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시인 / 행복한 산책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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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노혜경 시인 / 행복한 산책 외 1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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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시인 / 행복한 산책

 

 

한밤중 숲으로 난 작은 길을

 

난 걸어갔네

내 뼈에서

살점들이 잎사귀처럼

지는 소리를 들었네

 

무엇이 남았는지는 모르지

아직도 뛰는 심장소리 들리지만

난 한없이 걸어 여기

너무, 너무 와 버렸으므로

 

펄럭이는 넝마, 덜거덕거리는

오래된 절간의 목어처럼

걸려 버렸으므로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좋았네

그저 한없이 걸었다는 기억

기억 속의, 수많은 발자국과 그림자들

 

찬란히 빛나는 검은 뼈

어둔 밤 숲속 길을

밝히는 오래 묵은 인광

 

그랬었네

아마 전생의 산책이었는지도 모르지

 

길이 끝난 것 같은 곳에서

난 내게 전화를 건다

이젠 길이 끝난 것 같다고

펄럭이지 말고

후두둑

무너지라고

 

 


 

 

노혜경 시인 / 오늘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귀신들이 찾아오더니

그 귀신들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어, 불타버린 새들과 코알라가 오더니

마른 풀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야 라고 바짝 마른 몸에 불씨를 당기며 띠풀이 말하더니

아무런 생각도 말도 일도 풍경도 없는 시간이 흘렀다.

 

어떻든 귀신의 말은 아닌 말

스피노자가,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잖아. 내일은 어떤 내일일지 알 수 없으니까 그냥저냥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니 덜 우울해져.

 

 


 

노혜경 시인

1958년 부산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1991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고려원, 1995), 『뜯어먹기 좋은 빵』(세계사, 1999), 『캣츠아이』(천년의시작, 2005),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와 에세이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아웃사이더, 2003)가 있음. 대통령비서실 국정홍보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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