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삼백수, 084.行路難三首之三(행로난 삼수 중 제3수) - 李白(이백)(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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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084.行路難三首之三(행로난 삼수 중 제3수) - 李白(이백)(3/3)

재휘애비.溢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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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권2 칠언악부
84.行路難三首之三(행로난 삼수 중 제3) - 李白(이백)(3/3)
<세상살이 어려워라>

 

行路難(행로난)
세 수 중 세 번째 시

 

李白(이백)

 

[三]

 

有耳莫洗潁川水(유이막세영천수),有口莫食首陽蕨(유구막식수양궐)。
含光混世貴無名(함광혼세귀무명),何用孤高比雲月(하용고고비운월)。
吾觀自古賢達人(오관자고현달인),功成不退皆殞身(공성불퇴개운신)。
子胥既棄吳江上(자서기기오강상),屈原終投湘水濱(굴원종투상수빈)。
陸機雄才豈自保(육기웅재개자보),李斯稅駕苦不早(이사세가고부조)。
華亭鶴唳詎可聞(화정학려거가문),上蔡蒼鷹何足道(상채창응하족도)。
君不見吳中張翰稱達生(군불견오중장한칭달생),

秋風忽憶江東行(추풍홀억강동행)。
且樂生前一杯酒(차락생전일배주),何須身後千載名(하수신후천재명)。


귀 있다고 영천(潁川)의 물로 귀를 씻지 말 것이요
입 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고사리 캐 먹지 말 것이다

 

빛을 숨기고 세상과 뒤섞여 무명(無名)을 귀하게 여길지니
어찌하여 고고함을 구름과 달에 비기는가

 

내 자고로 현달한 사람들을 보았더니
공 이룬 후 물러나지 않은 자 모두 몸을 망쳤다네

 

오자서(伍子胥)는 이미 오강(吳江)에 버려졌고
굴원(屈原)은 끝내 상수(湘水)의 물속으로 몸을 던졌지

 

육기(陸機)의 뛰어난 재주로도 어찌 스스로를 지키겠는가
이사(李斯)의 휴식은 너무나도 늦었으니

 

화정(華亭)의 학 울음소리 어찌 들을 수 있었으며
상채(上蔡)의 푸른 매 어찌 족히 말하리오

 

그대는 보지 못했나,
오나라 사람 장한(張翰)이 달관한 삶이라 일컬어짐은
가을바람에 문득 강동(江東)으로 떠날 생각했다네

 

다만 생전의 한 잔 술 즐길 뿐이지
어찌 하필 죽은 뒤에 천년의 이름 남기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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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이 세상에서는 고결함을 지나치게 드러내서는 안 되니, 귀가 있어도 허유(許由)처럼 潁川의 물에 씻지 말 것이요, 입이 있어도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 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의 빛을 감추고 재주와 지혜를 간직한 채 세상과 뒤섞여 무명(無名)의 삶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니, 어찌 자신의 고고(孤高)함을 드러내어 저 하늘의 구름과 달에 스스로를 견줄 필요가 있겠는가.


예로부터 현명하고 통달한 사람들을 내가 보았더니, 功名을 이룬 후 물러나지 않아 결국은 몸을 망치고 죽음에 이르렀다. 오자서(吳子胥) 같은 이는 오강(吳江)에 그 시신이 버려졌고 굴원(屈原) 역시 상수(湘水)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육기(陸機)는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지만 끝내 자신을 지키지 못하였고, 이사(李斯) 또한 일찍 물러나지 않은 탓에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그러니 육기(陸機)가 어찌 화정(華亭)의 학 울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겠으며, 이사(李斯)가 상채(上蔡)에서 매를 가지고 토끼사냥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은 들어보지 못했는가, 진(晉)나라 소주(蘇州)의 장한(張翰) 이야기를. 그는 원래부터 성품이 曠達하여 齊나라 왕 冏이 그에게 벼슬을 주었는데도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문득 고향의 고수나물, 농어회, 순채국이 생각나 즉시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말하였다. “우선 생전에 한 잔 술 마시며 즐거움 누릴 뿐이지, 어찌 하필 죽은 뒤에 천년의 명성 남기려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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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전의 우수(憂愁)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그는 “공을 이룬 뒤 물러나지 않은 이들은 모두 몸을 망쳤다.”고 하면서 오자서(伍子胥), 굴원(屈原), 육기(陸機), 이사(李斯) 등 역사 속의 인물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허유(許由)나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지나치게 고고(孤高)하여 천년 후에도 그 이름이 남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 그는 장한(張翰)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지금의 삶 속에서 한 잔 술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를 희망하지만 거기에는 달관ㆍ체념의 뜻과 아울러 비탄(悲歎)의 기운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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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潁川水(영천수) : ‘潁川(영천)’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다.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인 허유(許由)가 출사(出仕)를 원치 않아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들은 후 이곳에서 귀를 씻었다고 전해진다. 〈高士傳(고사전)〉에, “허유가 중악(中岳), 영수(潁水)의 북쪽 기산(箕山)의 아래에서 밭을 갈았다. 요(堯) 임금이 그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 하니, 그는 그 말을 듣지 않고자 하여 영수(潁水)의 물가에서 귀를 씻었다.[許由耕於中岳 潁水之陽 箕山之下 堯召爲九州長 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之濱]”고 하였다.
<장자 소요유 2장 참조>

 

역주2> 首陽蕨(수양궐) : 수양산(首陽山)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이라고도 하고 혹은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굶주리며 은거하던 곳인데, 그들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고 전한다. 《史記》 〈伯夷列傳(백이열전)〉에, “무왕이 은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자 천하가 周나라를 종주로 삼았다. 그러나 백이 숙제만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의리를 지키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서 은거하며 고사리를 캐서 먹었다.[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고 하였다.
<한유의 백이송 참조> :

역주3> 含光混世(함광혼세) : ‘含光(함광)’은 재주와 지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간직하고 있음을 말한다. 含光混世(함광혼세)는 《老子(노자)》의, “지혜의 빛을 부드럽게 하고 속세의 티끌과 함께 한다.[和其光 同其塵]”와 그 뜻이 같다.

 

역주4> 殞身(운신) : 몸을 버려 죽는 것을 말한다.

역주5> 子胥旣棄吳江上(자서기기오강상) : 오자서(伍子胥)가 충직하게 간언(諫言)하였지만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듣지 않았고, 도리어 오나라 왕에게 사사(賜死)당하여 그 시신이 오강(吳江)에 던져졌다.

역주6> 屈原終投湘水濱(굴원종투상수빈) : 굴원(屈原)은 초(楚)나라 대부(大夫)로 이름은 평(平), 자는 영균(靈均)이다. 회왕(懷王)은 그의 재주를 중히 여겼으나 훗날 근상(靳尙)ㆍ자란(子蘭) 같은 무리에게 참소와 비방을 당해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이에 굴원은 〈離騷(이소)〉 〈漁父(어부)〉 같은 글을 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회왕(懷王)의 아들인 경양왕(頃襄王) 때 굴원은 또다시 멀리 내침을 당하였고, 자신의 충군우국(忠君憂國)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등용되지 못하자 5월 5일에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史記》 〈屈賈列傳(굴가열전)〉에 그의 사적(事蹟)이 자세히 보인다.
<굴원의 어부사 참조> :

역주7> 陸機雄才豈自保(육기웅재개자보) : 육기(陸機)는 오군(吳郡:지금의 江蘇省 吳縣) 사람이다. 그는 吳나라 대사마(大司馬)인 육항(陸抗)의 아들이었는데 오나라가 멸망한 후 진(晉)나라로 들어가 낙양(洛陽)에 이르렀고 장화(張華)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진(晉)나라 혜제(惠帝) 태안(太安) 2년(303),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 등이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를 치는데 육기를 후장군(後將軍) 하북대도독(河北大都督)으로 삼았다. 육기는 왕수(王粹)ㆍ견수(牽秀) 등의 여러 군대를 이끌고 녹원(鹿苑)에서 싸웠는데 그의 군대가 대패하였다. 환관(宦官) 맹구(孟玖)가 육기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참소하니, 사마영은 화가 나서 견수로 하여금 육기를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육기는 사형에 임하여 태연자약한 얼굴로 “화정(華亭)의 학이 우는 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으랴?”고 탄식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 43세였다. 화정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서쪽의 평원촌(平原村)으로 육기 형제가 일찍이 함께 놀던 곳이다. 《晉書(진서)》 〈陸機傳(육기전)〉에 이 일이 자세히 보인다.

역주8> 李斯稅駕苦不早(이사세가고부조) :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상채(上蔡:지금의 河南省 汝南縣 북쪽) 사람이다. 순경(荀卿)을 좇아 배우다가 공부를 끝마치자 서쪽으로 진(秦)나라에 들어가 여불위(呂不韋)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훗날 진(秦)나라 왕(王)에게 등용되었는데, 진나라 왕(진 시황제)이 천하를 평정한 뒤에 이사(李斯)를 승상(丞相)으로 삼으니 법령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사의 장남인 유(由)는 삼천(三川)의 태수(太守)가 되었고 여러 아들들은 모두 진(秦)나라 공주와 결혼하였으며, 딸들은 모두 진(秦)나라의 여러 公子들에게 시집갔다. 삼천의 태수인 이유(李由)가 휴가를 얻어 함양(咸陽)으로 돌아가니 백관(百官)의 장(長)들이 모두 나와 축수(祝壽)하였다. 대문과 뜰에 있는 거기(車騎)를 천(千)으로 헤아릴 정도였는데, 이때 이사는 깊이 탄식하면서 “나는 상채(上蔡)에서 태어난 평민일 뿐인데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자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는 법인데, 나는 언제 어디에서 말의 멍에를 풀고 휴식하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훗날 진시황(秦始皇)이 병들어 죽자 이사는 조고(趙高)에게 무고(誣告)를 당하였는데, 이사의 父子가 도적들과 내통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사는 함양의 저자에서 허리가 잘려 죽는 형벌을 받았다. 형벌을 받기에 앞서 이사는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내 너와 함께 다시 한 번 누런 개를 끌고 매를 팔뚝에 얹고서 상채(上蔡) 동문 쪽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라고 하였다. 세가(稅駕)는 말의 멍에를 풀고 수레를 멈춘다는 뜻으로, 휴식함을 이른다. 《史記》 〈李斯列傳(이사열전)〉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9> 張翰(장한) : 자(字)는 계응(季鷹)이고 오(吳)나라 사람이다. 제(齊)나라 왕 경(冏)이 그를 불러서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을 삼았다. 훗날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 吳 땅의 고수나물, 순채국, 농어회가 생각나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경(冏)이 싸움에서 패하자 사람들은 모두 장한이 기미를 미리 알아챈 것이라고 하였다. 장한은 마음 내키는 대로 유유자적 살면서 세상에서 이름을 구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나 죽은 뒤에 이름이 남도록 하느니 차라리 지금 당장 한 잔 술을 마시겠다.[使我有身後名 不如卽時一杯酒]”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광달(曠達)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晉書(진서)》 〈文苑傳(문원전)〉에 자세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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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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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行路難三首之三(행로난 삼수 중 제3수) - 李白(이백)(3/3)|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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