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시인(청주) / 나는 말해본다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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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성호 시인(청주) / 나는 말해본다 외 4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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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시인(청주) / 나는 말해본다

 

 

직선은 팽팽하다

소리를 배운다는 문장이 떠올라 소리를 낸다

이 얘기가 오늘의 얘기일 거라는

이 얘기가 오늘의 얘기가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다

시곗바늘은 돌고 있다

단어는 자신의 단어가 되기는 싫을 거라고 나는 느낀다

옷자락이 보여서 옷자락이 이제 보이지 않는 옷자락으로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어둠은 그때만이 평범하다고 나는 말해본다

먼지가 구르고 먼지보다 둥글다고 나는 말해본다

창밖이라고 말해본다 창문에는 창밖이 있다고

아이가 넓은 수건 위에 누웠고 불분명한 핑계라고 나는 말해본다

한 줄 더 쓰고 멈춘 첫 구절을 나는 말하고 싶다

가장 밝은 곳에 있는 건지 이대로 밝음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김성호 시인 / 칠만 번의 노래와 춤

 

 

느낌과 생각이 가닿는 몸짓으로

철썩 차르르르 호응하면서

이전에 모르던 깨달음

새 기운이 치솟아

자취는 사라졌지만

순간이 열리면서

눈을 뜨니 산천초목이

연두의 말을 건넨단다.

 

그게 아니야

저 벌 나비의 춤

지난 가을의 모습이 아니야

저 새소리와 짐승의 부르짖음은

그냥 신음이 아니야

그들의 어리광이며 조름이야

저렇게 어울려 발맞춤은

흥이며 발원이란다.

 

초목화훼를 쓰다듬으면

결결이 연두입술 호호호

광합성 작용을 일으키면서

물관과 체관으로 탐욕을 흘려보내어

바위틈과 암벽에 뿌리와 가지를 뻗어

천상을 향하여 치솟고

세상 흔들림 다 이기면서

일월성신 교신에 응답이란다.

 

샘물, 시냇물, 강물의 정기로

흙과 자갈과 모래를 몰아와

바닷가로 스며들 때

거친 파도자락을 만나

우르르 쾅쾅 쾅 철썩 지상의 것들을

깨어 부수고 찢어버리면

갯지렁이 고둥들 다가와 반기고

수초들 따라와 손님을 마중한단다.

 

갖가지 주검을 갈기갈기

쪼개고 가루내면서

달이 끌어당기면 햇빛에게

해가 끌어당기면 달빛에게

보란 듯 들으라는 듯

차르르 르르 찰싹 포말을 일구면서

하루에 칠만 번 영원을 향하여

노래하고 춤을 춘단다.

 

 


 

 

김성호 시인 / 홍어회

 

 

어느 누구도 홍어회 맛있게 먹으면서도

홍어의 일생을 생각하며 감격하지 않는다

홍어회를 요리해 낸 여인의 생을 돌아 보지않는다.

 

그냥 맛나는 살점 그대로 씹히어 부셔져 내리는

얼큰하고 쫄깃한 맛

싸아한 향기 그대로 입안 환하게 맴도는

눈물을 짓누르며 삼킬 뿐이다.

 

납작하게 엎드려 바닷 속 돌 바닥 위를 뒹굴다

머리채 끌려온 삶 그대로

못난 살덩이 뼈 굳은살 박혔다 스러져 녹으며

어깨춤 뼈저리게 견디다

고추장에 절어 입다물고 흐느적일 뿐

 

사람들은 곧잘 뼈를 와작와작 씹으면서

씹을수록 감칠 맛을 혀두르며

남해 깊은 바닷 속 작은 고기떼 집들을 생각이나 하는지

탁주 잔을 잘도 기울인다.

 

다른 안주 하나 없어도 넉넉한 홍어 무침을 들며

어느 누구도 홍어의 일생과

어부의 억센 투망의 집념을 떠올리지 않아도

요리해 낸 여인의 생을 돌이키지 않아도

홍어는 미끄럼질 주검을 남실대며 술잔에 스며 배일 뿐이다.

 

 


 

 

김성호 시인 / 돌아선다

 

 

음악은 불안하다

불안하다

책등은 불안하다

불을 켜면 보인다

어둠은 더 수월하다

눈꺼풀이 눌린다

높이 있는 소리

푸른 몸짓이 있다

산맥을 이루어

물방울을 이루어

뜨거운 탄식을 이루어

거울에 나타난다

음악은 불안하다

불안하다

빠져나가는 운을 뗀다

일일이 머문 끝에

느낀 뒤에 걸린다

끝에 느낀 뒤에 걸린다

음악은 불안하다

아스라이 적시길 기다린다

밀려옴을 그친다

푸른빛만은 안다

입김을 데리고 간다

아스라이 다 안이다

일체 다 안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선명함에 지나지 않을 때까지

불을 켜면 밤을 통과한다

 

 


 

 

김성호 시인 / 로로

 

 

나는 너에 대해 쓴다.

 

솟구침, 태양의 계단, 조약돌이 되는 섬; 깊은 수심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나는 너를 잊곤 한다.

 

로로, 네 빛깔과 온도를 나는 안다. 네 얼굴이 오래도록 어둠을 우려내고 있는 것을 안다. 더 이상 깊지도 낮지도 않은 맨살같은 나날을 로로, 나는 안다.

 

네가 생각에 잠길 때 조금씩 당겨지는 빛과 무관한 조도를 안다. 마음에 마음이 부딪혔다. 소리가 났다. 그쯤은 네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내 망각은 너의 미래에서 쑥쑥 자란다.

 

마을은 물에 잠기고 고통은 가장 가볍다. 로로, 내 한 살 된 부엉이를 로로라 부를 때 날개에 대해 적고 싶은 두려움도 모른 채 쿵쾅이는 마음을 너는 알까? 여긴 쓸려갈 거야,

 

온 마을의 고양이가 낮 동안 밋밋하게 비상하는 것을, 환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너는 알까? 로로, 우리 모두는 네 내면과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형상이었다. 우린 오래도록 있어도 고요한 줄 몰랐지. 나는 오늘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내일도 빛을 삼키고 반짝일까 무섭다. 사지를 갖추고 내일이 지상에 엎드릴까 무섭다. 로로, 나는 널 부르면서 여전히 네가 고스란히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동안만은 날 잊곤 하는 걸까. 로로, 네가 들린다. 언제일까?

 

로로, 나는 너에 대해 쓴다.

내면에 내면이 쏟아졌다. 카스트라토

구름, 비틀림, 작은 의식, 이런 것들을 떠올리곤 하다가 나는 다시 너를 잊어버린다.

 

 


 

김성호 시인(청주)

1987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 졸업.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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