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다 시인 /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어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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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안다 시인 /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어요 외 1편

심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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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시인 /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어요

 

 

 나는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입니다. 말라 죽은 넝쿨이 나의 마음이자

 손님들이 나에게서 떠난 이유입니다.

 

 모두 떠나간 대저택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공허했습니다. 나의 몸은 점점 작아지고.

 

 욕조에 가라앉은 채로

 우는 버릇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냄비에는 끓는 물이 넘치고 있는데요.

 

 은 접시를 집어 던지는 것이지요. 이런 내가 싫어서.

 연미복을 입은 채 강물에 뛰어드는 것이고요.

 

 테이블에 착석해주십시오.

 음식은 반시계 방향으로 넘기는 게 예절입니다 부족한건

 

 없으십니까?

 

 나는 내일의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취미로 기른 크랜베리를 따면 손끝이 붉게 물듭니다.

 생채기가 아물면 나의 살은 어쩐지 두꺼워지고요. 정원에서

 젖은 흙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씻어야지. 내일 또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그러고 나서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거야 .....

 다짐합니다.

 

 다시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 대저택에 모두를 초대하려고.

 풍선 부는 아이들이 점점 작아지고요.

 

 탄 냄새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양안다 시인 / 마술

 

 

 방구석에 구겨져 있다. 약봉지처럼.

 

 물약을 쏟고 누워 있다.

 팔다리 달린 알약처럼 숨을 쉬다

 

 말았다.

 

 창밖으로

 새의 활강을 연습하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석유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주전자. 입김이 번지고.

 온수에서 녹는

 

 가루.

 쏟아집니다. 창밖으로 눈이.

 창밖에는

 

 눈 덮인 골목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꿈에서는 죽은 자의 피로 증오하는 이름들을 적고

 팔다리 없는소년에게

 잘게 부순 알약을 먹여주었는데.

 

 왜인지 나는 자꾸 녹는다. 일어날 의지도 없이.

 생각부터 녹기 시작한다면.

 그러나 투명한 컵은 신기루를 보여주는데.

 

 신기해.

 내가 사라져요.

 입김보다 빠른 속도로.

 

2021《현대문학 수상시집》중에서

 

 


 

양안다 시인

1992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2014년 《현대문학》 6월호에 신인추천 당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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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simjy/1202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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