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영 시인 / 베네치아
어디 한 곳 발붙일 곳이 없어 모래에 나무 기둥을 박아 한 뼘 한 뼘 땅을 넓힌다 때론 무너지며 흐르더라도 수백 개의 다리를 세우고 오고 가야만 한다
혼자인 듯 하나인 베네치아는 땅이 귀해 심을 수 없는 꽃들을 수상버스 가득 키우고 있다 곤돌라 사공의 노래가 훑고 있는 희극은 느릿느릿 퇴색되고 비극에는 이끼가 낀다
산마르코 광장 카페의 긴 머리 여가수가 열창을 한다 서러워 마세요 더 이상 절망은 없을 거예요 이제 맘껏 날아보세요
젤라또 녹아내리듯 그렇게 이 공포에서 저 불안으로 이끌고 돌아다녀온 몸이 녹아내린다 바다 위에 있으므로 경계 없는 소통이 잃을 게 없으므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날개가 되어 달콤하게 날아간다
극복하여 찬란한 고난을 되비치는 석양 속에 수로를 오고 가는 사람들은 하나 둘 열매를 맺고 어디로 향하든지 바라보는 것들에게 덧창을 닫고 있는 이들은 머지않아 베네치아가 다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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