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무안) / 유목의 피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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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희정 시인(무안) / 유목의 피 외 6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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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시인(무안) / 유목의 피

 

 

집을 짓고 논밭을 일구는 일보다

계절따라 떠돌며

들꽃 보는 일이 행복하다

곡식 거두어 창고에 쌓는 일보다

유목을 동경했다

초원에서 비바람 만나도

젖을 것이 없어 편하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함부로 굴린 몸 부려 놓아도

받아주는 마음이 있다

울타리 치고 경계하는 일이

삶의 전부인 양 몸부림쳤던 기억

그 기억 어루만져 준 것도

초원의 바람이다

삶의 길 잃어도

초원은 기다려준다

 

 


 

 

김희정 시인(무안) / 엄마생각 1

 

 

간과 쓸개를 내주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엄마는 뭘 붙들고 살다

간에 검은 꽃 피어난 걸까

사람들은 타협하고 살아도

녹록지 않다는데

세상이 말한 길 따르지 않아

한평생 가난과 동거하며 살았을까

엄마가 밤새 호스피스 병동에

토해 낸 신음 소리

누군가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간도 쓸개도

제 역할을 못할 거라 말한다

이제 어떤 장기가 남아

엄마를 지켜줄 수 있을까

 

 


 

 

김희정 시인(무안) / 남매탑 가는 길

 

 

가파른 길을 헤치며 오르는 연인들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남매탑 전설을 아는 걸까

홍조 띤 얼굴에

사랑의 꽃이 만개를 했네

나는 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숨이 찬다

내 사랑 만나지 못해

거친 숨만 헐떡거리는 걸까

남매탑은

바람을 담고 눈을 담고 비를 담았지만

아직 연정을 채울 수 없어

산마루에 오르지 못하고 중턱을 지키고 있네

연인들은 앞으로 걸어갈 사랑을 다지며

탑돌이 한다

말없이 서 있는 남매탑

하룻밤 인연을 쌓지 못해

수백 년 세월과 맞서고 있다

 

 


 

 

김희정 시인(무안) / 영정사진1

 

어머니는 예쁜 사진 한 장

갖고 싶어 했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장롱 깊숙이 묻어 두었던

봄을 닮은 한복을 입으셨네

온몸에 살아온 잔뿌리를 잔뜩 내리셨네

 

 


 

 

김희정 시인(무안) / 영정사진2

 

 

카메라 불빛에 놀라

잠들었던 어머니의 살아 온 길이 깨어난다

지류를 향한 목마름 앞에서

두레박 끈이 짧아

날마다 비릿한 가난을 헹구려

새벽, 동네 우물 찾아

얼마나 발을 동동거렸을까

오늘 곱게 바른 분은

어머니 얼굴에 잔설처럼 내려 앉아

생의 빈 공간을 메우기에

힘겨워 보인다.

끝내 맨 얼굴로 돌아서는 당신

세상 무엇으로

그 독한 여독을 숨길 수 있을까

 

 


 

 

김희정 시인(무안) / 봄을 올린다

 

 

새 세상을 찾아 떠도는 씨눈 부리

유형하듯 바다에 내린다

바다는 꿈틀거린다

모세의 기적은 섬들을 감싸며

방파제를 넘어 믿음으로 부활한다

광야를 건너온 씨앗만이 생명을 만나듯

수정 된 씨앗은 튼튼한 집을 짓는다

태초의 말씀은, 만삭 달처럼 운명을 키운다

폭풍우처럼 산고를 치르는 밤

양수가 터져 아기의 울음처럼

뱃고등은 겨울을 보낸다

고깃배에 걸린 등은 금줄처럼

봄을 예감한다

봄을 거두기 위한 베드로의 손길은

탯줄 잘라 그물을 엮는다

터져버릴 것 같은 그물 사이로

봄 햇살이 뚝뚝 떨어진다.

 

 


 

 

김희정 시인(무안) / 대흥사 천불상

 

 

바람이 속세의 길을

천불상 얼굴에 조각한다

천불상 하나를 닮고 싶어

공중에 매달린 목어처럼

허공에 떠 있는 나는

날마다 흔들리는 복어가 되어

풍경 소리 듣고 있다

 

 


 

김희정 시인

1967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200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당선. 2003년 《시와 정신》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백년이 지나도 소리는 여전하다』, 『아고라』,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유목의 피』가 있음.  현재 <큰시> 동인. 한국작가회의 대전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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