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진 시인 / 그믐달 마돈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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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위상진 시인 / 그믐달 마돈나 외 1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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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진 시인 / 그믐달 마돈나

 

 

밤의 맥박은

링거 줄에 역류하는 피

천장 네 모퉁이에 어둠이 잘려있다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역청 같은 기침

시계가 없는 그녀가

오른쪽 손목을 두드린다

 

무릎 양말 냄새가 나는

여기는 먼 나라의 계절이 산다

물속에 잠긴 흉상 같은

 

이름표를 버린 침대시트

배추색 한 여자가 비상구로 사라진다

 

칼로 그어버린 수평선 너머

백색 카라 한 송이를 걸어두고

물에 넣은 양배추처럼

깨어나고 싶어

 

수직의 링거대에서

마지막 반사등이 꺼진다

커튼은 도청된 귀를 달고

오래 번창해 갈 것이다

 

 


 

 

위상진 시인 / 천경자

 

 

오늘은 머리에 이고 있던 뱀을

그만 내려놓을래

풀어놓은 뱀은 노래를 따라 간다

이미자의 황혼의 브루스는 저 혼자

가라앉는다

 

서교동 집 마당에

목련이 까맣게 타들어갈 때

당신이 남기고 간 쓸쓸한 미소

마지막 발자국 소리 하나만

남겨 두겠어

 

내 머릿속 그림을 하나씩 버리면

늙어가는 일이 쉬울지도 몰라

 

원주민처럼 화장을

하고 타히티로 숨어들 거야

 

귀환하지 못하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거기선 슬픔이 제목도 없이 썩어가겠지

 

저물녘 긴 잠 속 어디쯤에서

화관을 쓴 여자의

은빛 피리소리가 들린다

 

누가, 누가 나를 저 캔버스에 그려놓았나

내 슬픈 생애의 22페이지*에서

나는 늙어가지 못하는데

 

*폴 고갱(Paul Gauguin)의 그림 제목

*천경자의 그림 제목

 

 


 

위상진 시인

대구에서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93년 월간 《시문학》에 <吉印堂>외 5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햇살로 실뜨기』(시문학사, 2001), 『그믐달 마돈나』(지혜사랑, 2012)가 있음. 2007년 「푸른시학상」수상. 2016년 시문학상 수상.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재)심산문학진흥회 사무국장. 사)국제pen한국본부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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