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밝은 시인 / 소설 즈음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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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밝은 시인 / 소설 즈음 외 2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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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밝은 시인 / 소설 즈음

 

 

바람이 잠자리 날개 위에서 잠시 쉬어갈 때에도

제 몸을 키우며 목청을 가다듬던

계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온기 없는 이불을 잡아당기며 혼자 눈뜨는 어느 날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기도 한 풍경이

눈발 앞에서 어리둥절한데

 

심술 난 생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수백 번쯤 찔려

세상에 거꾸로 서 있는 듯 절뚝거려도 가끔,

환한 눈물의 어디쯤 닿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면 됐다고

 

애달픈 얼굴들

서로의 심장을 뜨겁게 포개는 중일까

무뎌지지 않는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 일조차

아름다운 고행이어서

 

몸보다 먼저 눈발을 껴안은 마음이

손가락 끝에 닿을 것 같은 허공 속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계간 『애지』 2019년 봄호 발표

 

 


 

 

김밝은 시인 / 가파도라는 섬

 

 

아무도 모르게 껴안은 마음일랑

가파도 되고 마라도 되지,

어쩌면 무작정 가고파도 일거라는 말

 

고개를 저어도 자꾸 선명해지는 너를 떠올리면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함께 달려와

까무룩해지는 장다리꽃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곤 하지

 

바람을 견디지 못한 이름들은 주저앉아버렸고

청보리는 저 혼자 또 한 계절을 출렁이고 있는데

 

어루만지다, 쓰다듬다 라는 말이

명치끝에서 덜컥 넘어지기도 하는지

곱씹을수록 까슬까슬해지는 얼굴도 있어

 

보고파, 라는 말을 허공에 띄우면 대답이라도 하듯

등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파도의 손짓까지

뜨겁게 업은 너

 

심장에 가까운 말* 한마디는 어디에 숨겨놓은 것일까

 

*박소란 시인의 시집 제목 인용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1년 9월호 발표

 

 


 

 

김밝은 시인 /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ㅡ대흥사 초의매

 

 

터져 나오는 신음을 꼬집으며

손등에 떨어지는 눈물로

몰래 훔쳐둔 소식을 그리는 중입니다

 

세상의 벽은 너무 가팔라서

퉁퉁 부은 손으로 잡고 오르기엔 뼈저린 곳인데

 

꿈꾸는 한 발, 내딛는 건

차마 욕심일 뿐이라고

적묵당 담벼락 아래 쪼그리고 앉아

경전의 향기를 붙잡고 있어요

 

막막한 예언에 갇혀서도 간절해지는,

만개한 당신 얼굴

 

어느 시절의 안색으로 그토록 눈부신가요

 

*조선 후기 화가 조희룡이 그린 산수화.

 

무크 『해남문단』 2021년 발표

 

 


 

김밝은 시인

전남 해남에서 출생. 2013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재학중. 시집으로 『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가 있음. 제3회 시예술아카데미상, 제11회 심호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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