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高麗圖經)

댓글수0 다음블로그 이동

고려도경(高麗圖經)

천지인천 키보드
댓글수0

 

                                     고려도경(高麗圖經)                   

 

 

 송나라 사절 서긍(徐兢, 1091~1153)고려 견문기.

 서긍(徐兢, 1091~1153)이 1123년(인종 1) 고려 중기 송나라 휘종의 명을 받고 사신 노윤적(路允迪)따라 사절의 한 사람으로 고려 개경에 와서 1개월 남짓 머물면서 보고 들은 것을 귀국 후 그림을 곁들여 지은 책으로 지부족재총서(知不足齋叢書)에 실려 있다.  전40권.  원명은 송 휘종의 연호인 선화(宣和, 1119~1125)를 넣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고 하며, 보통 줄여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 부르고 있다.

 

 책의 명칭에서 보듯이, 1123년 휘종(徽宗)의 명을 받고 사절로 고려에 와서 견문한 고려의 여러 가지 실정을 그림과 글로 설명했기 때문에 ‘도경(圖經)’이라 칭하였다. 책은 모두 28문으로 나누었고, 다시 300여 항으로 세분하였다. 형상을 그릴 수 있는 것은 먼저 글로써 설명하고 그림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1126년 금나라가 송나라의 수도 개봉(開封)을 함락시킬 때 휘종에게 바친 정본이 없어졌다. 1167년 서긍의 조카 천(蕆)이 서긍의 집에 있던 부본에 의거해서 징강군(澂江郡)에서 간각(刊刻)하였다. 그 부본에는 그림이 없었기 때문에 그림이 없는 도경이 되고 말았다. 특히 이 책이 알려지게 된 것은 청나라의 장서가 포정박(鮑廷博)이 편찬한 <지부족재총서(知不足齋叢書)> (30집)에 수록.간행하면서부터이다. 

 

 포정박은 발문에서 ‘건도(建都) 3년에 간행된 송판본과 간행 연대 미상의 고려본이 있으나 볼 수가 없고, 세상에 유전하는 것은 명나라 말기의 정휴중(鄭休仲)의 중간본(重刊本 : 鄭本)뿐이다. 이 정본(鄭本)은 탈자가 수천자에 달하고, 또 착간(錯簡)으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 간본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하여 포정박은 자기 소장의 사본과 정본을 참합(參合), 간행하였다.

 

                                                                                         (한국속기록학연구원 소장자료))

    *영인본이 아닌 진본임.

 

 

 

 

 

 

 

 

 

 

 

 

 

 

    

 

 

 

 

 


 

맨위로

https://blog.daum.net/sokgiin/7127498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