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각(貝殼) 갑골문(甲骨文)- 한자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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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각(貝殼) 갑골문(甲骨文)- 한자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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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각 갑골문(貝殼 甲骨文)- 한자의 근원

                                                                                                 

                                                                                                            -하림-


   갑골문(甲骨文)의 발견은 1898년 골동품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중국 천진(天津) 맹정생(孟定生)과 왕양(王襄) 등에게 문의하였으나 단순히 고대의 죽간(竹簡)에 새긴 글자와 같은 종류로 여겼다. 이후 1899년 북경의 금석학자로 있던 왕의영(王懿榮)이 갑골문에 대한 감정을 하고부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갑골문(甲骨文)이라는 명칭은 1921년 육무덕(陸懋德)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썼다. 갑골문은 고대에 한족(漢族)이 아닌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은나라(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 상나라)의 유적지에서만 발굴되었는데, 하남성 안양의 은허(殷墟)와 다른 하나는 정주(鄭州)이나 대부분 은허에서 출토되어 은허갑골문(殷墟甲骨文)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갑골이 아닌 문집으로 고려말 충신인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 선생의 농은유집(農隱遺集)에서 발견된 천부경문(天符經文)에서 은허 갑골문과 동일한 문자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60년전의 인물인 민안부(閔安富)가 중국대륙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과 거의 같은 갑골문의 발견은 매우 놀랍고 미스테리한 일이라 앞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

 은허 갑골의 주재료는 거북이의 껍질(龜甲)과 짐승의 뼈(獸骨)인데, 거북이의 껍질은 등딱지(背甲)도 있으나 대부분 배딱지(腹甲)가 사용되었고, 짐승의 뼈는 사슴뼈.뿔, 호랑이, 코뿔소, 양과 돼지의 뼈에 새긴 갑골문도 가끔 보이나 소의 어깻죽지뼈, 즉 우견갑골(牛肩胛骨)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갑골의 글자는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진 것이 전부는 아니고 간혹 붓과 같은 것으로 쓴 글자가 보이는데 필획이 새긴 갑골문과는 상반되게 예리하지는 않다.

 보통 은나라(殷,商 혹은 상나라)의 문자를 얘기하면 단순히 갑골문만 연상해서 은문자(상문자) 또는 은대문자(상대문자)로 통칭해도 된다고 단정하는데 그릇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은대에는 갑골을 비롯하여 석기.옥기.도기.청동기 등에 새겨진 명문(銘文)들도 있고 심지어 상서(尙書) 다사(多士)편에는 죽간(竹簡 서사대나무재료)으로 만든 책이 은대에 존재했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갑골문이 은나라 시대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문자자료 중의 하나일 뿐 은대의 문자가 갑골문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주나라 시대도 서주 중기때 금문(金文)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지만 문자의 발전단계로 갑골문(甲骨文), 종정문(鐘鼎文), 죽간문(竹簡文) 등의 나열은 무리이고 시대상 대표되는 문자자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대별 대표되는 문자자료는 은대의 갑골문(甲骨文), 주나라와 춘추시대의 금문(金文)이고, 전국시대는 간독(簡牘 서사대나무재료와 서사나무재료).백서(書 비단에 쓴 글).화폐문.금문.도기문(陶器文) 등등 각종 문자자료가 골고루 출토되고 있어 대표되는 자료를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국시대 다음으로는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이사(李斯)의 제안으로 서체의 통일을 시도하는데 백성의 뜻과는 무관하게도 글씨가 예쁘기만 할 뿐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그림과 같은 소전체(小篆體)를 이용한 서체통일은 실패를 하고 만다. 진시황 자신의 흔적인 비석만 남을 뿐 백성들은 예서체(隸書體)를 실용적으로 사용했고 진나라의 유물인 진간(秦簡 진나라의 죽간)을 보더라도 대부분 소전체가 아닌 예서체이다.

 예서체(隸書體)는 예(隸)가 '예속되다'의 뜻으로 기존에 쓰던 대전체(大篆體)의 불편함을 백성들이 자생적으로 통일 진나라 이전부터 스스히 발전시켜온 서체인데 비하여 소전체(小篆體)는 진시황제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행해진 것으로 전국시대 진나라 이외에 6국의 문자를 모두 없애버리고 새롭게 만든 서체라고 하나 역시 이른바 대전체를 살피고 고친 소전체였다. 진나라는 시황제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수레바퀴의 크기가 다른 소전체와 예서체가 병용하면서 삐그덕거리며 아주 짧게 굴러 갔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결국 중국의 서체는 한나라에서 예서체(隸書體)로 통일을 하는데 정확하게는 문자통일(統一)이 아니라 서체통일(書體統一)을 하게 되므로 검정교과서도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외 불에 달군 금속봉을 갑골(甲骨)의 문자 새기는 반대쪽에 지져서 금을 만들고, 그 금이 생긴 무늬의 장단과 방향에 따라 위로 갈라지면 '예'가 되고, 아래로 갈라지면 '아니다'가 된다고 정한 후, 그 갈라지는 흔적을 보고 점을 쳤다는 점복에 대해 그 이상 이야기는 안해도 되겠고,

오늘날 중국은 전설의 나라로만 여겨지던 은나라(상나라)의 실체가 갑골문을 통해 밝혀지자 한자의 근원을 갑골문으로 올리고 또 새롭게 발굴되는 홍산문화를 비롯하여 여러 문화들이 출토되자 박물관을 세워서 중국 중심의 문자동북공정을 소리없이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두만강과 압록강 이남의 영토 사고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먼 옛날 우리 선조가 살았던 중국 대륙까지 사고의 폭을 넓혀서 위로는 조상의 혼을 지키고 아래로는 문화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해서체.행서체.초서체.예서체.소전체와 은대의 문자를 제외한 대전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의 한자서체(漢字書體)가 분명하다. 그러나 한자의 근원인 갑골문, 홍산 옥기문, 최근에 발굴되는 골각문(骨刻文) 등 수많은 문자유물은 어쩌면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 수천 년 동안 대륙에서 남긴 발자취이자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갑골문이 한자(漢字)의 근원이라면 한자(漢字)는 우리나라의 문자이고, 은대(상대) 이후 한자서체(漢字書體)는 중국의 것이다.

 더하자면 중국에서 한자(漢字)의 창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그 중 황제의 사관인 창힐(蒼頡 혹은 倉頡) -창힐倉頡, 倉(창안하다)+吉(좋다)+頁(머리)= 머리가 아주 좋은 누군가가 창안하다. 이름만 해석하더라도 한자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머리가 좋은 누군가가 만들었다라고 스스로 고백을 해도 우리는 '너야, 바로 너가 창안했어'라고 한다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서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여씨춘추呂氏春秋' '세본世本' 등 고문헌에 창힐에 관한 설이 나와있다며 마치 사실인양 읊고 있지만 전혀 믿을 것이 못된다고 본인은 단정한다. 왜냐하면 표의문자인 한자(漢字)가 한 사람에 의해 창제될 그런 분야가 전혀 아님을 몸소 실천해보면 금방 탄로가 나는게 기본상식이고, 갑골문자만 보더라도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려지고 다듬어지고 보완되고 새기고 기록된 수천 년 동안 가공되어진 인간의 표현 결정체이다. 서예인들이 많이 쓰는 예서체(隸書體)도 노예 신분인 정막(程邈)이 죄를 지어 노역을 하게 되다가 그것도 우연히 사법관들이 소전체를 쓰는 것이 힘들어 예서체를 개발했는데 정막(程邈)이 노예였기 때문에 노예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서진의 서예가 위항(衛恒)의 '사체서세四體書勢'라는 책 중에 나와있는데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땅이 넓다보니 허풍도 대륙적으로 하는가 보다. 예서체는 통일 진나라 이전 진 무왕 시기에 존재했다라는게 핵심이다. 또 진시황제나 한나라때에 문자통일을 외쳤다면 전국시대, 예를들면 제나라와 초나라는 영어, 연나라와 한나라는 불어, 조나라와 위나라는 베트남어로 전혀 다른 문자를 사용했답니까. 아무 의심없이 남이 하니까 그냥 가르치고 배운게 아닌가! 한번쯤 되돌아 볼 일이다.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다. 어떤자는 중국의 중화사상에 동화되어

          위 사전에서 보듯이 1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조상을 '동쪽의 오랑캐', '미개한 오랑캐 민족'

          이라며 누워서 침 뱉는다. 호환마마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배운자의 무식이다.

 

                            

                                   패각 갑골문(貝殼 甲骨文)     -한국속기록학연구원 소장자료- 

 

 

*글자 크기는 평균 1.5cm,  특징은 획에서 곡선이 없고 모두 직선과 사선이다.

 

*문자의 발달단계는 직선과 사선에서 시작하여 곡선의 단계를 거쳐서 원에서 마무리를 한다. 

갑골문이 먼저 글씨를 쓰고 난 뒤에 새긴 것이냐 아니면 직접 새긴 것이냐에 대해, 여러 견해가 다른데 지금은 대부분 붓과 같은 것으로 쓴 다음 새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자를 연구하는 본인의 생각은 다르다. 항상 상식과 몸소 서각을 해본 경험에 비춰 볼때, 시초는 직선과 사선으로 구성된 단순한 글자여서 직접 새겼을테고 점차 세월이 흐를수록 획순이 많아지고 곡선과 원의 형태를 가미하는 글자의 발달로 갑골이나 기타 재료에 쓰고 난 뒤에 새긴 것으로 여긴다.

 

 

 

<뉴스 2004>

(베이징= 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4일 세계 최초의 갑골문 경매에서 `은허 갑골문"(殷墟 甲骨文)" 조각 20개가 5천280만위앤(약 80억원)에 낙찰됐다고 관영 신화 통신이 보도했다.

신원이 밝혀 지지 않은 한 중년 신사는 수 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상하이 화위앤(花園) 호텔에서 실시된 경매에서 이같은 거액에 갑골문을 낙찰 받은후 호위를 받고경매장을 총총히 떠났다.

3천년전 은(殷)나라때 거북이 등껍질 위에 쓴 갑골문이 일반에 경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갑골문 20개 조각은 톈진(天津)의 서예가 리허녠(李鶴年)씨소장품이다.

리씨는 여러 경로 끝에 지난 1899년 현재의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인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 조각 430개를 소장해오다 이중 400개를 국가에 헌납한이후 문화혁명의 혼란기를 거친 끝에 20개를 보관해왔다.

갑골문이 발견됐던 안양시 암시장에서는 갑골문 1자(字)가 2천위앤(약 30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나 대부분이 가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 나시족의 동파문자는

                   대나무를 깎아 죽필을 만들고

                         소나무재에 아교를 가미해 먹을 만들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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