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세복 시인 / 우는 여자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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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배세복 시인 / 우는 여자 외 2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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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세복 시인 / 우는 여자

– 피카소展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 왜 여기 있을까

 

그녀는 늦게 도착한 내 형제들과 어깨를 부둥켜안았다 그녀가 한 번도 맘껏 우는 것을 본 적 없던 터라 영정사진 보듯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여태껏 어디에 그 표정을 꼭꼭 싸매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한 쪽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여러 줄기의 눈물이 왼쪽 볼을 등분하고 있었다 거기에 다시 사선을 긋듯 붙어있는 몇 오라기 머리카락, 그녀가 몇 번 눈물을 찍어내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때 그녀의 발개진 코는 울음을 삼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벌어진 채 이빨 사이로 콧물이 울음과 함께 새어나오고 있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산산조각, 보이지 않는 저 쪽 뺨도 마찬가지리라 눈코입이 떨어져 나갈 듯 우는 여자의 저 괴기스러운

 

얼굴, 아버지는 어머니의

피카소 어머니는 나의

피카소 나는 내 새끼의

피카소 우리는 우리의

피카소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시산맥, 2019) 중에서

 

 


 

 

배세복 시인 / 노란 입맞춤

– 클림트展

 

 황금빛 무복(巫服) 앞에 우린 서로 젖은 손금 잡고 있었다 너흰 나무상자야 죽을 때까지 맞춰 살아야 해! 점집 앞마당엔 늦가을 은행알 떨어지는 소리, 그때부터 서로의 모서리를 보는 날엔 꿈은 온통 사각형으로 꿈틀거렸다 검은 방 검은 창으로 검은 침대 뛰쳐나가고 공중으로 흩어지던 검은 베개, 뛰쳐나가 보면 돌아누운 산이 보였다 계속 두드려도 산문(山門) 근처에만 머무르던 산, 그것을 지독한 조난이라 할 수 있겠지 밤마다 사각형과 싸우며 테두리를 숫돌에 벼렸다 무수히도 집어던졌던 문패가 내게로 모두 되돌아오는 꿈을 꾼 밤, 흑흑 흐느끼던 침대 귀퉁이, 무너지는 기슭을 껴안았다 무뎌져 있었다 단단해지라 두드리는 대장간의 망치가 동글동글 놋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자웅동체가 그리운 우리는 동그랗고 노오란 해파리, 힘껏 입을 맞췄다 밤하늘로 솟구치며 열리는 검은 방 검은 창 검은 침대 검은 베개 하나 둘 셋 넷, 돌아보니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은행알처럼 보석 되어 노랗게 흩어지고 있었다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시산맥, 2019) 중에서

 

 


 

 

배세복 시인 / 군상(群像)

ㅡ 이응노展​

 

 

 화랑에 들어서자 그가 다가와 속삭였네 내 머릿속엔 늘 비가 와, 처음 만나는 이에게 귀를 내어준 듯 불쾌했네 그만큼 그는 무례했던 것, 허나 내 머리도 늘 축축한 장맛비, 이었기에 그는 소곤댔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어디선가 지렁이 소리 들려 지이잉지이잉 그것이 울음이라면 슬픔은 환형(環形)일 거야 그가 고개를 떨구었네 지렁이 붉은 살갗 같은, 햇볕에 살짝만 닿아도 들켜버리는 여린 목덜미, 들썩였지만 말릴 수 없었네 누군가 어떻게든 버티는 세상은 늘 궁금, 하였기에 주머니에서 꺼내든 지렁이 한 마리 그가 먹물통에 떨구었네 한 마리 또 한 마리, 그들을 건져내 캔버스에 차곡차곡, 환형으로 굽돌며 나아가는 하나 둘 셋 넷, 그들의 길이 그대로 군상이 되었네 그때였네 내 눈에 빗물이 들이치기 시작한 건, 그가 사라져간 화랑에 서서히 번지고 있는 얼룩 얼룩 얼룩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시산맥, 2019) 중에서

 

 


 

배세복 시인

충남 홍성에서 출생.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으로 『몬드리안의 담요』(2019, 시산맥)와 『목화밭 목화밭』(달아실, 2021 )가 있음. 현재 문학동인 Volume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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