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천 시인 / 성냥알의 붉은 대가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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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제천 시인 / 성냥알의 붉은 대가리를 보며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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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천 시인 / 성냥알의 붉은 대가리를 보며

 

 

1억년 전, 산호에 틀어박힌 담배씨만한 무당벌레의 달콤한 잠을 생각했다

산호의 붉은 빛 속에,

더 붉은 무당벌레의 등판에

점점히 박혀 있는 잠을 생각했다

성냥알의 붉은 대가리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나도 불붙어 타버리고

검정 실오라기와 같은 연기로 잠 속에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잠 속에서, 시간의 허방 속에서,

침묵의 여자와 나누는 사랑 속에서, 사랑의 색깔은 검정이고, 그 검정을

고통의 붉은 등판에 하나하나 새겨 넣는 일임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죄수의 이마에 먹을 먹이는 자청과 같아

바늘땀마다 떨고 흐느끼며

소리지르며 황홀해 하는 슬픔이라 생각했다

성냥알의 붉은 대가리에 뭉쳐진 유황처럼

불붙어 타오를 죽음에 기대어

붉은 산호의 바다빛 잠과

무당벌레 붉은 등판의 검은 반점을 생각했다.

그 붉은 불 속에 바늘 끝으로 고통을 점점이 새기는 자를 생각해 보았다

 

 


 

박제천 시인

1945년 서울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장자시』 『나무 舍利』 『SF-교감』 등이 있고, 기타 저서로는 『마음의 샘』,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강우식 공저),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한국의 명시를 찾아서』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월탄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관장과 경기대 대우교수 역임. 현재 성균관대, 추계예대, 동국대(문창과 겸임교수)에 출강. 문학아카데미 대표, 계간 『문학과 창작』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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