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대한민국의 딸이여!(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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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의 隨筆】

이용수, 대한민국의 딸이여!(2007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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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수, 대한민국의 딸이여!         /신 영

 

 

 

 

 

 

 

울음이 되어 흐를 수 있는 눈물은 어쩌면 마음이 안정이 되었을 때의 일일 것이다. '기가 막힌다'는 그 말은 아마도, 숨이 멎을 그 순간일 것이리라. 진정 고백하지만,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흘러들었다. "그래,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데, 그 옛날 일본의 잔인함이 우리 조선의 소녀들을 짓밟았었데...." 이렇게 남의 일처럼 듣고 흘러보내고 말았다. 아픔이지만, 슬픔이지만, 고통이지만, 한 역사의 뒤안길에 있는 일처럼 그렇게 무성의하게 살았다.

 

엊그제(April 28 Saturday 2007)오후 3:00 pm에는 하바드 대학의 'Bell Hall, John F. Kennedy School of Govemment'에서 며칠 전 와싱턴에 먼저 들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에 맞춰 미국을 찾은 이용수 할머니는 4월 26일 오후 워싱턴 미 의회 주변에서 미국 방문을 마치고 다음 방문지역인 중동으로 향해 출발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일인 거리시위를 벌였었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님은 4월 28일 보스턴의 '하버드대학 존 F 케네디스쿨 벨퍼빌딩 5층 벨 홀'에서 종군위안부에서 겪었던 자신의 참혹한 생활을 증언하며 '위안부의 실상 -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란 제목으로 열렸었다.

 

처음 이용수 할머님이 테이블 위의 마이크를 잡는 순간 우리 한인들 모두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었다. 그 할머님의 말문이 열리기 전 우리는 모두 죄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딸, 옛날에는 조선의 딸"이었다고 볼멘 목소리의 울림으로 시작이 되었다. 어린 나이 16살에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무참하게 끌려갔었던 이야기들은 차마 들을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얘기였다. 아림이고, 찢김이고, 저림이고, 고통이었다. 한 소녀가 겪었던 그 참혹한 얘기는 차마 꿈속이라도 비켜가고 싶은 이야기였다.

 

다섯 명의 소녀들 중 제일 어린 나이의 소녀였던 이용수 할머니, 그 일본군인들의 잔인하고 살인적인 행동들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하는 이야기였다. 앙탈이라는 말조차 통용되지 않았을 그때의 애절한 사정들은 어린 동생을 살리고 싶은 함께 끌려갔던 언니들의 끈끈한 동지애, 짙은 우정이 있었다. 목숨마저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던 동생(이용수 할머니)을 살려보려고 언니들은 '얻어맞고 정신을 잃는 상황에서 죽은 척하라고 귀띔을 해주는 피보다도 진한 정이 흘렀었던 것이다. 소녀들은 일본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짐승보다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으리라. 한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겨워했어야 할 15살의 소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막힘이었던 것이다. 차마 사람이면 행할 수도, 당할 수도 없는 막막한 현실 앞에 누구를 부르짖었을까.

 

몸이 끌려가고 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히며 질질 끌려갔을 때는 차라리 나았으리라. 몸이 아닌,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을 빼앗기는 어린 소녀의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은 바로 수치심이었을 게다. 몸서리쳐지도록 견딜 수 없었던 상처가 평생을 묶어 놓았던 끄나풀이 될 줄이야! 이 엄청난 사실 앞에 통곡해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 한데 가고 싶다고 언니들에게 묻고 또 물었던 것이다. 그렇게 끌려서 얼마를 배를 타고 흘러, 흘러 왔었다. 여러 언니들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너는 너무 어리다며, 내 방으로 가자!"하면서 벽장에다 숨겨 주었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서는 내게도 기모노가 입혀졌고 부은 얼굴에 화장도 시켜 주었다." 그리고 군인은 저쪽에 서 있었고, "언니는 내게 말을 들어라,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하는 것이었다. 몸도 죽고, 마음도 죽고, 정신마저 죽었을 숯덩이로 남아 재가되었을 이 할머님의 얘기는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고 고통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중간 중간마다 증언을 하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당당했다. 일본의 참혹한 성 노예의 이름인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래도 내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용수'라고 당당하게 증언을 하는 모습은 가히 '대한민국의 여인이었다'. 이용수 할머님 자신의 과거의 아픈 상처마저도 숨기지 않고 밝히려는 그 용기는 한 개인의 억울함이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슬픔이고, 내 조국의 아픔이고 고통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이용수 할머니는 거듭 증언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도, 일본 정부는 이렇게 살아서 증인으로 있는 내가 죽기만 바라지만,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없이는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옆에서 통역을 담당했던 (KAP)의 김OO(대외협력실장&영문에디터)씨는 연신 이용수 할머님의 증언을 통역하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이렇듯 가슴과 가슴이 만나 나누는 아픔의, 슬픔의, 고통의 얘기는 나누기에 치료되고 치유되리라는 바람으로 있다. 일본 정부의 자기반성과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케네디 스쿨의 에이미 본드씨는 "일본 정부는 진실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희생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보스턴 광역시의원인 샘 윤은 "이 문제는 보편적 인권과 도덕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이 자리에 모인 이용수 할머니와 한인 학생들과 한인들에게 힘있게 말을 했다. 이용수 할머님의 이 저림의 아픔이, 슬픔이 혼자만의 몫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슬픔이고 고통이다. "옛날에는 조선의 딸이었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딸이다!"라고 당당하게 선 이용수 할머니는 진정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딸이다!' 대한민국의 딸...

 

 

 

                                                                                                                        05/04/2007_하늘.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신 영




 

깊은 산 속 차가운 눈보라보다도
인정없는 바람의 서러움보다도
가슴에 매서운 회오리 일렁거림은
가슴에서 잊힌 내 이름
빛바랜 기억의 잃어버린 내 이름
이제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들녘에 핀 이름없는 들꽃이라고
무심히 지나친 발자국의 무례함
걸어갔던 당신의 발자국을 되돌려
다시 들꽃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
깊고 뜨거운 입맞춤으로
이제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아픔과 설움으로 쌓인 폭설(暴雪)에
눈물이 고여 추녀 밑 고드름을 내고
봄비에 잔설(殘雪)의 마음도 녹아
가슴에 남은 미움도 떠나보내고
남은 응어리진 설움도 흘려보내니
이제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시린 아픔과 고통의 기억들마저도
봄 햇살에 겨운 마음으로 녹아 흘러
짓눌린 가슴에 남은 상처를 씻으며
파란 하늘을 나는 자유의 날갯짓은
젖은 날개 퍼덕이던 내 영혼의 몸짓
이제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03/01/2008.
    삼월의 첫 아침에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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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수 할머님께 올립니다.

내 이름은 위안부가 아닌
대한민국의 딸 이용수라고
외치던 그 할머님의 멍울 진 가슴의
소릴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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