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화투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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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의 유래

영어의 카드(card)에 해당되는 포르투갈의 칼타(carta)는 17세기에 일본에 들어와서 카루타(カルタ)가 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도박 카루타가 금지 되었을 때 그 대용으로 카루타와 교육성이 있는 화조(花鳥) 맞추기를 합쳐서 하나후다(花札 화찰), 즉 화투가 새로 고안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금지되었다가 풀렸다가 반복하다가 메이지(明治)시대에는 금령이 완전히 풀려 하나후다가 널리 퍼져나갔다. 그 후 일제시대까지 많이 성행하다가, 패전이후 차츰 줄어들기 시작하여 지금 일본에서는 하나후다를 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요즘에는 마작(麻雀 マジソ)이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실내오락으로써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일본사람들은 화투의 기원이 일본이라는 것을 모르고 한국놀이인줄로 알고 있다. 한국에 건너온 화투는 이제는 완전히 정착하여 한국민들의 오락으로 대중화되어 버렸다. 화투(花投)는 경상도 지방에서는 화토라고도 한다.

화투, 화찰의 뜻은 꽃이 그려진 카드를 던지는 게임, 또는 꽃이 그려진 카드를 맞추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또 화투(花鬪)라고 하는데, 한국의 화투(花鬪)라는 명칭은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조선에서 번성했던 수투(數鬪)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수와 그림으로 구성된 수투와 구별하여 꽃 그림이 그려진 화투 즉 화투전(花鬪錢)의 뜻으로 조선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식민지 시대인 일제 시대에 들여왔다면 다른 놀이 용어와 마찬가지로 일본어 명칭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즉, 하나후다(화찰)가 아닌 화투라는 명칭을 가진 것으로 볼 때, 화투라는 명칭은 일제시대 보다 빠른 조선말에 부산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일본상인들이 하나후다를 가지고 와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하나후다는 수투에서 유래한 화투라는 이름으로 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수투의 기원

조선의 수투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설과 자생설이 있는데,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직 없다. 현재의 화투놀이가 정립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므로 역으로 화투의 성립단계에 수투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고, 반대로 일본에 성행하던 꽃그림 중심의 다양한 화투놀이의 영향을 받아 수투가 탄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후다가 조선조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화투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수투는 투전과 비슷한 놀이로 어떤 이는 이것이 중국의 지패 또는 엽자희를 모방한 것이라기도 하고, 조선후기 실학자(19세기 중엽)인 이규경은 그의 저서에서 17세기 숙종 시절 역관이었던 장현이 이를 고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중국 것과 수투는 그 형태나 노는 방법이 서로 다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전해 내려오던 이 놀이를 장현이 정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수투의 크기는 투전과 비슷하며 역시 한지를 여러 겹 바른 것에 그림을 그리고 기름에 절여 놓았다. 이는 모두 여덟 가지  80장으로 이루어진다. 여덟 가지는 사람, 물고기, 새, 꿩, 별, 말, 노루, 토끼이며 각 종류마다 1에서부터 9까지와 장수가 있다. 수가 많은 사람은 이기고 없는 사람은 지게 된다.


한국에 전래되어

하나후다는 일본에서 19세기 초에 완성되어 19세기말에 쓰시마섬(對馬島) 상인들에 의해 부산 지방에 처음 들여와 화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는 19세기 중엽(1830-1844년)에 화투의 판매가 금지된 데 이어, 1902년 이후에도 일본 내에서 판매되는 화투에 한해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억제 조치가 꾸준히 전개되지만, 1920년경에는 게임 종류가 30 여종에 달하였다고 하니 일본 사람들도 그 당시 화투를 꽤 즐겼던 것 같다.

화투는 1940년 이후 일본군의 대륙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과 중국에 적극적으로 수출되어 군대 내에서만은 허용된 일본 최초의 공영 도박이 되는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강제 징용 및 군속으로 참여했던 한국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일제는 1945년 항복과 함께 이 땅을 떠났어나, 일제가 뿌려 놓은 화투 노름은 일제와 함께 물러가지 않았다.

현재의 고스톱은 일본의 고이고이(오라오라)를 바탕으로 하치하치(팔팔)가 가미된 것으로서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80년대 들어 급속한 경제적 발달과 정치적 혼탁기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게 되면서 오늘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쓰리고, 흔들기, 피바가지, 설사, 독박, 싹쓸이 등등 스릴이 넘치는 규칙의 GO STOP이라는 새로운 실내스포츠로 개발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즐기는 것으로 완전히 한국적인 것으로 정착이 된 것 같다.


일제시대 때 대유행

일제가 한국인의 저항의식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화투를 유행시켰다는 말이 있다. 민속학자들은 화투의 전래 시기보다는 화투 노름이 일제시대 급속도로 확산됐다는 점에 더욱 주목한다. 일제시대 들어 각계각층으로 급격하게 전파된 데에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재야에서 의식주 등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연구해 온 서석규(64)씨는 "일제 침략기를 거친 노인들한테 '일본에 간 한국인들에게 화투 20∼30목을 선물로 줘 고향에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저항 의식을 막기 위해 화투를 보급했으며, '조선의 몸과 정신'을 노름판에서 탕진하도록 한 일제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제시대 서민층에서 유행했던 `화투타령'이다. 화투의 1(솔)부터 12(비)까지를 각 달과 연결시켜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의 `허무한 삶'을 읊고 있다. 일제시대 때 이미 화투가 서민층에 널리 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월 솔에 쓸쓸한 내 마음. 이월 매화에 매어 놓고, 삼월 사쿠라 산란한 내 신세.

사월 흑싸리에 축 늘어지네. 오월 난초에 나는 흰나비. 유월 목단에 웬 초상인가.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 공산 허송한다. 구월 국화 굳어진 내 마음.

시월 단풍에 우수수 지네. 동지 오동에 오신다던 님은 섣달 비 장마에 갇혀만 있네.


신종화투의 보급

한국민족정신연합회 총재인 김옥순씨는 순수한 한국식으로 바꾼 개벽(開關)화토를 의장등록 특허 출원했으며, 문화관광부에 저작권출원을 했다. 개벽화토의 가장 큰 특징은 꽃, 풀, 나무, 새, 짐승, 사람 등 화토속에 등장하는 그림을 일본풍이 아닌 순수 토종인 한국식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1월 광(光)의 경우는 한국의 학과 소나무, 띠패의 경우 홍단(紅繼), 청단, 초단은 홍마(紅麻), 청마, 초마로 고쳤다. 2월도 꾀꼬리대신 까치로 "복(福)"자를 담은 고려청자를 그려 청아한 도덕정신을 표현했다. 4월은 등나무 위로 참새가 날아오르는 대구 팔공산의 밝은 달이 떠있는 풍경이나, 영변 약산의 진달래처럼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하였고, 특히 12월 광(光)의 경우 일본의 서예가의 그림 대신 우리 민족의 영원한 연인 황진이를 그려 넣었다. 개벽화토 외에도 많은 종류가 나와 선을 보이고 있다.

건전한 놀이문화 정착과 한국 전통문화 계승차원에서 일본식 화투를 몰아내고 한국인의 자존심과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한국인이 그린 화토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일본화투의 그림

1월 소나무의 학

2월 매화의 휘파람새

3월 벚꽃의 장막

4월 등나무의 비둘기,

5월 창포의 하쯔다리(橋)

6월 모란과 나비

7월 싸리나무와 맷돼지

8월 참억새와 달, 그리고 기러기

9월 국화와 술잔.

10월 단풍과 사슴

11월 오노노 미치카제, 개구리, 버들, 그리고 제비

12월 오동과 봉황

 

하나후다(일본화투)의 사진.


화투가 일본에서 만들어 졌을 때 어떤 의미로 그려진 것인지를 월별로 살펴보자. 화투의 그림은 누가 언제 그린 것인지는 아무런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

1월은 복과 건강을 담은 송학(송학)을 뜻한다. 일본에는 정월 초하루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가지를 집 앞에 꽂아두는 풍습이 있다. 카도마쯔(門松)라고 불리 우는 세시풍속으로 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이 풍속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림의 솔은 소나무 같지는 않다. 언뜻 보면 산에 학이 있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한데 이것이 소나무새순이나, 솔방울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소나무를 추상적으로 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은 십장생(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중의 하나로 무병장수를 뜻하는 동물로 결국 1월은 복과 건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2월은 매화에 꾀꼬리가 깃든 모양이다. 2월에는 매화축제가 벌어진다. 꽃도 꽃이려니와 특히 열매, 즉 매실을 소금에 절인 우메보시(梅干)는 일본인들의 입맛을 돋우는 대표적인 일본음식이다. 도시락을 사면 반드시 밥 위에 우메보시 하나는 꼭 얹여서 싼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음식이다. 새는 꾀꼬리 종류 중에 하나인 휘파람새(鶯 우구이쓰)라고 한다. 일본의 초봄을 장식하는 새라고 한다. 참고로 일본에 없는 우리나라의 꾀꼬리는 일본에서는 고려꾀꼬리(高麗鶯 코라이 우구이쓰)라고 하고 4-5월에 찾아오는 여름철새이다. 휘파람새도 한반도에 흔한 여름철새이다.

3월은 벚꽃(櫻앵 사꾸라)을 담은 바구니 모양이지만, 만마쿠(慢幕)라고 부르는 막이라고 한다. 각종 식장에 둘러치는 전통휘장으로 쓰여진다고 한다.

4월은 한국사람은 검은싸리나무처럼 보여 흑싸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등나무이다. 등나무 줄기와 잎이 늘어진 모양인데 화투놀이를 하면 이것을 거꾸로 세우는 사람도 있다. 등(藤 후지)나무는 일본의 초여름을 상징하면서 가마의 장식, 가문의 문장으로 자주 쓰이는 나무이다. 일본에는 후지로 시작하는 이름들이 많다. 예를 들어 후지모토, 후지타, 후지이 등의 이름이 많은 것도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것이지를 나타내준다. 새는 비둘기(鳩 하토)이다. 나무에 앉더라도 자신의 부모보다 더 낮은 가지에 앉는 예절바른 새로 평가된다.

5월은 한국인은 초(草), 즉 난초라고 하지만 난초와는 전혀 다른 창포(菖蒲 쇼우부)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그림은 붓꽃(아야메)이나 꽃창포(노하나쇼우부)를 그려 놓고 있다. 일본인들도 창포와 꽃창포를 혼돈 하는 것 같다. 창포는 천남성과로 꽃은 볼품이 없다. 창포뿌리가 향긋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5월 단오절에 창포로 머리를 감는 풍속이 있다. 꽃창포는 붓꽃과로 잎이 창포와 닮았으나 꽃은 붓꽃 모양이다. 붓꽃은 꽃잎안쪽에 그물무늬가 있으나 꽃창포는 그물무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별 할 수 있다.

붓꽃 아래쪽에 하쯔교라는 다리가 보인다. 이게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사전에서 하쯔를 찾아보면 처음, 첫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 첫째다리라는 뜻인데 확실한 것은 자료부족으로 알 길이 없다.

6월은 목단(牧丹모란 보탄)에 나비가 있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꽃 중의 꽃, 고귀한 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모란에 향기가 없다고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향기가 있다. 향기가 없다는 유래는 삼국유사에 들어 있다. 그래서 모란그림에는 나비가 없다. 모란그림을 부귀도라고 하는데 이 부귀도에도 나비가 없다.

7월은 속칭 홍싸리라고 하는데 7월의 만개한 싸리나무(萩 추)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하는데 4월의 등나무도 아마 7월 홍싸리와 비슷하여 흑싸리로 된 것으로 보인다. 흑색잎과 홍색잎이 섞여 있는 모양으로 보이지만, 줄기끝 쪽으로 붉은 꽃이 달린 형태로 그려져 있다. 萩자도 옥편에 찾아보면 쑥추, 개오동나무추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이 추자를 싸리나무추로 본다. 또 멧돼지(猪저 이노시시)가 왜 7월에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8월은 속칭 8월의 빈공산(八空山)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화투에는 산이 아니라 가을을 상징하는 참억새(스스키) 위로 대보름달과 3마리의 기러기(雁 안)가 날아가는 그림이다.  8월 한여름에 웬 가을인지 의문이다. 일본 화투사진을 확인하기 바란다.

9월은 국준(菊俊)으로 국화와 술잔을 그려 놓았다. 9월에 국화가 등장하는 것은 일본의 중양절(9월 9일) 관습의 영향으로 본다. 이 때가 되면 국화주를 마시면서 무병장수를 빌었다고 한다. 열 끗자리 잔에 목숨 壽자가 적혀 있다. 일본왕실의 문양도 국화이다.

10월은 단풍의 계절로 사슴이 그려져 있는 것은 사냥철의 의미라고 한다. 단풍잎도 잎에 톱니가 없는 것으로 보아 고로쇠단풍 종류를 그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

11월은 우리나라의 것은 오동인데 일본 것은 비(雨)이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11월과 12월이 바뀌었다고 본다. 동 발음을 강하게 발음하여 똥으로 부른다. 오동을 일본말로 키리라고 하는데 끝을 의미하는 키리(切)와 발음이 똑같아 마지막 달인 12월에 배치했다고 한다. 이 똥광에 들어 있는 새는 닭이 아니라 봉황이라고 한다. 봉황은 오동에 깃들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전설속의 동물이다.

12월은 한국에서는 비(雨)이다. 비광패에 나오는 우산 쓴 인물은 小野道風(오노 도후, 오노노 미치카제)라고 하는 10세기(894-966)의 서가(書家)이다. 중국의 왕희지와도 비견되는 일본의 명필가 오노노 미치카제는 해서(楷書)가 아닌 행서(行書)와 초서(草書)에 능했다. 오노노 미치카제에 관한 고사(故事)인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비가 오는 어느 날, 공부는 어렵고 마음은 심드렁하여 밖으로 외출했다가 버드나무가지를 잡으려고 몇 번씩이나 뛰어오르던 개구리가 드디어 가지를 잡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은 오노노 미치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한때 포기하려고 했던 공부를 계속하여, 훗날에 일본 서예의 창시자로 불리는 훌륭한 서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화투에 그려 넣었다. 그림에는 오노노 미치카제, 개구리, 버들, 그리고 제비가 들어 있다.

한국화투에만  오광이 그려져 있는데, 다른 것은 광자가 밑에 있는데 반해 비광만 위쪽에 광자가 적혀 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놀이방법

화투는 48장으로 4장씩 12달을 상징하는데 1월은 송학(松鶴:솔), 2월은 매조(梅鳥), 3월은 벚꽃, 4월은 흑싸리, 5월은 난초(蘭草), 6월은 모란(牡丹), 7월은 홍싸리, 8월은 공산(空山:공산명월), 9월은 국준(菊俊), 10월은 단풍(丹楓), 11월은 오동(梧桐), 12월은 비[雨]로 되어 있다.


그림에 따라서 광(光)자가 있는 20끗짜리, 10끗짜리, 5끗짜리, 그리고 끗수가 없는 홑껍데기 등 네 가지로 나눈다. 화투놀이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보통 월별로 그림을 맞추는 민화투(또는 늘화투)는 끗수를 계산하여 많이 딴 쪽이 이기는 것이다. 민화투에는 '약'이라는 것이 있어 난초약(5월), 풍약(10월), 비약(12월) 등으로 그 달의 4장을 모두 차지하면 20끗씩을 더 받게 된다. 이 밖에 5끗짜리 띠 중에서 홍단, 청단, 초단 등 3가지 띠를 차지하면 30끗씩을 더 받게 되며, 지방에 따라 '4오동'이라 하여 오동 4장을 모으면 40끗씩을 받기도 한다.

'육백(600)'이란 놀이 방법도 있다. 이 놀이는 여러 가지 득점 규약에 따라 600점을 먼저 따는 편이 이기게 된다. 근래에는 화투가 여러 가지 새로운 형식의 놀이로 변하여 짓고땡, 섰다, 고스톱 등 다양하며, 2∼4명이 노는 것이 보통이나, 섰다 등은 10명도 놀 수가 있다. 그 밖에 아낙네나 노인들이 재미로 하는 재수보기와 운수띠기가 있다. 화투가 들어오면서 도박의 판도가 바뀌어 옛날식 투전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화투가 도박의 전형으로 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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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성경의진실, 예수는 폭력배였다.
글쓴이 : 금초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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