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昏朝)의 권신(權臣)에서 절신(節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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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昏朝)의 권신(權臣)에서 절신(節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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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昏朝)의 권신(權臣)에서 절신(節臣)으로

       

이조가 아뢰기를,

“충청도 진천(鎭川)의 유학(幼學) 박준상(朴準祥)의 상언(上言)에 대해 본조가 복계(覆啓)하였는데, 8대조 박승종(朴承宗) 및 그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관작을 회복시키는 일을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윤허하셨습니다.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은 말하기를, ‘박승종은 혼조(昏朝)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자 폐부(肺腑)와 같은 인척으로서 16년을 지냈습니다. 만약 그가 임금의 과실을 바로잡고 이의를 제기하여 잘못이 없는 곳으로 임금을 인도하였다면, 실로 생사를 함께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고 사라진 때를 당하여 한마디 말이라도 내어 천지의 경상(經常)을 지킨 일이 있었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혼조를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은 당시를 두루 살펴보아도 앞에는 박승종 부자가, 뒤에는 유몽인(柳夢寅)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몽인은 오래전에 이미 신원되는 조치를 입었으나, 박승종의 경우에는 답답함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개 임금을 섬기는 의리는 치란(治亂)에 관계하지 않고 신하된 도리는 목숨을 바치는 데 있습니다. 지금 절의를 다했다[盡節] 기준을 박승종에 갖다 댄다면 아마도 적절한 것이 아니겠지만, 필부(匹夫)의 조그마한 신의로 박승종을 단정한다면 또한 알맞은 논의가 아닐 듯합니다. 더구나 정묘조(正廟朝)께서 전후로 내린 판부(判付)가 분명히 갖추어져 있고 선배 명현들이 지은 글에도 충분히 근거할 만한 점이 있으니, 지금 그 죄안을 살펴 박승종 부자의 관직을 회복시키는 것은 원통함을 풀어주는 정사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시일이 오래된 사안이라 신이 마음대로 판단할 바가 아니니, 다시 널리 묻도록 하는 것이 진실로 살피고 신중히 하는 도리에 합당합니다.’ 하였습니다. 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여, 전교하기를,

    생사의 경계에서 사람을 논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다. 이 사람이 죽음을 결단한 일은 제 자리를 얻어 죽은 경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묘께서 내리신 판부가 존재하고 선현들의 논의가 곧 공안(公案)이니, 지금 어찌 굳이 다시 물을 것이 있겠는가. 박승종 부자의 관작을 특별히 회복하도록 하라.”

하였다.

 

- 『일성록(日省錄)』 철종 8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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