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의 연혁, 육지에서 섬으로 되었다가 다시 육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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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의 연혁, 육지에서 섬으로 되었다가 다시 육지로

道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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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연혁과 운하

 

# 안면도의 지리적 위치

충청남도 태안군에 있는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큰 섬(면적 113.5㎢)이다. 동쪽으로는 천수만이 있고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섬의 북쪽은 안면대교와 안면 연육교로 태안군 본토와 연결되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섬의 북부와 중부는 태안군 안면읍, 섬 남부는 고남면에 속한다. 원래 섬 전체가 안면읍이었으나, 1986년 섬 남쪽 지역이 고남면으로 분리되었다.

1970년 안면연륙교가 개통되었고, 1997년 77번 국도의 일부인 안면대교가 개통되었다. 77번 국도는 섬의 남단에 있는 영목항까지 이어지며, 안면읍 읍내 시가지 인근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이후 2019년 영목항에서 원산도를 연결하는 원산안면대교가 개통되었다.

향후 원산도에서 보령시 대천항을 잇는 해저터널이 2021년 개통 예정으로 건설되고 있는데, 해당 도로가 개통되면 안면도 남부 지역에 한해서 현재 섬에서 가장 가까운 홍성IC를 이용하는 것보다 대천IC를 이용하는 것이 고속도로 진입에 더 유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부울경 및 호남 지방에서 안면도로 접근하기에도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 안면도 운하

안면도는 원래는 섬이 아니라 태안반도 남쪽에 붙어 있었다. 고려 건국 후 한반도 중부로 천도하면서 삼남 지방의 세곡을 배로 조운해야 했다. 그러나 조운선이 태안 반도 서쪽(현재의 안흥항 앞바다)에서 자주 침몰하자, 고려 인종은 태안반도의 최단 횡단 지점을 따라 운하를 팔 계획을 세웠다. 태안반도 전체를 으로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정몽주의 10대조인 정습명을 책임자로 임명해 첫 삽을 떴다. 현재도 굴포운하 유적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는데, 결과적으로는 기술 부족으로 건설에 실패했다.

고려 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굴포운하 토목을 일으킨다. 심지어 조선 태조 이성계까지도 고려 말 때 한 번, 왕이 돼서도 한 번 시도하였다. 이후 조선 왕들도 포기하지 않고,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총 11번의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재정적 부담도 상당해 시도하는 정권마다 부담을 줬다. 그동안 전국 4대 험수로 중 하나인 안흥량에선 귀한 세곡이 바다에 가라앉고 사람이 계속 죽어나갔다.

그러다 1638년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육이 굴포운하를 포기하고 옆 길로 차선책을 택했다. 현재 안면도의 북쪽끝인 천수만과 황해 사잇길에 판목을 덧대 운하를 만든 것이다. 원래 굴포운하가 아니면 안흥량을 피할 수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을 뿐더러, 삼전도의 굴욕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진 조선 인조의 체면을 크게 세워줬다.

이 때 완공으로 안면곶은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 대한민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가 탄생했다. 한자 이름인 안면도(安眠島)도 이제 조운선이 침몰할 일이 없으니 '편하게 잘 수 있다(安眠)' 는 뜻이라고. 그러나 앞서 말했듯 안면도 항로로도 안흥량은 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굴포운하 건설 시도는 조선 현종 때인 1669년이었다. 만약 굴포운하가 성공했더라면 태안군 전체가 섬이 됐을 것(예상면적 약 516㎢)이고, 국내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 됐을 것이다.(현재 2위 거제도의 크기는 378㎢)

역사적으로 홍주목, 서산군, 태안군 관할이었으며, 1901년 오천군이 신설되면서 이에 편입되었다가, 1906년 태안군으로 환원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태안군이 서산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태안군이 서산군에서 분리되어 복군되면서 태안군 관할로 돌아갔다.

 

# 굴포 운하의 흔적

 

                                                  * 태안반도를 뚫으려 했던 굴포운하 

 

 * 현재도 저수지로 흔적을 남긴 굴포운하 

 

* 일부는 논으로 변한 굴포운하

 

* 도랑으로 변한 굴포운하 

 

* 웅덩이로 변한 굴포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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