월북문인으로 작품규제를 받게되자 훗날 박화목의 시 '망향'으로 개사되어 불리게 된다. 그러나 이소란여사 등 채동선의 유족들이 이은상 시인에게 다시가사를 의뢰하면서 이은상의 '그리워'가 탄생했다. 쓸쓸한 느낌의 곡으로 곡 중에 느림표가 많고, 또 악상의 변화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작곡가의 그 당시 민족적 울분과 애국을 노래로써 표현하였다. 오늘날 중고교 음악교과서에는 세 가사가 모두 실려있다고 한다.

당당히 녹차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보성,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 선생,  보성소리를 집대성한 정응민 선생의 고향,

그리고 채동선 선생의 민족음악이 탄생한 고장이며. 

소설 '태백산맥'의 산무대가 아니던가?

벌교읍엔 채동선기념관, 채동선음악당, 태백산맥 문학관이 생겨서

여기서 돈자랑, 주먹자랑하지 말라던 왕년의 부귀를 이야기한다.

일본의 전남내륙 수탈목적 부흥도시였지만

보성군 벌교가 가진 향수가 상당하다   

                                                                                                                                            

 

                                                                                                                                         

 

 

                                             새  야  새  야                              작시 : 전래민요   작곡, 편곡 : 채동선    노래 : 수원시립합창단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녁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손톱발톱 닳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위 여 위 여

위 여 위 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윗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논에 메나락 심고

 울 오래비 장가갈 때

 찰떡치고 메떡칠걸

 네가 왜 다 까먹느냐

 네가 왜 다 까먹느냐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P 소나무들의 합창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출처 : 뒷산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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