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삼백수] 075 古從軍行(고종군행:옛 군인의 노래) - 李頎(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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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075 古從軍行(고종군행:옛 군인의 노래) - 李頎(이기)

재휘애비.溢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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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075 古從軍行(고종군행:옛 군인의 노래) - 李頎(이기)

 

당시삼백수 권2 칠언악부
075.古從軍行(고종군행) - 李頎(이기)
<옛 군인의 노래>

 

古從軍行(고종군행)

李頎(이기)

 

白日登山望烽火(백일등산망봉화)黃昏飲馬傍交河(황혼음마방교하)

行人刁斗風沙暗(행인조두풍사암)公主琵琶幽怨多(공주비파유원다)

野雲萬里無城郭(야운만리무성곽)雨雪紛紛連大漠(우설분분련대막)

胡鴈哀鳴夜夜飛(호안애명야야비)胡兒眼淚雙雙落(호아안루쌍쌍락)

聞道玉門猶被遮(문도옥문유피차)應將性命逐輕車(응장성명축경거)

年年戰骨埋荒外(연년전골매황외)空見蒲桃入漢家(공견포도입한가)

 

<원문출처> 古從軍行/ 作者李頎

全唐詩·133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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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산에 올라 봉화를 보았는데

황혼 무렵엔 교하성(交河城) 옆에서 말에게 물을 먹인다

 

어두운 모래바람 병사들의 조두(刁斗)소리

공주를 위해 타던 비파처럼 몹시도 서글퍼라

 

들녘 구름 만 리에 성곽은 없고

눈은 어지러이 내려 사막으로 이어진다

 

오랑캐 땅 기러기 슬피 울며 밤마다 날아가니

오랑캐 아이 눈에 맺힌 눈물은 두 줄기로 흐른다

 

듣건대 옥문관이 막혀있다 하니

응당 목숨 걸고 경거(輕車) 장군을 따를 수밖에

 

해마다 전사의 뼈는 변방의 황야에 묻히는데

다만 한나라 황실로 들어오는 포도를 보았을 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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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한낮에 산에 올라 저 멀리 봉화를 보았는데, 황혼이 질 무렵 이미 교하성 근처에 도달하여 말에게 물을 먹인다. 밤이 되자 어두운 모래바람 속에서 출정한 병사들은 오직 순라를 돌며 치는 조두(刁斗) 소리만을 듣는데, 그 소리는 마치 한나라 때 오손국으로 시집가는 공주을 위해 타던 비파소리처럼 몹시 서글프다.

들녘의 구름은 만 리까지 뻗어있고 성곽도 없는데, 눈은 어지러이 휘날려 사막까지 이어진다. 기러기조차 잠 못들어 밤마다 슬피 울면서 날고, 그곳에 사는 오랑캐들은 두 줄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 만리타향 떠나온 한나라 병사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듣건대 옥문관을 막고서 퇴각하는 군사는 목을 치겠다고 하였다 하니, 어쩔 수 없이 목숨 걸고 경거장군을 따라 싸우다 죽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해마다 전사들의 뼈는 서역 변방의 황야에 묻히는데 다만 황실로 들어가는 포도만을 볼 뿐이라네.

 

[解題] 이 시는 기존의 악부시 從軍行(종군행)의 제목을 차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古從軍行(고종군행)이라고 한 것이다. 從軍行(종군행)은 군역이나 출정을 다룬 시가(詩歌)로서 진()나라 좌연년(左延年)이 지은 가사(歌辭)가 있다. 이 작품은 한()나라 무제(武帝) 때 서역 정벌에 나선 병사들의 고난을 묘사하고 있는데, 전쟁으로 인한 암울한 분위기가 변경의 황량한 풍경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다.

해마다 전사의 뼈는 변방의 황야에 묻히는데, 다만 황실로 들어가는 포도를 보았을 뿐이라네.’라는 마지막 구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사실을 끌어와 수많은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정벌 전쟁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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交河(교하) : 중국 서역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토로번현(吐魯蕃縣) 서쪽 지역이다. 漢書(한서)》 〈西域傳(서역전), “차사전국(車師前國)은 왕이 교하성(交河城)을 다스렸는데, 하수(河水)가 나뉘어 흘러서 성 아래를 돌아가므로 교하라고 칭한 것이다.[車師前國 王治交河城 河水分流繞城下 故號交河]”라고 하였다.

 

行人(행인) : 일반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을 뜻하나, 여기서는 출정을 떠난 병사를 지칭한다.

 

刁斗(조두) : 옛날 군대에서 쓰는 취사도구인데, 밤에는 진중에 순라를 돌며 두들겨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公主琵琶幽怨多(공주비파유원다) : ()나라 무제(武帝) 때 오손국(烏孫國)과 화친(和親)을 도모하기 위하여 강도왕(江都王) 유건(劉建)의 딸 세운(細君)을 오손국왕(烏孫國王)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때 비파를 연주하여 세군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석숭(石崇)王昭君辭序(왕소군사서), “옛날 공주가 오손(烏孫)으로 시집갔는데, 말 위에서 비파로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여 그녀가 가는 길에 고향 생각을 위로하도록 하였다.[昔公主嫁烏孫 令琵琶馬上作樂 以慰其道路之思]”라고 하였다.

 

聞道玉門猶被遮(문도옥문유피차) : ‘玉門(옥문)’은 옥문관(玉門關)으로 오늘날 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 서쪽에 위치한,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被遮(피차)’는 길이 막혔다는 뜻이다. 漢書(한서)》 〈大宛傳(대완전)에 한무제(漢武帝) 원년(元年), “李廣利(이광리)에게 명하여 대완국(大宛國)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사병들이 굶주려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이광리가 글을 올려 전쟁을 끝낼 것을 요청하니, 무제(武帝)가 크게 노하여 군사를 보내 옥문관을 막고 퇴각하는 군사는 바로 목을 베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輕車(경거) : 군 지휘관의 명칭으로 한대(漢代)에 경거장군(輕車將軍), 경거도위(輕車都尉) 등이 있었다.

 

葡萄/葡桃(포도) : () 무제(武帝) 때 서역 나라에서 유입된 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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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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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李頎 ] 출생 - 사망 690년 추정 ~ 751

당나라 때 사람. 본적(本籍)은 미상이고, 영양(潁陽, 河南 登封縣 西南) 땅에서 오래 살았다. 개원(開元) 23(735) 진사가 되고, 신향현위(新鄕縣尉)에 올랐다. 당시의 시인 왕유(王維), 왕창령(王昌齡) 등과 교유했다. 천보(天寶)와 개원(開元) 연간에 활동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관직은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고 영양으로 돌아와 은거했다.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3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뜻을 얻지 못해 산림에 은거한 채 살았다. 방랑생활을 통해 신선 세계를 동경하면서 단사(丹砂)를 복용했다. 때문에 작품의 대부분이 현언시(玄言詩).

[네이버 지식백과] 이기 [李頎]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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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古從軍行(고종군행:옛 군인의 노래) - 李頎(이기)|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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