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亭集序(난정집서), 王羲之(왕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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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중어중문학과

蘭亭集序(난정집서), 王羲之(왕희지)

재휘애비.溢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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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고문관지(古文觀止)]<7 六朝唐文> 02.난정집서(蘭亭集序) <作者王羲之(왕희지)>

<난정집(蘭亭集)의 서문>

 

이 편은 고문관지(古文觀止) 7 육조당문(六朝唐文)’의 두 번째 편으로 동진(東晋)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가 회계산 북쪽 난정(蘭亭)에서 동료들과 시회를 열고 26명의 시 37수를 모아 편집한 것이 <난정집(蘭亭集)>이며 이 서문을 쓴 것이 <난정집서(蘭亭集序)>이다.

 

명문장이라고 칭해지는 난정집서(蘭亭集序)는 난정기(蘭亭記), 계서(禊序), 난정서(蘭亭序), 계첩(禊帖), 난정연집서(蘭亭宴集序)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고문진보에서는 <난정기(蘭亭記)>로 실려 있으며 고문관지에는 <난정집서(蘭亭集序)>로 실려 있다.

서예가 왕희지의 작품으로 천하제일의 행서로 칭해진다. 동진(東晉) 목제(穆帝) 영화9(353) 3월초왕희지와 아들 왕응지(王凝之), 왕휘지(王徽之), 왕조지(王操之), 왕헌지(王献之) 등과 손통(孫統), 이충(李充), 손작(孫綽), 사안(謝安), 지둔(支遁) 등 소장군현 41명이 회계산 북쪽 난정에서 모여 계제사를 행한 후 시회(詩會)를 열어 26명의 시 37수를 모아 편집한 것이 <난정집>이며 이 서문을 쓴 것이 <난정집서>이다. 난정집서는 모두 324자로 되어있다.

 

<고문관지(古文觀止) <7 六朝唐文(육조당문)> 02.난정집서(蘭亭集序)>

 

02. 난정집서(蘭亭集序) <作者王羲之(왕희지)>

 
永和九年(영화구년), 歲在癸丑(세재계축), 暮春之初(모춘지초),
會于會稽山陰之蘭亭(회우회계산음지난정), 修禊事也(수계사야).
羣賢畢至(군현필지), 少長咸集(소장함집),
此地有崇山峻嶺(차지유숭산준령), 茂林脩竹(무림수죽),
又有淸流激湍(우유청류격단), 映帶左右(영대좌우),
引以爲流觴曲水(인이위류상곡수), 列坐其次(열좌기차),
雖無絲竹管絃之盛(수무사죽관현지성), 一觴一詠(일상일영),
亦足以暢敍幽情(역족이창서유정).
是日也天朗氣淸(시일야천랑기청), 惠風和暢(혜풍화창).
仰觀宇宙之大(앙관우주지대), 俯察品類之盛(부찰품류지성),
所以遊目騁懷(소이유목빙회), 足以極視聽之娛(족이극시청지오),
信可樂也(신가락야).
 

 

영화(永和) 9년(353년) 계축년 늦은 봄 초순에 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의 난정(蘭亭)에 모여 계제사(禊祭祀)를 지내게 되었다,

많은 현재들이 모두 모이고 젊은이와 나이 많은 이 모두 모였다.

이곳에는 높은 산과 험한 산줄기,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으며,

또 맑은 시냇물과 급한 여울이 있어 좌우를 띠처럼 비추면서 둘러싸고 있다.

물길을 끌어다 술잔을 띄울 굽은 물줄기를 만들고 차례대로 둘러앉으니,

비록 관악기와 현악기의 성대함은 없지만 한 잔 술에 시 한 수 읊으니

그윽한 감정을 활짝 펴기에 충분하다.

이날 하늘은 맑게 개이고 공기도 맑으며 봄바람은 온화하였다.

우주의 무한함을 우러러 보고 만물의 무성함을 굽어 살핀다.

눈길 가는 대로 보면서 감회를 풀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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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永和(영화) : 동진(東晉) 목제(穆帝)의 첫 번째 연호이다. 345년에서 356년까지 12년 동안 사용하였다

 山陰(산음) : 지금의 절강(浙江) 소흥(紹興)을 가리킨다.

 禊事(계사) : 禊祭祀(계제사). 옛날에 재액을 떨어 버리기 위해 봄·가을 강가에서 거행하던 제사.

 激湍(격단) ;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

 映帶(영대) : 서로 비추다. 둘러싸다.

 絲竹管絃(사죽관현) : 관악기와 현악기

 暢敍(창서) : 마음을 화창(和暢)하게 폄.

 幽情(유정) : 마음속 깊이 간직한 감정.

 惠風(혜풍) : 음력 3월을 달리 부르는 말. 혜풍은 만물을 나고 자라게 하며, 부드럽게 피부에 와 닿는 동남풍의 3월 봄바람을 가리킨다.

 俯察(부찰) : 내려다보다. 굽어 살피다.

 品類之盛(품류지성) : 만물이 한없이 무성함. 品類는 금수와 초목을 비롯한 만물을 가리킨다.

 遊目騁懷(유목빙회) : 눈길을 들어 자유로이 바라보고, 마음에 품은 생각을 자유로이 마음껏 구사하는 것. ()은 내달리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다.

 視聽之娛(시청지오)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 여기서는 경치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부인지상여부앙일세), 或取諸懷抱(혹취제회포),
悟言一室之內(오언일실지내), 或因寄所託(혹인기소탁),
放浪形骸之外(방랑형해지외), 雖趣舍萬殊(수취사만수), 靜躁不同(정조불동),
當其欣於所遇(당기흔어소우), 蹔得於己(잠득어기), 快然自足(쾌연자족),
不知老之將至(부지로지장지):
及其所之旣倦(급기소지기권), 情隨事遷(정수사천), 感慨係之矣(감개계지의).
之所欣(향지소흔), 俯仰之間(부앙지간), 已爲陳迹(이위진적),
猶不能不以之興懷(유부능부이지흥회):
況脩短隨化(황수단수화), 終期於盡(종기어진).
古人云(고인운): :「死生亦大矣(사생역대의) 豈不痛哉(기부통재)
 

 

사람이 서로 어울려 한세상을 살아감에 어떤 때는 회포를 끌어내어

한 방 안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맡겨진 처지에 따라

육체 밖에서 방랑하게도 하고, 비록 취향이 천만 가지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같지 않지만 기쁜 일을 만나서는 잠시 스스로 만족하고 유쾌하게 즐거워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조차 모른다.

하는 일이 지루하게 되면 감정도 변화에 따라 옮겨져 슬픈 마음이 들게 된다.

아까의 기뻐하던 일이 잠깐 사이에 이미 낡은 자취가 되어버리니,

오히려 이 때문에 감회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자연의 조화에 따라 끝내 소멸되는 것에 대해서야.

옛 사람이 이르기를 죽고 사는 것 역시 중대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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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의미 없는 문장 앞의 발어사(發語詞).

 俯仰一世(부앙일세) : 세상에 순응하여 행동함.

 取諸懷抱(취제회포) : 자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끌어 냄.

 悟言(오언) : 면담하다. 마주앉아 이야기하다.

 趣舍萬殊(취사만수) : 취향이 만 가지로 다르다. 萬殊(만수)는 천차만별(千差萬別). 모든 것이 천만 가지로 다 다르다.

 靜躁(정조) : 고요함과 시끄러움.

 不知老之將至(부지로지장지) :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 공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그의 사람됨이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이치를 깨달으면 즐거워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인물됨을 물었을 때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자가 자신을 평한 말이다.<論語 述而 18>

 () : 지난번.

 俯仰之間(부앙지간) : 머리를 숙였다 다시 드는 사이. 즉 짧은 시간.

 脩短隨化(수단수화) : 생명의 긴 것과 짧은 것은 자연의 조화를 따른다.

 死生亦大矣(사생역대의) : 삶과 죽음은 인생의 중대사이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서는 死生亦大矣(사생역대의) 而不得與之變(이부득여지변) :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중대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莊子(내편)5篇 德充符(덕충부):01.외물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每攬昔人興感之由(매람석인흥감지유), 若合一契(약합일계),
未嘗不臨文嗟悼(미상불임문차도), 不能喩之於懷(불능유지어회).
固知一死生爲虛誕(고지일사생위허탄), 齊彭殤爲妄作(제팽상위망작).
後之視今(후지시금), 亦猶今之視昔(역유금지시석), 悲夫(비부)!
故列敍時人(고렬서시인), 錄其所述(녹기소술),
雖世殊事異(수세수사이), 所以興懷(소이흥회), 其致一也(기치일야).
後之覽者(후지람자), 亦將有感於斯文(역장유감어사문).
 

 

매번 옛 사람들이 감회를 일으켰던 이유를 살펴보면 마치 한 개의 부절을 맞춘 것 같아,

일찍이 글을 대하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나의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진실로 죽고 사는 것을 하나로 여기는 것은 허황되고 거짓된 것이며, 팽조(彭祖)와 어려서 죽은 자를 같게 보는 것은 망령되고 작위적인 것임을 알겠다.

후세 사람들이 지금을 보는 것도 또한 지금 사람들이 옛 사람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프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차례로 서술하고, 그들이 지은 글을 기록한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상황이 변하여도 감회를 일으키는 이치는 같다,

후세에 읽어보는 사람들도 역시 이 글에 감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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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若合一契(약합일계) : 하나의 부절(符節)을 맞춘 것과 같다. 는 부계(符契) 또는 부절(符節). 나무쪽 또는 대나무로 만든 부신(符信)으로 한 쪽은 조정에 두고, 한 쪽은 사신이 지니고 다녔다. 부절을 맞춘 것 같다함은 똑같다는 뜻.

 嗟悼(차도) : 한탄하며 슬퍼함.

 齊彭殤(제팽상) : 팽조(彭祖)와 어려서 죽은 자를 같게 보는 것. ()은 어려서 죽다팽조(彭祖)의 본명은 전갱(籛鏗)으로 요()임금 때 팽성(彭城)에 봉해진 뒤 하()()() 3대에 걸쳐 8백 년을 살았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는 일찍 죽은 아이보다 장수한 자가 없고 팽조는 요절한 것이다.(莫壽於殤子, 而彭祖爲夭.)”라고 하였다.

 

 不能諭之於懷(불능유지어회) : 마음을 타일러 달랠 수 없음.

 一死生(일사생) : 살고 죽는 것이 하나임. 죽음도 삶도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노장(老莊)의 사상이다.

 虛誕(허탄) : 허황되고 근거 없음.

 世殊事異(세수사이) :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가 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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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희지(王羲之: 303 ~ 361). 동진의 정치가이자 시인, 서예가이다. 자는 일소(逸少), 호는 담재이며, 서예가 탁월해 서성이라고 일컬어진다. 일찍이 우군장군을 역임했기에 왕우군(王右軍)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서진의 서예가인 위부인에게 배웠고 후에 한나라나 위의 비문을 연구하여 초서, 행서, 해서의 서체를 완성하였다. 작품으로 난정서〉,상란첩,황정경,악의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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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蘭亭集序/作者王羲之 東晉

本作品收錄於古文觀止藝文類聚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會於會稽山陰之蘭亭脩稧事也羣賢畢至少長咸集此地有崇山峻領茂林脩竹又有清流激湍帶左右引以為流觴曲水列坐其次雖無絲竹管弦之盛一觴一詠亦足以暢敘幽情

 

영화(永和) 9년(353년) 계축년 늦은 봄 초순에 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의 난정(蘭亭)에 모여 계제사(禊祭祀)를 지내게 되었다, 많은 현재들이 모두 모이고 젊은이와 나이 많은 이 모두 모였다. 이곳에는 높은 산과 험한 산줄기,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으며, 또 맑은 시냇물과 급한 여울이 있어 좌우를 띠처럼 비추면서 둘러싸고 있다. 물길을 끌어다 술잔을 띄울 굽은 물줄기를 만들고 차례대로 둘러앉으니, 비록 관악기와 현악기의 성대함은 없지만 한 잔 술에 시 한 수 읊으니 그윽한 감정을 활짝 펴기에 충분하다.

 

是日也天朗氣清惠風和暢仰觀宇宙之大俯察品類之盛所以遊目騁懷足以極視聽之娛信可樂也

 

이날 하늘은 맑게 개이고 공기도 맑으며 봄바람은 온화하였다. 우주의 무한함을 우러러 보고 만물의 무성함을 굽어 살핀다. 눈길 가는 대로 보면서 감회를 풀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或取諸懷抱晤言一室之內或因寄所託放浪形骸之外雖趣舍萬殊靜躁不同當其欣於所遇暫得於己怏然自足不知老之將至及其所之既倦情隨事遷感慨係之矣向之所欣俯仰之間已為陳跡猶不能不以之興懷況脩短隨化終期於盡古人云:「死生亦大矣。」豈不痛哉

 

사람이 서로 어울려 한세상을 살아감에 어떤 때는 회포를 끌어내어 한 방 안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맡겨진 처지에 따라 육체 밖에서 방랑하게도 하고, 비록 취향이 천만 가지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같지 않지만 기쁜 일을 만나서는 잠시 스스로 만족하고 유쾌하게 즐거워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조차 모른다. 하는 일이 지루하게 되면 감정도 변화에 따라 옮겨져 슬픈 마음이 들게 된다. 아까의 기뻐하던 일이 잠깐 사이에 이미 낡은 자취가 되어버리니, 오히려 이 때문에 감회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자연의 조화에 따라 끝내 소멸되는 것에 대해서야. 옛 사람이 이르기를 죽고 사는 것 역시 중대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每攬昔人興感之由若合一契未嘗不臨文嗟悼不能喻之於懷固知一死生為虛誕齊彭殤為妄作後之視今亦由今之視昔悲夫故列敘時人錄其所述雖世殊事異所以興懷其致一也後之攬者亦將有感於斯文

 

매번 옛 사람들이 감회를 일으켰던 이유를 살펴보면 마치 한 개의 부절을 맞춘 것 같아, 일찍이 글을 대하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나의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진실로 죽고 사는 것을 하나로 여기는 것은 허황되고 거짓된 것이며, 팽조(彭祖)와 어려서 죽은 자를 같게 보는 것은 망령되고 작위적인 것임을 알겠다. 후세 사람들이 지금을 보는 것도 또한 지금 사람들이 옛 사람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프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차례로 서술하고, 그들이 지은 글을 기록한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상황이 변하여도 감회를 일으키는 이치는 같다, 후세에 읽어보는 사람들도 역시 이 글에 감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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