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of 제주 - scenery of jeju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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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of 제주 - scenery of jeju 5

사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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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수목원에서 만난 노루

 

 

1. 들어가며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상징하는 동물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십중팔구 노루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노루에 앞서 제주를 상징하는 동물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동물은 바로 사슴이다. 한라산의 정상이 백록담으로 명명되는 것은 바로 한라산에 사는 영물인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연못 혹은 백록(하얀 사슴)으로 담근 술을 마시는 전설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에는 사슴은 없고, 노루만 존재한다. 도대체 사슴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제주에서 사슴이 살기 시작한 때는 선사시대로 추정된다. 어음리 빌레못동굴에선 붉은 사슴의 뼈가 나왔고, 신석기시대 유물 가운데는 사슴의 뿔이나 뼈로 만든 도구도 나왔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지금 바닷가에 둘러 있는 산과 제주 지방에는 사슴이 많이 있는데, 다 잡아도 이듬해가 되면 여전히 번식하니 바다의 물고기가 변해서 사슴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기록해 당시 사슴이 한라산에 많이 서식하고 있었던 것을 미뤄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사슴은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 대접을 받았던 동시에 인간에겐 탐욕의 대상이 됐다. 사슴은 가죽, 고기, 뿔 모두 가치가 높아 임금에게 바쳐지는 주요 진상품이었다. 결국 제주에서 사슴은 인간과의 생존 경쟁에서 점차 쇠퇴하다 한 문헌에 따르면 1915년 한 일본인의 사냥을 끝으로 멸종했다.

출처: 연합뉴스 / 2019.5.10. / [in제주] 제주 상징 노루 관리 '총체적 부실'"사슴 멸종 전철 피해야"

 

이렇게 제주의 상징 동물 사슴은 사라졌고, 지금은 노루가 그 지위를 자연스럽게 승계받은 것이다.

 

 

한라수목원에서 만난 노루

 

 

2. 노루의 특징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고라니와, 뿔과 함께 엉덩이에 흰 무늬가 있는 노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야생동물이다. 사슴과에 속하는 노루는 200~300만년 전에 덩치가 작은 유럽노루와 시베리아노루로 종이 갈라졌다. 시베리아노루는 다시 지역별로 3가지 정도의 아종으로 나뉘어졌는데, 우리나라 노루는 톈산산맥, 몽골, 극러시아 노루와 함께 하나의 아종을 이룬다.

출처: 한겨례 / 2016.8.24. / 보호종에서 유해동물로제주노루의 슬픈 운명

 

노루는 고산·야산을 막론하고 우리 나라 전역의 산림지대에 서식하는데, 다른 동물과 습성이 다른 점은 겨울철에도 양지보다 바람만 심하지 않으면 음지를 선택하여 서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루가 음지에서 사는 이유는 그 체질이 태양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루의 색깔은 계절별로 달라진다. 여름털은 황갈색 또는 적갈색을 띠고, 겨울털은 점토색(粘土色)을 나타내는데, 겨울털에는 엉덩이의 백색 반점이 크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노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노루의 뿔은 수컷에게만 있는데, 짧고 3개의 가지 - 1112월에 떨어지고 새로운 뿔은 56월에 완전히 나옴 - 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노루 뿔의 가짓수는 나이를 나타내는데, 대체로 1~2년생은 가지가 한 개, 3~4년생은 가지가 두 개, 5년생 이상은 가지가 세 개 이상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노루 [Western roe deer] (두산백과)) / (노루, 위키백과)

 

 

한라수목원에서 만난 노루

 

 

3. 제주의 상징 노루의 위기

 

흥미롭게도 고라니는 육지에 흔하지만 제주에 없고, 노루는 육지에는 드물지만 제주에선 너무 많아 골치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고라니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부에만 서식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고, 제주의 노루는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퍼진 노루와는 많이 다른 제주 고유의 아종이다. , ’제주노루는 제주에만 존재하는 특산종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지는 등 생물다양성의 관점에서 반드시 보호관리가 필요한 야생동물이다.

출처: (한겨례 / 2016.8.24. / 보호종에서 유해동물로제주노루의 슬픈 운명)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

 

국내에도 2000년대 이후 노루에 대한 분자계통분류학 연구가 시작돼 제주노루의 유전적 독창성을 보여주는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윤선 한국야생동물 유전자원은행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우랄산맥부터 제주까지 10개 지역 노루 표본에서 디엔에이를 추출해 집단유전학 측면에서 분석했다. 지난해(2015) 과학저널 <비엠시 유전학>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시베리아 노루를 알타이산맥을 경계로 우랄산맥에 이르는 북서 집단과 몽골과 러시아 연해주, 한반도 내륙을 포괄하는 남동 집단 그리고 제주 집단 이렇게 세 개로 나눴다. 제주노루를 별개의 집단으로 본 것은 그만큼 유전적으로 독특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유전적 거리로 따진다면, 한반도 내륙의 노루는 제주노루보다 오히려 연해주나 몽골의 노루에 가까웠다. 연구자들은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소수의 대륙 노루가 육지로 연결된 제주로 이동했다 해수면이 상승하자 고립돼 독특하게 진화했을 것으로 보았다.

출처: 한겨례 / 2016.8.24. / 보호종에서 유해동물로제주노루의 슬픈 운명

 

제주 노루의 서식 장소를 보면, 절반 이상인 67%가 해발 201~500m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25.8%는 해발 201~300m, 24.6%는 해발 301~400m에 그리고 16.6%는 해발 401~500m에 서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별로는 암컷(52.8%)이 수컷(25.7%) 대비 많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출처: 경향신문 / 2016.3.2. / “제주 야생 노루는 몇마리가 적정할까

 

이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는 제주 노루는 1980년대에 밀렵 등으로 멸종위기에 몰리자 대대적인 보호운동이 벌어졌다. 겨울철에는 노루의 먹이인 송악 줄기 주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 개발로 초지가 줄어들고 임야가 개간되면서 노루는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잇따라 제기되자 20136월부터 의원 발의로 조례를 개정해 노루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잡을 수 있도록 했다.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 본 조례는 20176월 한 차례 더 연장해 2019630일까지 일정한 절차를 밟으면 노루를 포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출처: 한겨레 / 2019.5.9 / 많던 제주도 노루는 어디로 갔을까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은 노루의 1일 소비량과 산림유형별 먹이식물의 연간 생물량을 비교 분석한 결과 제주지역 노루의 적정 개체수는 6110마리로 분석된다고 2016년도에 밝힌 바 있다.

출처: 경향신문 / 2016.3.2. / “제주 야생 노루는 몇마리가 적정할까

 

그러나 총기 노루 포획 결과 제주 노루 개체 수는 200912800여 마리에서 2015년에는 8천여 마리로 줄었고, 20166200여 마리, 20175700여 마리로 줄었다. 2018년도에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적정 개체 수로 추정한 6100여 마리보다도 2300여 마리가 적은 3800여 마리로 급감했다.

출처: 한겨레 / 2019.5.9 / 많던 제주도 노루는 어디로 갔을까

 

이에 제주도는 2019년도부터 노루에 대한 총기 포획을 전면 금지하였다. , 제주도는 노루 개체 수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2020년도 노루 개체 수는 3500마리로, 총기 포획이 일정 기간 가능했던 2019년도 4400마리보다 20.4%(900마리)나 줄었다. 이 수치는 제주에서 처음 노루 개체 수를 조사한 200912800마리와 비교했을 때 11년 만에 72.7%(9300마리)나 감소한 수치로, 역대 가장 적은 개체 수였다. 총기 포획이 금지됐지만, 노루 개체 수가 이렇게 줄어든 이유로는 '중산간 개발'을 꼽고 있다. 중산간 지역 개발로 살 곳을 잃은 노루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차에 치이는 로드킬이 급증 - 실제 20102012년 로드킬을 당한 노루 수는 평균 140마리였지만 2013330마리로 증가하더니 20142018450마리, 2019557마리로 부쩍 늘었음 -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유기된 반려견이 야생화돼 비교적 몸집이 작은 암컷 노루나 새끼 노루를 공격해 죽이면서 노루의 번식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출처 : SBS 뉴스 / 2021.3.31 / '총보다 무서운 난개발' 제주 노루 고작 3,500마리역대 최저

 

 

한라수목원에서 만난 노루

 

 

4. 노루에 관한 전설

 

① 경기도 시흥시의 장곡동 메꼴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노루우물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노루우물 설화[-說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옛날 장곡동 매꼴마을의 노루우물가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는 거지는 말할 것 없고 스님이 시주를 청해도 시주는 커녕 목탁과 배낭마저 빼앗아 버리는 탐욕스럽고 고약한 성격이었다. 하루는 고명한 스님이 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널리 퍼지자 부자는 그 스님을 불러 어찌하면 우리 집에 동냥아치나 비렁뱅이가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뜰 앞에 있는 노루바위를 깨뜨리면 다시는 비렁뱅이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스님의 예언을 믿고 부자는 망치로 노루의 목을 쳐서 목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때 목에서 선혈이 뻗쳐올랐다고 한다. 그 후 집은 차차 망하고, 노루의 목에서는 피가 그치지 않았는데 우물자리에 절을 짓고 정성을 다하자 피가 멎었다고 한다.

 

②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 독곡마을에서 마을 사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노루 이야기(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960년대 하갑리 독곡마을에 살던 전하동이 마을 뒷산인 백학봉으로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를 하러 갔다. 그런데 노루 한 마리가 양지바른 묘지 앞에서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전하동은 노루를 잡으려고 띠꾸리를 작은 소나무가지에 매달아 홀치를 만들고 노루의 엉덩이를 쳤다. 깜짝 놀란 노루는 잠에서 깨어나 나무꾼의 띠꾸리를 몸에 두른 채 달아나고 말았다. 당황한 전하동은 노야, 노야, 갈려거든 띠꾸리나 놓고 가거라.”고 소리를 쳤지만 노루는 멀리 달아난 뒤였다. 전하동은 띠구리도 잃고 노루도 못 잡은 것을 못내 속상해 하였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눈만 뜨면 노야, 노야, 갈려거든 띠꾸리나 놓고 가거라.”라고 콧노래처럼 외웠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전하동을 가리켜 노야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전하동은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인근 삿갓봉과 연화봉 사이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③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구전설화(은혜 모르는 인간)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짐승은 구하되 사람은 구하지 말라(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네이버 지식백과] 은혜 모르는 인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어떤 사공이 홍수에 떠내려 온 노루와 구렁이, 그리고 어린 아이 한 명을 건져 살려주었다. 사공은 노루와 구렁이는 제 갈 길로 보내주고 아이는 데려다 키웠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노루가 나타나 사공에게 돈 궤짝이 묻어있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부자가 된 사공은 양자로 삼은 아이를 잘 키워 장가까지 보냈다. 성장한 아들은 돈 욕심에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고 사공이 도둑질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포도청에 고발을 한다. 사형을 언도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공에게 뱀이 와 몸을 물어 부어 오르게 하더니 이어 풀잎 두 잎을 가지고 와서 상처에 붙이자마자 상처가 곧 아무는 일이 있었다. 사공은 뱀이 가져다 준그 풀잎이 약초인 것을 알고 남은 것을 잘 보관해두었다. 얼마 뒤 고을의 원님이 뱀에 물려 위험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그 잎으로 원님의 상처를 낫게 하였다. 원님은 사공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어떻게 하여 옥에 오게 되었는가를 물었고, 이에 사공이 그 간의 정황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원님은 사공을 풀어주고 대신 모함한 양자를 잡아 벌을 주었다.

 

④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신명 마을에서 장님과 앉은뱅이 형제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소경과 앉은뱅이 형제[-兄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옛날 어느 마을에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 부부가 있었다. 이 부부가 산신령에게 병신이라도 좋으니 혈육 하나를 달라고 빌었다. 그 후로 태기가 있었는데 앉은뱅이 아들을 낳게 되었다. 부부는 나중에 자신들이 죽고 난 뒤 앉은뱅이 아들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또 한 번 빌기를 봉사라도 좋으니 아들이 외롭지 않도록 아이 하나를 더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봉사 아들이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부부는 죽고 앉은뱅이와 봉사 형제만 남았다. 형제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그때 꾀가 많은 아우가 형에게 자신은 다리가 있으니 형을 업고, 형은 눈이 밝으니 자신에게 길을 일러 주면, 방방곡곡에 다니면서 얻어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아우의 말처럼 돌아다니면서 동냥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

 

어느 날 고개를 넘는데 형이 목이 말라 개울가를 찾아갔다. 물소리를 쫓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샘을 찾고 보니, 샘 위에 금덩이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금덩이를 보고 서로 가지라며 양보하다가 끝내 아무도 갖지 않고 물만 마시고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이후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노루 한 마리를 쫓는 사냥꾼을 만났다. 사냥꾼이 노루가 간 곳을 형제에게 묻자 형제는 사냥꾼에게 노루를 잡을 것이 아니라 샘을 찾아가면 거기에 금덩이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사냥꾼은 그 말을 의심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샘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샘 위에 커다란 구렁이가 입을 벌리고 사냥꾼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놀란 나머지 구렁이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형제를 찾아와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냈다.

 

사냥꾼이 돌아간 뒤 봉사인 아우가 형에게 잘못 본 것이 아니냐며 물었는데, 분명히 금덩이를 봤던 형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우에게 다시 샘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샘이 있는 곳에 이르러 사냥꾼이 죽였다던 구렁이를 찾았지만 그 자리에는 총에 맞아 둘로 갈라진 금덩이가 놓여 있었다. 형제는 나눠진 금덩이를 하나씩 가지고 산을 내려왔다.

 

형제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스님 한 분이 절을 짓기 위해 시주를 받고 있었다. 형제는 스님에게 금덩이 하나를 시주했다. 스님은 감사하면서 사는 곳과 이름을 물어갔다. 스님은 형제에게 시주받은 금덩이로 절을 짓고 그들을 위해 불공을 드렸다.

 

세월이 흘러 봉사와 앉은뱅이 형제가 어느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사람들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몰려가는 것이었다. 형제도 불공 소리라도 듣고자 절을 찾았는데, 그 절이 바로 형제가 시주한 금덩이로 지은 절이었다. 절에 있던 스님이 봉사와 앉은뱅이 형제를 극진히 맞아 두 사람을 위해 불공을 드려 주었고, 결국 봉사는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다리가 길어져서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⑤ 백두산 설화(약수천)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약수천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백두산),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도백하에서 강을 따라 가노라면 3면이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절승지가 있다. 이 병풍바위 중턱에는 일년내내 얼지 않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이 바로 만병을 다스린다는 약수천이다.

 

백두산의 약수가 세상에 생겨나게 된 것은 오랜 옛날의 일이다. 이곳에 약초를 캐는 늙은이가 있었다. 키가 작달막하고 갱핏하게 생긴 이 늙은이는 눈썰미가 좋아 약초를 잘 가려보았다. 그는 여기에다 나지막한 막을 치고 살면서 자루가 짤막하고 날이 기다란 곡괭이로 약초를 캤다.

 

어느날 저녁무렵이었다. 늙은이는 노을이 물든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그는 샘물가에 어미사향노루가 새끼를 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늙은이는 살금살금 샘물가로 다가갔다. 인기척을 들은 어미사향노루는 머리를 추켜들고 두귀를 빨쭉거리다가 수림(樹林) 속으로 뛰어갔다. 어미를 따라가려던 새끼사향노루는 비틀비틀하다가 그만 쓰러져서 네다리를 버둥거리였다. 늙은이가 다가가보니 새끼사향노루는 장작개비처럼 바싹 여위어 힘을 쓰지 못하였다.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버둥거리는 새끼사향노루는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늙은이는 새끼사향노루를 품에 안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그는 새끼사향노루에게 소금물을 먹인다 콩물을 먹인다 하며 한창 분주하게 돌아쳤다. 새끼사향노루는 어쩐지 "애얘 애얘" 울면서 잘 먹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미사향노루가 찾아왔다. 어미는 움막주위를 빙빙 돌면서 새끼를 찾느라고 애처롭게 울어댓다. 어미와 새끼가 서로 부르고 화답하며 우는 소리를 들은 늙은이는 중얼거렸다. "제 새끼를 귀중히 여기는 것은 짐승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구나!" 늙은이는 새끼사향노루를 품에 안고 콩물그릇을 들고 다시 샘물터로 갔다. 그는 새끼사향노루의 잔등을 쓸어주며 "어미와 함께 있으면서 많이 먹어라." 하는 부탁을 남기고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어진 늙은이는 이튿날부터 날마다 콩물에 소금을 조금씩 풀어서 샘물 가에 가져다 놓았다. 늙은이가 가져다 주는 콩물을 먹으면서 새끼사향노루는 늙은이와 다정해졌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새끼사향노루는강아지처럼 늙은이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고 움막에 와서 자기도 하였다. 늙은이는 기다란 수염을 내리쓸며 더없이 기꺼워하였다.

 

늦가을이 돌아왔다. 늙은이는 약파는 기구들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기미를 알아차린 어미사향노루는 두발로 땅을 허비고 대가리를 끄덕이며 감사를 드리었고 포동포동하게 살진 새끼사향노루는 옷자락을 물어당기며 가지 말라고 낑낑거렸다. 늙은이는 사향노루의 주둥이도 도닥여주고 허리도 어루쓸어주면서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늙은이가 집으로 돌아오니 쉰살에 겨우 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앓고 있었다. 늙은이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의사를 청하였고 좋다는 약은 다 썼다. 하지만 아들의 병은 점점 더 심해가서 오늘내일 생명이 위태하게 되었다. 늙은이는 맥이 죄다 풀려서 탄식하다가 잠이 들었다. 병풍바위 중턱에 있는 샘물터에 칠색의 무지개가 곱게 비끼였다. 샘물주위에는 기이한 풀과 향기로운 꽃들이 무성하였다. 어데선가 신선들이 울리는 풍악소리가 들려오고 강물에 고기들이 풀쩍풀쩍 뛰놀았다.

 

짐승들이 줄을 쳐서 샘물터로 들어오는데 올 때는 여위였으나 갈 때는 모두 피둥피둥 살이 쪄서 나갔다. 그 정경이야말로 샘물터에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가관이었다. 깨고보니 꿈이었다. 꿈을 깬 늙은이는 장죽을 빨면서 꿈을 해석해보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내가 왜 진작 궁리하지 못했던고!" 하고 중얼거리곤 늙은이는 아들을 데리고 약초 파던 곳으로 가겠으니 빨리 준비하라고 하였다.

 

"아유, 거의 죽는 애를 끌고 어디로 간다구 그러우?" 하고 마누라가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거긴 산이 좋고 물이 맑고 약재가 많아서 약쓰기 좋아유. 물고기 욱실거리지, 짐승이 많지 해서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 있지유. 거기 가야 이 애 병을 뗄 수 있다우." 늙은이는 쪽지게에다 병든 아들을 지고 약초캐던 곳으로 떠났다. 그의 걸음은 젊은이들의 날랜 걸음보다 더 빨랐다. 늙은이가 움막에 도착하자 사향노루 두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핏 보아도 친해놓은 사향노루들이었다. 늙은이가 지게를 벗어놓자 사향노루들은 지게에 다가가서 아들의 냄새를 씩씩거리며 맡다가 어디론가 총망히 뛰어가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에야 사향노루들은 샘물터에 나타났다. 샘물이 솟아오르는 곳을 발로 후볐다. 늙은이는 영문도 모르면서 그것들이 하는 일이라 도와나섰다. 그는 몽둥이를 주어다가 뚜적질로 바위돌을 들어내고 샘물터를 넓히었다. 사향노루들은 샘물에다 자기들이 물어온 새노란 자갈을 게워놓았다. 늙은이는 그 자갈을 샘바닥에 골고루 펴놓고 물을 한모금 마셔보았다.

 

이상하게도 약내가 풍겼고 박하를 풀어놓은 듯 쨍하고 시원하였다. 약수였다! 늙은이는 너무도 고마워서 사향노루들의 목을 끌어 안고 등허리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머금었다. 늙은이는 하루에 세 번씩 약수를 떠다가 아들에게 먹인지 며칠 안되어 아들의 숨결이 고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달포가 되자 아들의 병은 완전히 떨어졌다. 늙은이는 너무도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사향노루들에게 무엇이라고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몰랐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늙은이가 약수로 귀동자의 병을 나았다는 소문이 삽시에 인근 각지에 퍼졌다. 수많은 환자들이 여기에 찾아와서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이 샘물을 약수천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이 약수는 퐁퐁 솟아서 졸졸 흘러내리고 있는데 밑바닥의 흙과 돌은 온통 노랗다. 그것은 옛날에 사향노루가 물어온 약돌 새노란 영약이 지금까지 그냥 풀려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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