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죄수들이 쓴 공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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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와 검사(죄수들이 쓴 공소장)

道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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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내용은 <뉴스타파>에서 펴낸 죄수와 검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죄수와 검사

 

- 죄수들이 쓴 공소장 -

 

 

1. 제보자 X(**) : 가장 중요한 제보자.

- 죄수로서 각종 금융 범죄의 수사에 관여함. 자신의 사건 뿐 만 아니라 자신이 수사에 참여했던 사건들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고, 구체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덮이는 것을 수차례 목격하고 경험. 서울남부지검은 검사와 전관변호사의 금융 범죄 거래 시장.

- 죄수 K와 우연히 만나(둘 다 남부구치소에 수감 중) 얘기를 나눔.

- 남부구치소 동료 재소자였던 서정기(‘KT ENS 사기 대출 사건의 주범)에게서 박수종의 범죄(다스텍 주식 대량보유보고 의무 위반, 다스텍 헐값 인수) 얘기 들음.(‘다스텍플레이텍로켓모바일서울리거‘)

- 박수종의 주가조작 혐의

 

 

2. 죄수 K(스폰서 김씨) : 김형준 검사(고교동창 스폰서 사건)와 중·고교 동창.

- 3때 같은 반, 죄수 K는 반장, 김형준은 전교 학생회장. 김형준은 동기회 회장,, 죄수 K는 동기회 부회장. 한 달에 2~3번은 만나는 사이였음. 검사와 스폰서 관계.

- 2003, 2004년 사기죄로 실형 선고 받음.

- 2009년 사기 혐의로 36개월의 실형을 받고 구속됨.

- 처음에는 검찰의 편에 섰으나,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 이후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아섬.

- 2016년 사기와 횡령 혐의로 동업자였던 한 모 씨에 의해 고소됨.(죄수 K가 회사 돈 천오백만 원을 횡령해 친구인 김형준에게 줬다는 내용 포함)(현직 부장검사 비위 사건으로 비화)

김형준은 셀프 고소작전 : 죄수 K에게 돈을 받지 못한 피해자 한 명에게 합의금 4천만 원을 준 뒤 나를 고양지청에 고소해 달라라고 부탁함. 사건 관할을 서울서부지검에서 고양지청(김형준과 박수종의 지인이 고양지청에 재직 중)으로 변경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패함.

- 한겨레에 기사가 나간 후, 김형준이 붙여준 변호사(박수종)의 전화번호 제공으로 체포됨.

- 성매매 자수를 하고, 김형준 검사와 성매매 여성 고발(두 명 모두 불기소 처분)

- 김형준 뇌물 사건 재판의 피고이자, 박수종 상대 민사 재판의 원고로서 검찰의 수사 기록에 합법적으로 접근.

- 2019, 김형준과 박수종을 각각 뇌물수수와 뇌물공여 혐의로 경찰에 고발. 경찰은 202010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

- 제보자 X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제보자.

 

 

3. 죄수 남모씨 :

- 터치스크린 제조 회사인 디지텍시스템즈라는 상장사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됨.

- ‘남부구치소 저승사자’ : 주가조작에 참여한 많은 관계자들을 구속하는데 공을 세움.

 

4. 조 브라더스(**, **, 수사관 J) :

- 동생 조씨 :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금융 사기범. 수감 중에는 물론, 출소 후에도 검사실의 수사를 도움. ‘홈캐스트주가조작 사건 수사에 관여, 수감되어 있던 홈캐스트의 실소유주 장 모 씨에게 사기(30억원)를 침(죄수들 사이의 사기 사건). 남부지검의 수사 기밀 자료 불법 유출.

- 형 조씨 : 광고 대행사를 운영하던 사람으로 최인호 변호사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해 고소를 당하자, 최 변호사의 탈세와 정관계 로비 의혹을 제보함.

- 형 조씨가 동생 조씨를 통해 검찰에 제보한 사건(최인호 변호사 사건)

최변호사는 대구 공군비행장 소음 피해 손해배상에서 주민 만여 명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냈으나, 주민들이 받아야 할 지연이자 146억 원을 횡령하고 수십 억 원을 탈세한 혐의로 집행유예 형과 벌금 50억 원을 선고받음. 이를 무마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로비 의혹이 불거짐.

- 수사관 J는 죄수들로부터 제보를 받고, 수사에 이용하고, 금품과 향응을 받고 죄수들에게 각종 편의를 봐줌. 죄수들로부터의 뇌물수수와 직권남용으로 징역 7년 선고받음.

 

 

5. 김형준 : () 부장검사.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

-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뇌물수수, 증거인멸 교사)으로 구속됨.(징역 1, 집행유예 2)

자신의 고교 동창 김 모씨(죄수 K)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됨.

- 뇌물 액수 축소, 성매매 혐의 불기소.

- 검찰총장 검사징계청구서’ : 김형준 해임(피의자였던 변호사와의 부적절한 금전 거래)

 

6. 박수종 :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김형준과 친구 사이. 주식 시장에서 유명. ‘박재벌

- 검사로 7년 근무 후 퇴직. 김형준 검사와 서울중앙지검에서 함께 근무.

-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의 죄수 K측 변호사였지만, 김형준을 위해 일함. K의 차명 휴대전화 번호를 검찰에 알려 K가 체포되게 함. 의뢰인이었던 피의자의 개인정보 유출은 변호사 윤리 위반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를 받음.

- 김형준을 위한 해결사 역할.

- 박수종이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에서 한 일

1) 김형준이 내연녀에게 줄 돈 천만 원을 빌려줌.

2) 김형준의 내연녀가 일하던 술집에 드나들며 김형준에게 회당 수십만 원어치의 술을 삼.

3) 일이 터지고 난 뒤 김형준이 죄수 K에게 돈을 갚을 때 돈 심부름을 함.

4) 김형준의 내연녀를 찾아가 입단속을 시킴.

5) 이른바 셀프 고소작전을 기획함.

6) 죄수 K의 언론 제보를 막기 위해 현직 검사 손영배를 끌어들임.

7) 언론 제보를 막기 위한 뒷거래 비용으로 죄수 K에게 2천만 원을 보냄.

8) 죄수 K와 연락하며 언론 제보를 취소하도록 설득함.

9) 한때 자신의 의뢰인이던 죄수 K가 체포되도록, 죄수 K의 차명 전화 번호를 검찰에 제공함.

- 제보자 X가 연루됐던 사건(스포츠서울 주가조작)에서 한 주가조작범의 변호인으로 등장하고, 제보자 X가 남부지검에서 수사에 참여했던 한 사건의 주가조작 혐의자로 등장했는데, 두 사건 모두 수사가 제대로 되지 못함.

- 금융 시장과 법조 시장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 중의 하나.

- 금융위 박수종의 네 가지 범죄 혐의 조사 대검찰청 수사 의뢰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김형준)

- 다스텍 헐값으로 차명 인수 및 주식 대량보유보고 의무 위반, 주가 조작.

 

 

7. 손영배 검사 :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으로, 김형준의 구명활동에 관여. 죄수 K의 변호사였던 신현식 변호사와 연세대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

 

8. 유준원 : 상상인 금융그룹 대표. 박수종의 친구.

박수종과 함께 각종 금융 범죄. 골든브릿지증권의 대주주.

 

 

 

 

# 박수종의 다스텍(서울리거) 주식을 활용한 수익 올리기 과정에서, 검찰의 봐주기 행태

 

1) 주범 서정기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다스텍을 수사하지 않음.

2) ‘다스텍을 수사하지 않는다는 수사 기밀을 박수종에게 귀띔해줌.

3) 김형준 검사가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재직할 당시 금감원이 수사 의뢰한 박수종의 금융 범죄 혐의를 봐준 것.

4) 2016년 김형준 검사 스폰서 사건이 터진 뒤 대검 감찰본부가 직접 박수종을 조사하면서 금융 범죄 혐의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약식기소를 한 것.

 

 

# 박수종의 네 가지 금융 범죄 혐의

 

1) ‘라이브플렉스라는 회사의 주식과 관련한 미공개 정보이용 거래

2) ‘()토필드관련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3) ‘()씨티엘관련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및 소유주식 보고의무 위반

4) ‘() 서울리거(=다스텍)’ 관련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2018921, 코스닥 기업 11개가 한꺼번에 상장폐지 됐다. 11개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치면 11740억 원, 이 기업들에 투자한 소액주주는 8만 명이었다.

소액주주의 주식 보유 비율을 절반으로만 잡더라도, 자산 58백억 원가량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상장폐지된 기업 11개 가운데 9개 기업이 동일 계열의 저축은행(상상인저축은행,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고금리의 주식담보대출이 문제인 것은, 그것이 대개 무자본 MA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무자본 MA란 말 그대로 자기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것이고, 그 돈을 빌려주는 곳이 저축은행이다.

저축은행은 인수할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잡고, 담보비율이라는 걸 설정하며, 주식 가치가 담보 비율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저축은행은 반대매매를 실행한다.

 

기업사냥꾼의 입장에서는 인수한 회사의 주가가 반드시 올라야만 한다. 그래야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차익이 남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반대매매를 당해 쪽박을 차게 된다.

따라서 무자본 MA는 주가조작으로 이어지기 쉽다.

 

주가조작에 성공하면 기업사냥꾼과 저축은행 모두가 행복해지나, 주가조작에 실패하면 이들은 통상 새로 인수한 회사의 자금을 빼먹거나 자산을 팔아 손해를 메꾼다. 회사는 만신창이가 되고 소액주주들은 또 피해를 입는다.

반면 저축은행은 이때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반대매매로 원리금을 회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옵션도 있다.

 

즉 무자본 MA에 인수자금을 대는 저축은행은 어떤 경우든 손해를 피하고 고금리의 이자를 벌어들이는 꽃놀이패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반면 소액주주와 회사는 어떤 경우든 피해를 보게 된다.

기업사냥꾼이 자본시장의 먹이사슬에서 소액주주와 멀쩡한 회사를 집어삼키는 포식자라면, 저축은행은 그 위에서 기업사냥꾼들마저 먹이로 삼는 최상위 포식자라고 할 수 있다.

저축은행이 주식을 담보로 기업사냥꾼에게 빌려주는 무자본 MA 자금은 악의 시드머니’(seed money)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이 같은 약탈적 주식담보대출은 상상인과 상상인플러스 두 개의 저축은행이 거의 도맡아왔다.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시중의 저축은행이 실행한 주식담보대출 규모는 약 2조 원가량인데, 이 가운데 19천억 원이 상상인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의 것이었다.

 

주식담보대출은 너무 위험하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너무 가까워 언제든 쇠고랑을 찰 각오가 있어야 한다.

 

유준원은 2009년 코스닥 상장사인 텍셀네트컴’(현 상상인)을 인수하였고, 2012년 세종저축은행(현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을 인수했고, 2016년에는 공평저축은행(현 상상인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이후 두 저축은행은 약탈적 주식담보대출을 주업으로 삼으며 성장했다.

원래 이런 돈을 빌려주던 건 명동의 사채업자들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돈놀이를 일삼아왔는데도, 유준원 회장은 검찰의 수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자본시장에서는 유준원의 뒷배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뉴스타파의 <죄수와 검사> 보도 이후, 유준원은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20207월 구속 기소됐다)

 

박수종 변호사의 1년치(2015. 9. 15~2016. 9. 14) 통화 목록에서 가장 많은 건수를 차지한 것이 유준원이었는데, 무려 929번 통화하거나 문자 메세지를 주고받았다.

박수종 변호사가 받고 있던 4개의 금융 범죄 혐의 가운데 하나가 시티엘이라는 회사와 관련된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사건이었는데, 이 시티엘의 대주주가 바로 유준원이었다.

 

서울남부지검이 법조와 금융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라면, 박수종 변호사는 법조 쪽에서 거기로 들어가는 문이고, 유준원 회장은 금융 쪽에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다파티게임즈는 한꺼번에 상장폐지된 회사 9개 중의 두 개다.

유준원과 박수종에 대한 보도와, 유준원과 박수종 두 사람이 회사를 망가뜨렸다는 두 회사의 소액 주주와 전 경영진의 제보가 있었고,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회사 경영진에 대한 수사기록을 면밀히 들여다봤더니, 이 회사들은 기업사냥꾼에게 매각되고, 다시 주인이 바뀌고, 거래정지를 거쳐 상장폐지에 이르는 전 과정에 유준원과 박수종 두 사람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본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이 콤비가 멀쩡한 상장회사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모다는 원래 에그라고 불리는 와이파이 단말기 등을 만들던 회사다. 상장사로서의 프리미엄은 갖고 있지만, 실적이 나빠지고 미래도 불투명해 대주주가 그만 털고 나가고 싶어 하는 회사, 이런 회사는 기업사냥꾼의 좋은 표적이다.

헐값에 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고, 상장사이기 때문에 인수한 뒤에 회사 명의로 대출을 받기도 쉽다. 호재성 재료, 을 붙여서 주가조작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모다에도 기업사냥꾼이 들어왔다. LG가의 방계 3세인 구본현 일당이다. 구본현은 모다를 인수할 때 자기자본이 거의 없었다. 인수 자금을 빌려준 건 유준원의 상상인저축은행이었다. 무자본 MA의 전형이다. 구본현는 2011년에도 주가조작과 횡령 혐의로 실형을 받은 바가 있는데, 모다를 인수할 때 차명 법인을 동원해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구본현은 모다를 인수한 뒤 공격적으로 사업을 키웠다. 다 망해가던 모다는 불과 2년 만에 19개 계열사를 거느린 지주회사가 됐다. 계열사 중 핵심은 게임업계에서 최고의 알짜회사로 알려진 ‘BNM홀딩스였다. 국내 게임 아이템 시장을 과점하고있는 양대 아이템 거래소인 아이엠아이’(아이템마니아)아이템베이의 지분 100%를 갖고 있으며, 해마다 100억원 이상의 영업 이익을 거두는 회사다. 구본현은 <아이러브커피>라는 모바일 게임으로 유명했던 파티게임즈도 사들였다. 모다파티게임즈BNM홀딩스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모다가 파티게임즈를 자회사로, BNM홀딩스를 손자회사로 지배하는 구조다.

 

2017년 중반부터 불어닥친 비트코인 열풍은 큰 호재였다. 게임 아이템 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주목받았고,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두 회사의 주식을 샀다.

 

모다의 성장은 모두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었다. 최초인수 자금조차도 상상인저축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었는데, 무슨 돈이 있어 다른 회사를 인수했겠는가?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상상인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은 수백억 원으로 불어났고,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빚을 얻었다. 그러나 구본현 일당은 최초 인수 자금이 자기자금이라고 거짓 공시를 했다. 추가로 돈을 빌릴 때도 복잡하게 설계된 차명 법인들을 동원해 빚의 최종 귀착지가 어디인지 잘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급할 때는 회사 자금도 몰래 빼서 썼지만,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 분식회계를 한 것이다.

 

2018321일 파티게임즈가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은 것은 무리한 차입경영과 분식회계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대부분의 매출을 파티게임즈에 의존했던 모회사 모다 역시 자동적으로 의견거절을 받았다. 6개월 뒤의 재감사에서 적정의견을 받지 못하면 회사가 상장폐지되는 위기에 놓인 급박한 상황, 이때 최상위 포식자유준원이 개입했다.

 

모다와 파티게임즈가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은 바로 그날 유준원은 구본현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다. 유준원이 새로운 대주주를 구해오고, 새로운 대주주가 구본현의 채무를 갚아주는 대신 경영권을 넘겨받기로 했다.

유준원이 데리고 온 새로운 대주주는 박수종이었다. 박수종은 이번에도 차명 법인을 동원해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차명 법인의 대표이사 이 모 씨는 박수정이 변호사 사무실을 할 때부터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고, 이어 박수종의 아내 정 씨가 차명 법인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모다와 파티게임즈 경영진은 모두 박수종 측 사람들로 교체됐다.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박수정이 구본현 측의 기존 채무를 갚을 뿐 아니라 회사에 추가로 돈을 집어넣어야 하는, 즉 유상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야 6개월 뒤로 예정된 재 감사에서 적정의견을 받고 거래정지를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박수종은 유상증자를 하는 대신, 회사로 하여금 전환사채를 발행하도록 한 다음 그것을 사주는 방식으로 돈을 집어넣었다.

전환사채를 인수하면 부채가 늘어나기 때문에 재무 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박수종은 전환사채를 인수한 이 돈마저도 유준원의 상상인저축은행으로부터 빌려왔다.

 

박수종의 관심은 파티게임즈의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던 현금(2017년 말 기준으로 330억 원)이다. 박수종은 회사를 장악한 지 12일 만에 친구 유준원의 회사인 상상인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석 달 동안 무려 206억 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모다나 파티게임즈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배임에 해당한다.

모다와 파티게임즈는 그해 921일 결국 재감사에서 또다시 의견거절을 받았다.

 

상장폐지 이후, 7거래일의 정리매매기간 동안 박수종은 자신의 우호세력과 차명 법인을 이용해 모다 주식을 헐값에 대량으로 매집한다.

모다는 상장폐지됐지만, 그 손자회사인 BNM홀딩스는 여전히 국내 아이템 거래를 독점하면서 한해 1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고, 상장폐지로 모다와 파티게임즈가 비상장사가 되면서 박수종은 오히려 회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유리해졌다.

 

상장폐지 석 달 뒤인 20191, 박수종은 BNM홀딩스를 포스링크라는 상장사에 천 2백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인수자인 포스링크 쪽에 문제가 생기면서 최종적으로는 무산되었다.

박수종은 유준원의 도움으로 위기에 빠진 상장사를 장악했다. ‘회사정상화라는 명분을 걸고 들어왔지만, 상장폐지를 막는 유일한 길인 유상증자를 포기했고, 대신 상장폐지 이후 소액주주들의 주식을 헐값에 거두어들이는 길을 선택했다. 박수종은 천억 원이 넘는 가치를 가진 손자회사를 거느린 비상장사의 오너가 됐다. 그 사이 회삿돈 360억 원을 빼내 친구인 유준원 회사의 주식을 사는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 반면 모다와 파티게임즈의 소액주주들은 상장폐지로 천 6백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201811월에만 한꺼번에 9개 회사가 상상인의 주식담보대출을 받고 상장폐지됐다. 이 두 회사는 그 9개 중 2개일 뿐이다.

상상인 계열 저축은행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회사 리스트를 확보했는데 200곳이었다. 200곳 가운데 60곳이 거래정지를 당했고, 19곳은 끝내 상장폐지됐다.

 

 

# 두 사람이 해 먹은 또 하나의 회사 : 행남자기

 

상상인저축은행은 20165월 행남자기가 발행한 전환사채 60억원 어치를 인수했다. 한 달 뒤에는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던 행남자기의 전환사채 51억 원 어치를 장외에서 은밀히 사들였다.

1년 뒤인 20177, 상상인저축은행은 그동안 사 모은 전환사채를 한꺼번에 주식으로 전환했다. 지분율은 19.6%, 상상인저축은행은 단숨에 행남자기의 대주주로 떠오른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의 대주주가 될 경우 미리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유준원은 이를 무시했다.

20179, 유준원은 이 회사의 경영권을 박수종에게 넘겼다. 박수종은 이번에도 차명법인을 앞세워 행남자기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다. 공시자료 어디에도, 차명 법인의 둥기부등본 어디에도 박수종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모다와 파티게임즈, 다스텍과 같은 패턴, 역시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이다.

 

행남자기가 상장폐지에 이르는 과정은 모다 및 파티게임즈와 비슷하다. 상상인 계열 저축은행의 돈을 무기로 유준원이 경영권을 장악한 뒤, 회사를 박수종에게 넘겨준다. 경영권을 인수받은 박수종은 회삿돈으로 상상인 주식을 사들인다. 안 그래도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주력 사업과 무관한 주식투자로 자산을 낭비한 회사는 껍데기만 남고 결국 상장폐지 된다.

 

 

유준원은 주식담보대출을 계속 늘렸고, 박수종은 상상인 주식을 계속 사들였다. 당시 박수종이 보유하고 있던 물량과 유준원 및 특수관계자가 보유하고 있던 물량을 합치면 상상인 전체 주식의 42%에 달한다.

유준원은 박수종 덕분에 반대매매의 위험을 피하면서 골든브릿지증권의 인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유준원은 20182골든브릿지증권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인 20193월 골든브릿지증권의 대주주가 됐다.

 

 

# 검찰이 써 준 무죄증명서

 

증권사의 대주주가 되려면 최근 5년 동안 금융관계법령을 위반해 생긴 벌금형 이상의 전과가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유준원이 당시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공개정보 이용 거래로 의심하고 있던 금감원은 서울 남부지검에 보내는 보고서의 참고사항에 유준원의 혐의를 기술했다. 유준원의 대리인 김 씨와, 그에게 정보를 전달한 이 씨에 대해서는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서울남부지검은 유준원을 단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준원의 요구에 따라, 단 하루 만에 진정내사사건 처분결과 증명서라는 것을 발급해 주었다.

금감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고 넉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당사자를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은 채 발급된 무죄증명서다.

검찰이 발급해준 무죄증명서는 유준원이 대주주 변경 승인을 받아내는 급행 티켓이 되어, 증권선물위원회는 골든브릿지증권의 대주주 변경 승인을 의결했다.

검찰에서 그런 걸 써 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검찰에서 증명서를 써 준 이례적인 경우이다

 

 

 

# 박수종의 주가조작 및 위법행위

 

박수종은 직접 주가조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차명 법인 명의의 증권 계좌, 자신이 장악한 상장사 파티게임즈와 행남자기의 증권계좌를 이용해 이들이 서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처럼 꾸몄다(통정매매, 가장매매).

 

호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A계좌에서는 호가를 높여서 매도주문을 내고, B계좌에서는 그 호가로 매수해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고가매수주문).

 

매수세가 계속 유입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매도물량을 소진했고(물량소진 주문), 종가를 높이기 위해 예상 체결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수를 했다(종가관여주문).

 

매수세가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허위로 매수 주문능 제출하기도 했다(허위매수주문).

 

박수종은 2015년경부터 상상인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2015년 연말 이미 상상인 주식을 5% 이상 가진 대주주였다. 물론 차명으로 보유했고 신고는 하지 않았다(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사건

 

제보자 X는 한때 스포츠서울의 부회장이었다. 당시 스포츠서울 회장이었던 김광래에게 횡렬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4년 형이 확정돼 20142월에 구속됐다. 스포츠서울 김광래 회장은 이미 감옥에 갇혀 있던 제보자 X를 또 고발했다. 이번에는 주가조작 혐의였다.

그런데 당시는 제보자 X가 검사의 간택을 받아 죄수의 신분으로 수사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수사를 돕는 대가로 그는 자신의 가석방과 스포츠서울 사건 재수사를 요구했다. 검찰은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사건을 다시 수사했고, 20152월 김광래 회장 등 관계자 5명을 기소했다.

 

20125월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던 법무법인 다담의 사무실, 4명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MA 전문 변호사 이 모 씨와 유준원, 스포츠서울 전무 손 모 씨, 주식 브로커 김 모 씨였다. 김 씨는 유준원의 주식 계좌를 대신 운영해주는 사람이었다. 즉 유준원은 전주’, 김 씨는 선수였던 셈이다. 당시 유준원은 저축은행을 인수하기 전으로 텍셀네트컴(현 상상인)이라는 상장사의 대표였다.

 

브로커 김 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전주였던 유준원에게 스포츠서울 워런트매입을 권유했다. 워런트는 주식을 일정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가가 행사가격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주가 상승에 확신이 필요한 투자다.

그런데 스포츠서울(당시 회사명은 에이앤씨바이오홀딩스)2011년과 2012년에 잇따라 투자주의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종목이었다. 수익성이 취약하고 공시가 불성실하다는 이유였다.

 

이 회의는 주가조작을 모의하고 그것을 전제로 유준원이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유준원은 자신의 차명 법인 이름으로 워런트 200만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주당 워런트 행사가격은 500, 투자금은 10억 원이었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려면 호재성 재료(: 진주)가 필요하다.

이들이 첫 번째 준비한 펄은 한류 테마였다. 이들은 스포츠서을 명의로 배우 이영애 씨와 관련이 있는 리예스라는 회사에 20억 원을 투자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이영애를 주연으로 하는 드라마 대장금2’가 곧 제작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두 번째 펄은 대선 테마였다. 스포츠서울은 한누리포럼이라는 단체의 이 모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한누리포럼은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지하는 외곽 조직이었다. 주가조작 세력이 동원한 애널리스트 최 모 씨는 주식 방송에 출연해 스포츠서울을 띄웠다.

 

선수들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고팔며 주가 상승을 유도했다. 20125월 주당 6~700원 하던 주가는 한류 관련 공시와 대선 관련 공시가 있고 급등했다. 6271,810원으로 단기 최고점을 찍었다.

브로커 김 씨는 620일부터 27일 사이 유준원의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사실상 단기 최고점에 매도를 한 셈이다. 매도 평균가를 단순 계산하면 30억 원 가량이다. 10억원을 투자했으니 한 달 사이 20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검찰이 계산한 주가조작 세력의 부당이득금은 총 111억 원 가량이다. 이 중 유준원이 20억 원으로 가장 많은 부당이득을 챙겼다. 반면 가짜 펄에 속은 개미투자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주가조작 가담 세력이 보유 물량을 팔고 나갈 때까지, 애널리스트 최 씨는 개미투자자들에게 계속해서 팔지 말라거나 더 사라는 신호를 보냈다.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세력은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법무법인 다담의 투자 회의 멤버들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구속됐다. 1심에서 MA 전문가 이변호사는 징역 4, 스포츠서울 손 전무는 징역 16개월, 브로커 김 씨도 징역 16개월을 선고받았다. 투자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스포츠서울의 김광래 회장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부당이득금 110억 원 중 가장 많은 수익인 20억 원을 챙긴 유준원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유준원의 주식 계좌를 관리했던 브로커 김씨가 얻은 수익은 26천만 원에 불과했음에도 구속이 됐는데, 20억원을 챙긴 유준원은 무사했던 것이다. 심지어 유준원은 단 한 차례의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유준원이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사건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주식 계좌 관리인이었던 브로커 김 씨가 검찰 조사에서 끝내 유준원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로커 김 씨는 2014122일 검찰에 긴급체포 됐는데, 체포 과정에서 유준원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변호사를 구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급박한 구조 요청을 받은 유준원은 자신의 친구 박수종을 변호사로 보내주었다.

브로커 김 씨는 스포츠서울 사건의 1심 재판을 받던 중인 20162월 또다시 유준원 계좌로 모다 주식을 부정거래해서 금감원의 조사를 받는데, 그 과정에서 유준원도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 수사 기록에 유준원이라는 이름은 피의자와 참고인 진술에서 무려 147번이나 등장했지만, 검찰은 유준원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당시 스포츠서울 사건을 수사했던 곳은, 박수종 변호사의 또 다른 친구 김형준 검사가 단장으로 있었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이었다.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사건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유준원은 기소가 되지 않았고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그가 주가조작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한 브로커 김 모 씨의 변호인은 박수종이었다. 그리고 박수종은 이 사건의 수사책임자인 김형준에게 자주 향응을 제공하는 사이였다. 결국 박수종 자신의 금융 범죄도 유야무야됐고 유준원도 무사했다.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사건은 유준원과 박수종 두 사람이 자본시장에서 왜 막강한 콤비로 불렸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유준원에게는 자본이라는 무기가, 박수종에게는 검사들과의 네트워크라는 무기가 있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 오가며 금융 시장의 최정점에 오른 유준원과 그의 친구 박수종, 검찰은 무엇 때문인지 두 사람이 연루됐던 여러 차례의 금융 범죄에서 그들을 한 번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검찰이 일부러 눈감아 준다는 게 이미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수종과 유준원의 금융 범죄는 자본시장을 크게 어지럽히는 행위다. 검찰은 뉴스타파 보도 전까지 이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박수종에 대해서는 금융위가 적발한 범죄 행위 4건 중 1건을 불기소했고 나머지 3건을 약식기소 했을 뿐이다. 유준원에 대해서는 기소는커녕 단 한 차례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박수종의 통화 내역에 등장하는 22명의 검사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통화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주진우 검사였다. 주진우 검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기 한 달 전에 사표를 내고 검찰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뒤에 환경부 블랙리스트사건을 맡아 청와대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안동지청장으로 좌천되자 검사직을 사직했다.

 

주진우 검사는 2015921일부터 2016412일까지 박수종과 65차례 통화를 하고 13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당시 그의 상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이었다.

박수종의 금융 범죄에 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시기인 201510월부터 20161월 사이에 두 사람의 통화빈도가 가장 잦았다. 201591차례에 불과했던 부 사람의 통화 기록은, 201510월에는 20차례, 11월에 12차례, 12월에 17차례, 2016113차례로 늘어났다.

 

20151029, 금융위는 대검찰청에 박수종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바로 전날인 1028일 저녁 박수종은 청와대에 근무하던 주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343초 동안 통화했다. 그리고 89분 주진우 검사에게 문자메세지를 남겼다. 115일 대검찰청은 박수종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이첩했고, 남부지검은 119일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안광현 검사에게 이 사건을 배당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도 박수종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주진우 검사와 5차례 통화했다. 급박한 의사소통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16112, 박수종은 서울남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첫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간다. 조사를 하루 앞둔 111일에도 두 사람은 두 차례 통화를 했고, 조사당일인 112일에도 두 차례 통화를 했다.

 

박수종은 이날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이었던 김형준과도 통화했다.

피의자인 박수종은 남부지검 안광현 검사에게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이나 조사를 받던 중인 오후 138분에 수사책임자인 김형준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고, 김형준도 답신을 했다.

조사를 마친 오후 438, 피의자 박수종은 다시 수사책임자인 김형준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 얘기하고, 20분 뒤 박수종은 검찰을 관장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주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를 부탁했고, 9분 뒤 주진우는 박수종의 부탁에 답을 건네줬다.

수사책임자였던 김형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었던 주진우 사이에도, 박수종의 남부지검 조사를 나흘 앞둔 201618일 통화와 문자메세지를 주고받았고, 조사 1주일 뒤인 119일에도 통화와 문자메세지를 주고받았다.

 

문제가 된 1년 동안 박수종과의 통화 기록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김형준 검사로 379차례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김형준의 비위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한 뒷거래에 현직 검사 신분으로 개입한 손영배가 196차례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박수종과 20차례 이상 통환 문자를 주고받은 현직 검사로 당시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차장검사였던 전형근 현 김앤장 변호사(191회 연락),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었던 심우정 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37회 연락),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던 이원석 현 수원고검 차장검사(33회 연락),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었던 조상준 현 법무법인 율우 대표변호사(24회 연락) 등이 있다.

 

박수종이 검사들한테 작전주의 주식 정보를 주고, 검사나 수사관들은 이 정보를 받아 차명으로 투자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201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광준 부장검사 사건이 있었다. 김광준 검사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의측근 강 모 씨와 건설업자인 스폰서, 자신이 수사하던 대상자로부터 10억 원이 넘는 금품을 받아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김광준은 10억 언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서 모두 자신의 계좌가 아닌 차명계좌를 사용했다. 차명계좌의 소유주는 김광준에게 돈을 준 조희팔 측근 강 모 씨의 부하 직원이었다.

 

당시 중앙지검 특수3부장이었던 김광준은 자신이 수사를 했던 유진기업의 주식 4천만 원을 투자했는데, 이 돈에는 김광준의 부하였던 특수3부 후배 검사 2명의 돈이 포함돼 있었다. 부장 김광준을 포함해 특수3부 검사 3명은 당시 셋 중 막내 검사의 계좌에 돈을 모은 다음 이 돈을 다시 김광준의 계좌로 옮겨 주식 투자를 했다. 그러나 김광준 사건이 터진 뒤에도 당시 함께 주식 투자를 했던 두 특수부 검사는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 이 두명은 청주지검 검사장으로 있는 노정환 검사와 대구지검 포항지청장을 하고 있는 김경수 검사다.

 

뉴스타파 방송 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는 금감원의 수사의뢰 12일만인 20191112, 상상인저축은행 본사와 행남자기 본사, 박수종 변호사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유준원과 박수종은 출국금지됐고, 20204월에는 상상인 본사 등에 대한 두 번째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20620일 마침내 유준원과 박수종 두 사람이 구속됐다.

 

 

# 개미들을 밟고 올라선 성공 신화

 

검찰 공소장의 유준원의 혐의 네 가지

 

첫째, 부실기업에 허위 전환사채를 발행해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

부실기업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담보나 보증 없이 인수하는 것처럼 계약서를 쓰면서, 뒤로는 담보나 보증을 잡은 것. 해당 기업은 상상인이 써준 허위 계약서를 근거로, 마치 담보와 보증없이 전환사채 발행에 성공한 것처럼 공시를 한다. 그리고 새로 조달한 자금으로 새로운 사업 영역에 진출한다거나 좋은 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한다. 개인투자자들은 회사의 발표를 믿고 주식을 매입한다. 주가는 가파르게 치솟는다. 주가가 오르면 고점에서 경영진은 주식을 팔아버린다. 그 뒤 회사의 부실이 드러나면 거래정지나 상장폐지로 간다. 결국 개인투자자들만 손해를 본다.

 

유준원과 경영진이 이런 식으로 장난을 쳤다고 검찰이 기소한 회사들

- 씨그널엔터테인먼트, 금성테크, 케이티롤, 인터불스, 아리온테크놀로지, 에스에프씨,

더블유에프엠, 컨버즈, 에치디프로, 한프

 

부실기업 전환사채 대출 가운데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것만 따져도 10개다.

상상인의 전환사채 인수는 다 죽어가는 기업 경영진이 마지막 한 탕을 시도하는 데 ‘’총알을 쥐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한프라는 회사의 사례는 특히 악질적이다. 상상인저축은행이 한프의 전환사채 180억 원을 인수한 20175월 당시 유준원은 한프의 숨겨진 2대 주주였다. 한프는 전환사채 발행에 성공했다는 공시와 함께 태양광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고, 주가는 치솟았다. 그리고 유준원은 그 기회에 개인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 50억 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봤다. 장외에서 전환사채 형태로 팔아서 남긴 50억 원의 시세차익은 별도다.

 

둘째, 주가조작.

자신이 대주주인 상상인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 상상인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 상상인의 회사 자금으로 상상인 주식을 사들이는 자사주 매입을 실행했다. 이 자사주 매입과정에서 허수매수

주문, 고가매수 주문, 물량소진 주문 등 주가조작을 했다.

 

셋째, 금산분리 위반.

금융사가 금감원의 사전 승인 없이 비금융사의 대주주가 됐기 때문이다.

 

넷째, 모다와 관련한 미공개정보이용 부정거래.

모다의 인수합병을 앞두고 이 정보를 미리 알게 된 유준원이, 브로커 김씨가 관리하던 자신의 계좌로 모다 주식을 단타 매매해, 1억 천 2백만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다.

 

 

# ‘무오류의 검찰이라는 신화

 

위의 넷째 혐의는 이미 검찰이 한 번 불기소했던 사안인데, 뉴스타파 보도 이후, 검찰이 수사한 작성한 공소장 내용은, 이미 2년 전 금감원이 작성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던 보고서의 내용과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새롭게 드러난 증거도 새로 조사된 내용도 없는데, 15개월 전에는 불기소했던 사안을, 보도 뒤에는 기소 사안으로 180도 뒤바꿔버린 것이다.

 

검찰이 기소한 박수종의 혐의는 세 가지다.

첫째, 상상인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차명 법인의 외피로 숨기고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대량보유보고의무 위반 혐의.

둘째, 상상인 주식을 사고팔면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

셋째, 상상인 주식을 회삿돈으로 사고팔아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행남자기에 대한 배임은 452억 원, 파티게임즈 계열사에 대한 배임은 360억 원.

 

과거에 불기소했던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해 기소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게 전직 대통령 이명박 씨의 다스차명 소유 의혹이다.

그동안 자본시장을 어지럽혀 온 두 사람(유준원, 박수종)의 금융범죄가 왜 견제되거나 처벌받지 않았는지, 그 구조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금융 시장과 법조 시장의 유착과 공생관계일 것이다.

 

유준원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는 11개 법률사무소의 변호사 54명이다. 서울고검 검사장 출신인 조은석, 대검 중수부장 출신이자 이재용 재판에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전문심리단을 맡았던 김경수, 윤우진 뇌물사건에서 윤석열이 윤우진에게 소개해준 이남석 변호사 등.

박수종의 변호인단은 9개 법률회사의 변호사 24명인데, 이명박 씨의 내곡동 사저 특검을 맡았던 이광범, 검사 출신으로 금감원 부원장보를 역임한 조두영, 대검 반부패부장을 지낸 김우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주진우 변호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유준원과 박수종은 구속된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20201214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 삼각 사건 거래

 

꼭 자기 사건이 아니라도 죄수들은 범죄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큰 사업을 하다 횡령 배임으로 붙잡혀 온 죄수는 정관계에 네트워크가 많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비리를 많이 알고, 금융 시장에서 활동하다 불법을 저질러 붙잡혀 온 죄수는 누가 자신과 비슷한 짓을 벌이고 다니는지 훤히 알 것이다.

검사는 죄수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 어떤 죄수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죄, 즉 여죄를 파헤쳐 수감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여죄가 드러난 죄수를 봐줄 수도 있다. 갇혀있는 죄수를 출정이라는 명목으로 검사실로 불러내 편의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죄수들에게 절실한 것은 외부와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는 편의이다.

 

죄수 K(김형준의 고교 동창 스폰서)의 세 번째 구속 당시, 그를 고소했던 고소인이 담당 검사(김형진)에게 천 6백만 원의 뇌물과 470만 원 어치의 향응을 제공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뇌물이 드러난 것은 죄수 K가 이미 형을 확정받은 뒤였다. 뇌물을 받은 김형진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돼 석방됐고, 이후 변호사 개업까지 했다.

 

죄수 K는 김형준과 다른 검사들에게 향응을 베풀었고 돈까지 줬다. 그런데 막상 사건이 터지자, 검사들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현직 검사들과 검찰 조직, 그리고 전관변호사까지 신성가족은 똘똘 뭉쳐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죄수 K를 버렸다.

네 번째로 감옥에 들어간 뒤 신성가족의 배신을 알게 된 뒤 배신감에 절망한 그는,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에 대해 폭로를 결심하고, 증거를 모으고 때를 기다렸다.

 

 

# 김영일 검사와 죄수 이 씨, 죄수 K 사이에서 벌어진 삼각 사건 거래

 

죄수 이 씨가 죄수 K에게 돈을 주고 사건을 산 다음, 이걸 검사에게 상납하였다.

죄수 이 씨는 김영일 검사에게 사건 정보를 물어다 주는 역할을 하는 브로커 죄수였다.

죄수 K는 사건 정보를 넘기는 대신 8천만 원을 받았고, 브로커 죄수 이 씨는 김영일 검사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했다. 김영일 검사는 죄수에게 사소한혜택을 준 대가로 자신의 특수부 경력을 더 빛내줄 사건 정보를 얻었다.

 

# 죄수 이 씨는 죄수 K에게 제안을 했다. “어떤 죄수가 형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3억 원을 주겠다

제안을 수락한 후, 1억 원짜리 수표 3장의 사본과 현금 3천만 원의 입금 내역, 보관증 등 여러 가지 증거를 확보한 뒤, 죄수 K는 형집행정지 로비를 하기는커녕, 자신을 조사하던 대검 감찰팀의 검사에게 김영일 검사를 감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죄수 K는 경찰에 불법 로비 자금을 받았다고 자수하고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본인도 사기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처벌받겠다고도 썼다.

죄수 이 씨가 로비를 해달라고 죄수 K에게 부탁한 어떤 죄수는 1조 원대 사기범 김성훈이었다.

김성훈의 측근이 준 29억 원을 변호사가 두 번 세탁한 다음, 그 중 일부를 죄수 K에게 주었다.

이 앞의 삼각 사건 거래에서 죄수 이 씨가 죄수 K에게 준 8천만 원 역시 김성훈의 돈이었다.

 

‘IDS홀딩스 사건에서 죄수 한씨는 김성훈의 도움으로 합의금을 마련해 출소한다. 한씨는 김영일 검사와 통화하여 김성훈의 출정 일정을 조율한다. 김성훈은 출정 일정에 따라 자신의 자금 담당이나 가족을 검사실로 불러달라고 변호사에게 요청한다.

감옥에 있던 김성훈과 출소한 한 씨가 범죄를 모의하는 데, 김영일 검사가 소통 채널을 마련해 주었다.

IDS홀딩스 사건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지난 2018년 브로커 죄수 한 씨의 범죄 행각이 드러나자, 검찰에 김영일 검사를 감찰해 달라는 진정서를 접수했으나, 검찰은 2년이 넘도록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죄수들에게 돈은 힘이다. 검사와 브로커 죄수들 사이에 벌어지는 거래에 낄 수가 있다.

아는 검사가 없어도, 검사에게 제보할 사건 정보가 없어도 돈만 있으면 삼각 거래나 사각 거래의 한 축이 되어 검사실에 출정을 다닐 수 있다.

 

김영일 검사는 죄수 이 씨와 죄수 한 씨를 브로커로 활용했다.

 

죄수 K는 죄수 한 씨와 공모하여 국세청 공무원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당시 인천지검 특수부 1011호에서 근무했던 장동철 검사로부터 검사실에 딸린 독방을 개인 사무실처럼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다.

브로커 죄수 한 씨와 오씨도 인천지검 특수부 1205호 김선규 검사실에서 특혜를 받았다.

 

죄수 K의 제보로 국세청 공무원이 구속되자, 국세청이 죄수 K가 운영하던 업체를 대대적으로 세무조사했고, 그 결과 40억 원이 넘는 조세를 포탈했다며, 죄수 K를 특가법상 조세 탈루 혐의로 고발했다.

죄수 K는 검사들에게 하소연했고, 검사들은 의리를 지켰다. 우선 국세청이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한 사건을 인천지검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했다. 그 검사는 특가법상 조세포탈대신 일반 조세범처벌법 혐의를 적용했다. 결국 인천지검은 죄수 K를 벌금 2천만 원으로 약식기소했다. 그런데 판사가 보기에도 이런 기소가 황당했는지 법원이 직권으로 죄수 K를 정식재판에 회부하였다.

죄수 K는 다시 검사들에게 SOS를 쳤고, 검사는 공판에 출석해 죄수 K가 이른바 사법 협조를 했다고 판사에게 구구절절 설명했다. 결국 죄수 K의 최종 형량은 검찰이 구형한 대로 벌금 2천만 원이 됐다.

 

출정은 사건 거래의 대가로 검사가 죄수에게 줄 수 있는 것 가운데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다. 검사가 죄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기소 재량권을 이용한 봐주기’, 이것이 사각거래의 원형에 가까울 것이다.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증거가 다 있는데 무혐의를 해주고, 참고인 중지를 해주는 일도 있다. 검사들이 항상 하는 짓이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검사의 재량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다.

 

죄수 한 씨와 오 씨가 나가서 놀던인천지검 특수부 1025호는 김선규 검사의 방이었다. 그는 20112월 서울중앙지검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런데 김선규 검사는 공문을 보내 죄수 오씨를 서울구치소로 이감시켰다. 김선규 검사는 계속해서 공문을 보내 죄수 오씨가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울구치소에 머물도록 해주었다. 이 사이 김선규 검사가 보낸 공문은 무려 29장에 달한다. 서울구치소는 면회 등에 대한 편의성 때문에 재소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죄수 오씨가 2010년 인천지검의 사각 거래에서 맡은 역할은 정보 제공자나 브로커가 아니라 전주였다.

김선규는 현재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선규 검사가 떠난 자리에 후임으로 온 것은 김영일 검사였다. 김영일 검사는 자신의 선배인 김선규 검사로부터 브로커 죄수 한 씨를 인수받았다. 죄수 한 씨를 통해 곧 브로커 죄수 이 씨도 알게 됐다.

 

김영일 검사는 2016년에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부에서 다시 브로커 죄수 이 씨를 불러들였다. 이 씨는 그 사이 한 차례 출소했다가 다시 수감된 상태였다. 곧이어 브로커 죄수 한 씨도 다시 구속되어 죄수 신분이 되었다. 그러자 김영일은 한 씨도 자신의 검사실로 불러들였다.

당시 김영일 검사와 브로커 죄수 이 씨, 한 씨가 합작해 만들어낸 다른 사건을 제보 받았다.

 

 

# 한명숙 사건

 

한명숙 뇌물·정치자금법위반사건은 2009121차 사건으로 시작돼, 201042차 사건으로 이어졌다.

 

2009124일 조선일보 1면 톱에 한명숙 총리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인사 청탁을 대가로 한명숙에게 5만 달러를 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에서 흘린 내용을 먼저 언론이 특종 보도하고, 이후 검찰이 기소하는 패턴으로, 검찰은 1222일 한명숙을 불구속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돈을 줬다는 곽영욱의 진술이 계속 오락가락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은 곽영욱이 돈 봉투를 한명숙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법정에서 곽영욱은 돈을 직접 주지 않고 총리공관에 있는 의자에 놓고 왔다고 증언했다. 한명숙이 그 돈을 봤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곽영욱은 법정에서 검찰이 징그럽게, 무섭게 ···죽고 싶었다. 살기 위해 진술했다.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라고 말했다.

201049일 한명숙은 곽영욱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곽영욱에게 강압 수사, 별건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곽영욱 사건 1심 선고 하루 전 201048, 이번에는 동아일보였다. “검찰, 한 전 총리 새로운 혐의 수사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선고 당일 아침에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명시됐다.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2차 한명숙 사건, 이른바 한만호 사건의 시작이었다.

서울시장선거에서 한명숙은 0.6% 차이로 석패했다. 검찰이 수사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검찰은 선거 직후 한명숙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했다.

당시 한명숙 수사팀이었던 중앙지검 특수부 사무실은 전쟁터였다고 한만호는 회고했다. 검찰이 선거 여론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수사 내용을 흘려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한만호는 자신의 비망록에 적었다.

 

한만호는 경기도 고양시 일대를 기반으로 건설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고양시는 한명숙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한만호의 부친은 시의원을 역임했고, 한 씨 종친회에서 간부를 지냈다. 한만호와 한명숙은 종친이었다. 한만호는 한명숙에게 자신이 건축한 건물 사무실을 임대해주기도 했다. 임대료가 시세보다 쌌기 때문에 이 부분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다. 한만호는 건물에 공실이 있었기 때문에 싸게 준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만호가 운영하던 회사 이름은 한신건영.

2007년 한신건영은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에 한신에리어타워라는 건물을 지어 분양했다. 한만호가 벌인 필생의 사업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분양이 지지부진했고, 자금 흐름이 막혔다. 회사가 부도났다.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한만호를 고소했고, 2008년 한만호는 구속됐다. 1,2심 재판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았다.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고, 형이 확정되면서 한만호는 경남 통영교도소로 이감됐다.

통영교도소에 있던 한만호는 2010331일 서울구치소로 갑자기 이감된다. 한만호는 자신이 왜 이감되는지 알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서울로 온 한만호는 곧바로 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간다. 며칠 뒤 한만호는 2007년 한명숙에게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줬다고 진술한다. 뇌물이나 정치자금 범죄의 특성상 검찰 수사는 증인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한만호의 협조를 받아 한명숙을 기소했다. 반전은 재판정에서 벌어졌다. 한만호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뒤집었다. 한명숙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이제 법정에서 두 가지를 증명해야 했다. 첫째, 증인 즉 돈을 준 사람의 입(증언)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인 물적 증거로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걸 입증해야 했다. 둘째, 한만호가 법정에서 거짓말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거짓말의 동기를 재판부에 제시해야 했다.

 

2015년 한명숙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1심 무죄, 2심 유죄, 3심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한명숙 공판의 주임검사는 임관혁이었다.

 

201062일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뒤, 검찰은 721일 한명숙을 불구속기소한다. 한만호에게 9억을 받았다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였다.

20101220일 서울중앙지법 510, 돈을 줬다고 했던 한만호는 자신의 검찰 진술을 180도 뒤집었다.

증인(한만호)은 피고인(한명숙)에게 어떠한 정치자금도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 비겁하고 조악한 저로 인하여 누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한명숙 무죄였다.

 

이 사건의 본질은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세 번에 걸쳐서 3억 원씩 모두 9억 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을 전달한 날짜와 시간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만호의 폰에 한명숙의 번호가 저장돼있었는데, 변호인이 한만호 폰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분석했더니, 저장 시점이 2007821일이었다. 이미 두 번에 걸쳐 6억 원을 전달하고 난 뒤다. 이상한 일이었다. 계속 전화를 하다 뒤늦게 왜 갑자기 번호를 저장했을까.

 

한만호의 비망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휴대전화 입력 일자가 밝혀지자 저의 진술 번복이 정말이지 천만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무슨 망신에 어찌 하늘로 머리를 들 수 있었겠나. 참 잘했다. ···”

1심 재판부는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매번 전화해서 언제 돈을 전달할지 약속했다고 하는 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고 판결문에 적어 놓았다.

2심 재판부(재판장은 정형식 판사)821일 전화번호가 입력됐다는 것만으로 한만호가 그 이전에 한명숙의 번호를 알지 못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1차로 전달된 자금에 1억 원짜리 수표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 수표는 20073월 경 한만호로부터 한명숙에게 전달됐고, 20093월 경 한명숙의 동생이 전세금을 내는 데 사용된다.

 

한만호는 직원들을 동원해 현금을 조성하고 달러를 환전했다고 진술했다. 불법자금을 전달할 때 수사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금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미지막에 시간이 없어서 1억 원짜리 수표를 돈가방에 끼워 넣었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였다.

 

한만호의 검찰진술조서에서는 1차 자금 전달시의 상황이 몇 번 변경된다.

201048일 두 번째 작성된 검찰 진술조서를 보면, 처음 한만호의 진술에는 수표가 없었다. 현금 2억 원과 달러 1억 원을 여행용 캐리어에 담았다고 말했다. 백만 원짜리 현금 다발 10개를 천만 원 다발 한 뭉치로 만들어 20다발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백 달러들을 올려놓았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511일 다섯 번째 검찰 진술조서에서는 현금은 15천만 원으로, 달러는 5천만 원으로 줄었다. 대신 1억 원 수표 1장을 편지봉투에 담아 캐리어에 담았다고 진술했다.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진술 사이에 검찰이 수사를 하면서 수표를 추가로 발견했고, 진술도 그에 따라 변했다.

 

1심에서 판사는 한만호가 위와 같은 사실을 실제로 기억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며, 한만호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심 판사는 한만호가 수표를 뒤늦게 기억하게 됐을 뿐이며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시했다.

 

이 수표를 2년 뒤 한명숙의 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사용한다. 변호인은 한만호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한명숙의 비서에게 돈을 빌려줬고, 그 비서가 역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한명숙의 동생에게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한만호의 검찰 진술법정 증언중 어느 쪽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거짓일까?

1심 재판부는 한명숙의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진술도 못 믿겠고, 법정 진술도 못 믿겠다. 그래서 다른 증거들을 토대로 판단하겠다는 게 1심 판사의 입장이었다. 검사의 범죄 사실 입증이 확신을 갖게 하지 못했기에,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법정 증언 보다 검찰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변호인 측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한만호는 적어도 한명숙의 비서에게 3억 원을 빌려줬다.

 

아무런 현실적인 이득의 제공을 약속받은 바도 없는 상황에서, 위증죄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검사 앞에서 약 9개월 동안 유지하였던 종전 진술을 전면적으로 뒤집기란 쉽지 않을 것··· 한만호가 그동안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자신의 검찰 진술 중 피고인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진술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을 목적으로 일부 허위 사실을 개입시켜 증언을 한 까닭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5820일 대법원은 한명숙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확정지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8명이 다수의견을 냈고, 주심이었던 이상훈 대법관을 포함한 5명은 소수의견을 냈다.

 

소수의견은 검찰 진술보다 위증선서를 하고 법관이 직접 신문할 수 있는 법정 증언이 더 믿을 만하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 등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진술조서도 증거능력이 없다고 했다. 2심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책했다. 피고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손쉽게 신빙성을 인정해 형평에 반한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가 한만호에게 직접 신문도 하지 않고 1심을 뒤집어 공판중심주의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소수의견도 의심스러운 대목은 있지만, 3억 수수는 인정된다고 밝혔다.

 

 

# 정형식 판사

 

한명숙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8천만 원을 선고한 2심 재판부의 재판장이었다.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이재용은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승계 작업을 위해 89억 원을 뇌물로 준 혐의가 인정돼 2017년 징역 5년을 받아 구속됐다. 그러데 2018년 서울고법 형사13(재판장 정형식)는 뇌물 액수를 36억 원으로 보고 징역 26개월을 선고했고, 이재용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대법원은 이 판결이 잘못됐다고 파기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뇌물은 다시 86억 원으로 늘어나 이재용은 다시 법정구속 됐다.

정형식 판사는 한명숙 재판에서 다수의견(유죄)을 낸 민일영 전 대법관과 동서 사이다. 정형식의 아내는 김진태 전 의원과 이종사촌간이다.

 

 

 

# 한명숙 사건의 재소환

 

법원행정처는 201556일 한 문건을 작성한다. 문건 제목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 국회 전략’. 한명숙 사건 대법원 판결을 석 달여 앞둔 시점이다. 김무성이 대법원에 한명숙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도 명시돼 있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에서 한명숙 사건을 전부 무죄 취지로 파기할 경우, 김무성을 설득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문건에 적었다.

 

또 다른 문건은 법원행정처가 2015720일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전략이다. 한명숙 사건 대법원 판결 한 달 전이다. 법원이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조율해 왔다는 점을 털어놓고 있다.

 

향후 예정돼 있는 정치인 형사사건에도 BH의 관심과 귀추 주목될 것, 주요 현안 간련 접점 모색을 위한 유화적 태도 보일 가능성 충분.”

앞으로 정치인이 연루된 형사사건 판결이 많다. 청와대가 관심이 많다. 그래서 청와대가 당분간 법원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많다. 그 뒤에 주요 정치인 형사사건 목록을 죽 적어 놨다. 첫 번째가 한명숙 사건이었다.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관철하기 위해 정치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한명숙 사건을 지렛대로 활용했다. 대법원에서 한명숙이 무죄가 나오면 당시 여당 설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문건들은 양승태가 박근혜를 독대할 때 활용하기 위해 작성됐다.

201586일 양승태는 박근혜를 독대했고, 2주 뒤인 820일 한명숙의 유죄가 확정됐다.

 

# 사라진 핵심 증인

 

한명숙 사건에서 1심은 일부 금액에 대해서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검찰이 증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2심은 9억을 받은 것을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2심과 마찬가지였으나, 소수의견은 달랐다. 검찰의 불법적인(부적절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수사에 대해 강하게 성토했다.

 

죄수 H는 검찰이 증언을 조작하는 걸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한만호는 20101220일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 그때는 재소자 신분이었다.

검찰은 201169일 한만호의 구치소 방을 압수수색했다. 한만호가 구치소에서 쓴 일기장, 메모, 받은 편지 등을 검찰이 가져갔다. 세간에 검찰의 한명숙 기획 수사 비망록혹은 참회록으로 알려진 서류들이다. 두 박스 정도의 분량이었다. 압수수색 나흘 뒤 613일 한만호는 만기 출소했다.

 

2021년 대검 감찰이 확인한 사실이지만, 검찰은 한만호가 증언을 번복한 20101220일 당일, 위증 혐의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출소를 나흘 앞두고 급하게 압수수색을 한 이유가 있었다. 검찰은 압수수색 한 달 뒤인 77일 한만호를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한명숙 사건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증인을 위증으로 기소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일단 위증죄를 걸어놓고 한만호를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검찰이 기소는 했지만 한만호의 위증죄 재판은 한명숙 사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무기한 연기된다.

 

한만호는 처음에는 검찰 측 증인으로, 다음엔 한명숙 측 증인으로 증언했다. 한만호를 취재하기 위해 구치소에 온 기자는 오마이뉴스 구영식 한 명 뿐이었다.

최강욱은 한만호가 진술을 번복한 뒤 민변의 부탁을 받고 한만호의 변호를 맡았다.

 

구영식은 한만호와 짧게 인터뷰했다. 검찰의 한명숙 수사는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적으로 보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만호는 구영식에게 말했다. 검찰 진술이 아니라 법정에서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한명숙은 곧 누명을 벗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만호는 그때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도 말했다. 검사실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검사들이 변호사 대역이 돼서 질문을 하고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명숙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날짜를 특정하는 방법, 상대 변호인의 질문을 피하는 방법까지 검찰이 훈련시켰다고 했다.

 

구영식은 한만호가 썼다가 압수수색으로 검찰에 빼앗겼다는 비망록에 관심이 있었다.

 

2011613일 출소한 한만호는 5년 뒤 다시 수감된다. 2015820일 한명숙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를 받았다. 이후 한만호의 위증에 대한 재판이 속개됐다. 2016519일 징역 3년을 받도 법정구속됐다. 2심에서 2년으로 감형됐고, 3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최강욱에 의하면, 한만호는 위증죄로 다시 감옥에 갔다가 2018년 출소한 뒤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건강이 몹시 안 좋아 보였고, 간접적으로 사망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한만호는 2018년 병원에서 사망했다. 옥살이를 두 번 하는 동안 부친과 모친 모두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는 이혼했다.

 

강기석 전 경향신문 기자는 한명숙 재판을 참관했다. 두 번째 공판에서 한만호가 진술을 뒤집었다. 이후 거의 모든 공판에 들어갔다. 확정 판결 이후 이 기록을 엮어 무죄 - 만들어진 범인 한명숙의 헝거 게임 그 현장의 기록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강기석의 무죄는 일종의 재판 기록이다. 1심과 2심의 수십 차례 공판을 빠짐없이 방청하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한만호 출소 나흘 전, 검찰은 구치소 방을 압수수색해 한만호가작성한 일기와 비망록 등을 가져갔다. 변호인단은 비망록을 법정에 제출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검찰은 분석해보고 필요한 부분만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에 문건을 모두 공유하라고 결정했다. 실제로 1심 판결문에는 한만호가 작성한 메모를 인용한 부분들이 있다. 비망록은 법원에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 기록에 포함돼 있었던 한만호 비망록 전문을 입수했다. 재소자들이 사용하는 이른바 교정노트에 손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 내려간 문건이었다. 분량은 1200페이지. 노트 표지 하단에는 <수인번호 3382, 한만호>라고 적혀 있었다.

 

 

# 나는 검찰의 개였다.

 

한만호의 비망록은 손으로 휘갈겨 쓴 문서가 1200페이지였다. 분량이 많다는 점은 읽는 사람을 괴롭게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문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꽤 오랜 기간 꾸준히 작성됐다는 점은 이 문서 전체를 거짓말이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만호 비망록은 한명숙을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문에는 두세 차례 짧게 등장하지만, 2심과 3심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재소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추가기소이다. 한만호는 분양 사업 실패로 회사가 부도가 나서 2008년 구속됐다. 20101월에 형이 확정됐고, 3월에 통영교도소로 옮겼다.

통영교도소로 옮긴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331일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한만호는 이감된 이유를 몰랐다. 이감 다음 날(41)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출정을 나간다.

당시 중앙지검 특수2부는 1차 한명숙 사건, 즉 곽영욱 5만 달러 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한만호는 그 옆 부서에 불려간 것이다.

 

특수1부에 가자, 검찰은 한만호에게 아는 정치인이 있냐고 묻기 시작했다. 한만호는 처음에 검찰이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에게 6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 초기에 다른 정치인을 이야기했는데 묵살된 것이다. 한만호의 부친은 보수계열 정당 소속으로 시의원을 지냈다.

다음 날인 42일부터 본격적으로 검찰의 회유와 종용이 있었다고 비망록에 적혀 있다.

 

43일 남** 씨가 등장한다. 남 씨는 한만호가 구속된 이후 회사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신건영에 감사로 들어온 인물이다. 처음에 한만호는 남 씨를 믿고 의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 씨가 자신의 회사를 뺏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한만호는 남 씨를 법조 브로커라고 비망록에 써 놓았다.

 

사장님 협조하시고 도움을 받으시지요. ... 서울시장 선거도 있고, 이 건은 전체를 직접 계획하고 주도하는 아주 윗선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

 

수사에 협조하면 가석방 등의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남 씨가 한만호를 회유했다고 재판부는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남 씨와 한만호의 만남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만남 뒤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만호는 남 씨의 이야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한만호의 검찰 진술 동기가 처음에는 공포였고, 다음에는 희망이었다. 검찰이 협조하면 도와준다고 했다.

 

검사와 수사관의 은근한 암시, 검찰 대리인으로 등장한 남 씨의 은밀한 제안 등에 영향을 받은 한만호는 스스로 스토리를 구상해검찰에 진술하기 시작했다.

451차 조서를 썼고, 511일 마지막 5차 조서가 완성된다.

 

41일부터 진술을 번복한 1220일까지 한만호는 73번 검사실에 불려간다. 하지만 조서를 꾸민 날은 5회에 불과하다. 나머지 68번 출정 때는 검사실에서 무엇을 했을까? 이 질문은 디에 증인 김씨와 최씨, 죄수 H의 케이스에서도 똑같이 나올 수밖에 없다.

68번의 출정은 스토리를 구상하고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창작의 과정과 유사하다. 한만호가 기억의 편린을 이용해 기본 스토리를 만들고 검사실에서 파악한 사실관계에 맞춰 정교하게 고쳐나갔다.

한만호는 검찰의 수사 방식을 두고 단추 하나 가지고, 양복도 만들고 바바리도 만들고 코트도 만들었다라고 법정에서 표현했다. 검찰의 의도에 영합하는 진술을 스스로했다. 수사 받는 한만호와 수사 하는 검찰이 서로 사실관계를 맞추어 나가는 방식이었다.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줄 때 통화 횟수가 매번 같으면 이상하니까, 처음에는 4, 두 번째는 3, 세 번째는 3회라고 스토리를 만들고, 돈을 전달한 장소도 모두 집이라고 하면 이상해 보일 수 있으니 첫 번째는 길에서 줬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만들었다가, 한만호가 횟수를 자꾸 틀리니까 결국 3번으로 통일했다고 비망록에 적어놓았다.

 

“(9억 원을) 3번에 걸쳐 제공했다고 허위 진술할 때 검찰에서 (한 총리와의 통화 횟수를) 433으로 스토리 만들었다가 나중에 332로 했다. 소동이 되니 그냥 333으로 하자 합의하고 진술과 연습했다. ...”

 

한만호의 휴대폰에는 한명숙의 전화번호가 입력돼있었다. 문제는 전화번호 입력 시점이 돈을 전달한 후 수개월 뒤라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는 것이다.

한명숙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돈 전달 일시를 검찰이 결국 특정하지 못한 것도 이런 방식의 수사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만호는 검사실에 불려가서 일종의 시험을 쳤다고 했다. 잘하면 칭찬을 받고, 못하면 창피를 당하는 시험을 매주 치렀다. 한만호는 국민교육헌장 달달 외우듯조서를 외웠다고 비망록에 적었다.

재판정에서 변호인이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습을 했다.

 

이는 당연히 불법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검찰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검찰은 곽영욱 사건 선고 하루 전인 48, 동아일보에 2차 한명숙 사건 보도가 나가게 하는 데 성공했다.

 

한만호의 검찰 진술이 언론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다시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만호는 평범한 사업가였다. 한명숙과 종친으로 엮여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뿐이지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부친도 보수계열 정당에서 시의원을 했다.

본인의 사건이 보도되는 양상을 보면서 한만호의 언론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언론은 관변 아첨 기관이라고 표현했고, 조중동은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만호는 실제로 검찰 수사관에게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다. 특히 2차와 3차 전달금인 6억 원은 구체적으로 다른 곳에 썼다고 말했다.

검찰은 알고 있었다. 돈이 한명숙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더라도 전체 9억 원 중 6억 원은 자금 조성까지는 파악했지만 이게 실제로 한명숙에게 건너갔는지는 증명할 수 없었다.

 

검사의 객관 의무는 엄격하다. 검사는 피고인을 기소한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공익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할 경우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검사는 피고인을 벌해야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이다.

 

한만호는 노트에 편지 초안을 작성하고 실제 편지는 그걸 베껴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비망록에는 각종 편지 초안이 수십 건 있었다.

한만호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며 죄책감에 사무쳤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고 검찰의 압박은 거세졌다. 한명숙 사건 1심이 끝나기도 전에 한만호를 위증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한만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진술 번복 이후 법정에 6차례나 더 나와 검찰 진술이 허위였다고 재확인했다.

 

한만호는 돈을 전혀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한명숙 앞에서 일관된 태도로 사죄의 마음을 표시했다.

한만호는 법정에서 즉 한명숙 앞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한명숙 총리님은) ... 내가 허위진술을 한 결과 선거에서 낙선했고, 기소까지 당해 고통스러웠습니다. ... 그래서 법정에서 증언할 날을 기다렸습니다. ... 지금 증언하는 것은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바로 잡아가는 것입니다.”

 

 

# 검찰의 반격

 

1차 한명숙 사건 때 곽영욱의 진술이 오락가락했고, 결국 무죄 판결이 나왔다. 2차 한명숙 사건 즉 한만호 사건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한만호가 법정에 서기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검찰은 20107월 한명숙을 기소했다. 12월 공판이 시작됐고 2차 공판이 열린 1220일 한만호는 진술을 뒤집었다.

한만호가 동료 재소자들에게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수사팀에 풍문을 전달하고 대비하라는 조언을 했다는 주체 중 하나가 검찰 출입기자였다. 검찰 출입기자가 검찰의 정보원 역할을 한 셈이다.

 

# 검찰의 히든카드 : 사기꾼

 

한명숙 사건 제7차 공판(2011. 2. 21)에 뜻밖의 인물이 증인으로 나왔다. 이름은 김**(이하 증인 김 씨)로 한만호가 통영에서 서울구치소로 온 뒤 함께 있던 동료 재소자였다. 2009년 사기죄로 16개월 형을 받고 20109월 출소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올 때는 재소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

김 씨는 검찰에서 신청한 증인이었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하는 증언을 깨기 위해서(탄핵하기 위해서) 검찰이 부른 증인이다.

 

김씨는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고 하는 등, 검찰이 바라는 증언을 완벽하게 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도 지나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런데 한만호의 증언은 완전히 달랐다. 김 씨와 각별한 사이가 아니다. 같은 구치소에 있으니 일상적인 말을 섞는 정도였다. 뇌물과 같은 내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니다.

 

김 씨와 한만호는 법정에서 대질신문을 하면서 삿대질을 해가며 언성을 높였다.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만호와 김 씨는 서로 인사 정도 하는 사이는커녕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구치감에서 인사를 했을 때 일산 후배라고 해서 반가운 내색을 해줬을 뿐이다. 당연히 한명숙이나 뇌물, 정치자금 같은 얘기는 한 적도 없고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알던 사이였는지 아닌지는 헷갈릴 수 없다. 대통령 후보 유세를 부ᄐᆞᆨ한 기억은 다를 수 없다. 둘 중 한 명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한만호의 반박은 간단했다.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검찰 측 증인인 김 씨의 증언을 검증해봤다. 김 씨는 한만호와 같은 건설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우연히 인사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취재를 하던 중 김 씨 사업에 투자를 했던 사람을 만났다. 김 씨가 공연기획사를 차린다고 해서 4~5억 원을 투자했다. 사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김 씨가 체포되는 바람에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씨가 건설업에 종사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한만호와 김 씨 둘이 구치감에서 처음 만난 2010년 한만호는 50세였고, 김 씨는 34세였다. 한만호는 사회에서 중견기업을 소유했던 CEO였고, 김 씨는 상습사기범이었다. 16살이나 어린 사기범에게 뇌물, 정치자금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그렇게 상세하게 털어놨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재판정에서 한만호와 벌인 대질신문을 보면, 김 씨는 한만호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간다. 한만호와 원래 각별한 사이였다고 주장하면서도, 한만호를 걱정하는 모습은 김 씨에게 전혀 없었다. 한만호의 법정 증언을 탄핵하는 미션을 받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변호인에게는 적대적이고 검사와는 친밀하다.

 

# 검찰의 두 번째 히든카드 : 약쟁이

 

김 씨 다음으로 등장한 검찰 측 증인은 역시 한만호의 동료 재소자인 최 씨였다. 최 씨와 한만호도 서울구치소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최 씨는 마약 사범이었다.

최 씨의 증언은 김 씨와 다르지 않았다. 검찰이 원하는 내용과 100% 일치했다.

한만호의 반응은 김 씨와의 대질신문 때와 같았다. 저 사람들(김과 최)이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검찰이 내세운 김 씨와 최 씨의 공통점이 있다. 김은 상습 사기꾼이다. 최는 마약사범이다. 이른바 잡범으로 판사들이 싫어하는 증인이다. 증언의 신뢰를 주기 힘든 인물이다.

 

김 씨와 최 씨는 모두 기결수였다. 원래는 모두 미결수가 있는 구치소가 아니라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한만호도 기결수였다. 통영교도소에 있다가 검찰이 불러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김과 최도 마찬가지였다. 기결수이지만 구치소에 머물면서 수시로 검찰에 불려 다니는 죄수.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이다.

 

뉴스타파는 김 씨와 최 씨의 검사실 출정 기록을 확인했다.

김 씨는 20109월에 출소했다. 2010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89번 검찰청에 출정을 깠다. 한 달에 평균 15번이다. 주말과 휴일을 빼면 사실상 매일같이 불려나간 셈이다. 김 씨는 출소 이후에도 검사실을 계속 들락거렸다. 특수부, 강력부, 형사부...불려간 검사실도 다양했다.

최 씨도 비슷하다. 20104월부터 20113월까지 1년 동안 148차례 검사실에 출정을 나갔다. 한 달 평균 12번이다. 김 씨도 최 씨도 직장인이 출근하듯 검사실을 다녔다.

구치소에는 속칭 검찰의 빨대’, ‘프락치역할을 하는 죄수들이 있다. 자기들끼리 은어로 야당이라고 부른다. 검찰에 다른 죄수들의 동향이나 범죄 첩보 등을 보고하고 편의를 받는 자들이다. 여기서 편의는 외부와의 통화, 외부인과의 (검사실에서의) 접견, 인터넷 사용, 외부 음식, 담배 등(성관계도 포함될 수 있다)이 해당된다.

 

검찰은 이런 죄수들을 수사에 적극 활용한다. 일종의 수사기법이다. 검사는 범죄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서 좋고, 죄수는 편의를 받아서 좋다.

구형량, 가석방, 형집행정지 등이 거래되는 심각한 사례도 많다.

한만호는 빨대들이 자신의 혐의를 이용해 검찰과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만호의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의 말이다.

 

KBS에서 인터뷰하여 방송한 김 씨의 동료 재소자는 김 씨를 검찰 정보원이라고 단정했다. 평일에는 대부분 검찰청에 출정을 나가고 가끔 주말에도 나갔다고 말했다. 사실상 검찰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재소자들은 김 씨를 조심했다.

 

출정 기록을 보면 김과 최는 검찰의 정보원이었을 확률이 꽤 높다.

1심 판사도 김과 최의 증언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목적을 달성했다. 언론이 김과 최의 증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검찰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 죄수 H

 

죄수 H가 있다. 그는 사기, 횡령, 자본시장법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 이상의 확정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한명숙 사건 법정에 검찰 측 증인으로 서기 전까지, 사기죄로 감옥에 있던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다.

 

김과 최가 증인으로 나오자, 변호인단은 공격적으로 반대신문을 했다. 한만호에 관한 이런 얘기를 들은 다른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김과 최는 공통적으로 대답한다. H라고. 서울구치소에 동료 죄수 H가 있다고.

 

그렇다면 H가 법정에 등장해야 할 순서다. 그러나 죄수 H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H는 검찰이 증언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였다. 죄수 H는 광주교도소에 있었다.

 

한명숙 사건 이후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H는 아직 교도소에 있었다. H는 정말 검찰의 증언 조작을 주장한 적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죄수 H에게 편지를 보냈고, 시간이 흘렀고, 답장이 왔다.

 

“... 심인보 김경래 기자님... 여기서 보는 검찰은 참으로 썩은 집단입니다....”

여러 차례 편지가 오간 뒤, 죄수 H는 면회를 허락했다. H1964년생이다 한만호가 1961년생이니 엇비슷한 나이다.

 

H는 흔히 말하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명숙 사건에서 검찰이 증인을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H를 포함해 김과 최, 이렇게 세 명이 주인공이다. 아니 검사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2010년 말과 2011년 초에 걸쳐 한명숙 수사팀 검사가 이 세 명을 수시로 검사실에 불렀다. 재판정에서 해야 하는 증언을 외우게 했다. 검찰 진술을 뒤집은 한만호의 법정 증언을 탄핵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해위증교사였다. 그냥 위증은 5년 이하, 모해위증은 10년 이하다. 범죄를 교사한 자는 실행한 자와 동일하게 처벌받는다.

 

H의 말과글을 검증하기 위해 편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났다. 한명숙 사건 기록과 비교해 모순이 없는지 오랜 시간을 들여 확인했다. 법무부와 검찰에 확인절차를 밟았다. 정보공개청구로 추가 자료를 확보했다.

 

 

# 한만호와 H

 

H는 사회에 있을 때 상장사 대표를 지냈다. 2006년 사기 등 경제 범죄로 구속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20103H는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돼 있었다. 331일 한만호가 통영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한만호도 독거실에 수용됐다.

 

독방에 있는 재소자들도 운동 시간이 있는데, 운동하는 공간이 일반 재소자와 분리된다. 원형 운동장을 피자 조각처럼 작은 구획으로 나누어 놓았다. 파놉티콘을 연상케 하는 구조다.

 

H는 한만호와 2미터 담을 두고 대화를 했다. 비슷한 연배였고, 같은 CEO 출신이었다. 한만호가 H와 누구보다 가깝게 소통했다는 건 김과 최도 공통으로 증언했다.

한만호는 H에게 말하였다. 자신이 검찰에 허위로 진술한 것이 있는데, 그게 언론에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고 했다. 검사들에게 자신의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전해달라고 H에게 부탁했다.

한만호는 검찰을 두려워했다. 본인이 진술을 번복하면 괘씸죄로 추가 기소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한만호를 믿게 된 H20108월 무렵 자신이 출정을 나가던 검사실의 전 모 검사에게 한만호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전 검사는 사실이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자신의 선임인 부부장 검사를 소개해 줬다. 당시 부부장이었던 홍 모 검사는 이야기를 듣고 H에게 한명숙 수사팀 검사를 만나게 해줬다. 그러나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H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여기서 증인 김 씨가 다시 등장한다. 당시 김 씨는 H를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신도 검찰에 협조하시라

 

H의 출정 기록을 확인해 본 결과, 8월 무렵 홍 부부장 검사실에 간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전 검사와 홍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 검사는 지금도 현직에 있으며, 답변은 하지 않았다.

홍 검사는 퇴직하고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자세한 얘기는 회피하며, 힌트를 주었다.

“H가 누군지 알고 있다. 하지만 피의자로 조사한 적은 없다.” 피의자가 아닌 다른 신분으로 만났다는 뜻이다.

 

2010831H는 서울중앙지검 1128호에 출정을 간다. 김 씨의 기록에도 같은 날 1128호에 출정 간 기록이 있다. H와 김은 같은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 이 시점은 H가 다른 검사들에게 한만호가 거짓 진술을 했다는 내용을 제보한 직후였다.

 

당시 김 씨는 검찰에 매일 출근하는 죄수였다. 김이 검찰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료 재소자들이 많았다. 한명숙 사건이 시작된 즈음에 김은 해당 수사팀에 사실상 출근하고 있었다.

한만호가 처음 특수부에 소환된 41일을 전후한 김의 출정 기록은 의미심장하다. 김은 2010315일부터 4월 말까지 검찰청에 22번 출정을 간다. 검사실은 1020.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던 중앙지검 특수1부였다.

H는 김에 대해 검찰과 한 몸이라고 평가했다. 김 씨는 서울시장 선거 전부터 검찰에 협조하던 인물이었다는 게 H의 주장이다.

 

20101220일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었다. 당일 한명숙 수사팀은 H와 관련된 사건을 전산으로 조회했다. 이후 수사팀은 H를 계속 소환한다. H는 출정을 거부했다. H가 출정을 거부한 날은 2011125, 27, 28, 31일 나흘이다.

한만호의 법정 증언을 탄핵할 증인으로 김과 최 말고 다른 한 명이 더 필요했다. 상습사기범이나 마약사범보다 신뢰도가 더 높아 보이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2011128일 오전, H는 한명숙 수사팀의 소환을 거부하고 오후에 다른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명숙 수사팀인 특수1부 수사관이 직접 법원 재판 대기실로 찾아왔다. 수사관은 출정을 거부하는 H에게 거부 이유를 캐물었고 출정을 요구했다. H는 한명숙 수사팀 검사실에 나갔다. 하지만 증언 협조 요구는 거절했다.

 

검찰은 H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검찰은 H의 아들과 조카를 검사실에 불렀다. H가 주식매매에 아들과 조카 명의 계좌를 이용했는데, 그걸 조사한다는 명목이었다.

어린 아들을 볼모로 잡고서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부정의한 양아치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출정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H의 아들은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미국에 전화해서 아들의 동의를 얻었다. 영어로 된 위임장을 받아서 중앙지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010년과 2011년 아들의 출입 기록을 요청했다.

H의 아들은 2011214일 중앙지검에 출입한 것으로 나왔다. 들어간 시간은 오후 515, 나온 시간은 오후 653. 대략 1시간 30분 검사실에 머물렀다. 방문한 곳은 1128호실. 한명숙 수사팀이었다.

H의 아들과 전화 통화로 당시 상황을 들었다.

갑자기 검찰에서 불러서 당황했었다. 검사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걱정 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여기 있는 검사분들 도와주는 거라고 말했다.”

 

H는 당시 크게 분노했다. 검찰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찰이 뭘 하는지를 알게 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이 갑이 되는 것이다.’

H가 그때부터 검찰에 협조한 것은 일종의 연기였다는 말이다.

 

# 호랑이를 만들다

 

상습 사기범 김 씨, 마약사범 최 씨, 그리고 검찰에 한만호의 진실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죄수 H가 한 팀이 됐다. 지휘자는 검찰이었다. 이 팀의 목적은 한만호의 법정 증언을 탄핵하는 것. 한만호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입증하면 끝이다.

 

검찰청 특수부 검사실은 조사실이 아니라 훈련장이 됐다. 김과 최는 이미 훈련이 꽤 돼 있는 상태였다. 먼저 한 명씩 따로 훈련을 받았고, 두 명씩 짝을 지어, 때로는 세 명이 함께 연습했다. ‘집체교육이었다.

거짓말은 쉽지 않다. 법정에서 거짓말은 더욱 어렵다. 상대 측 변호인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인의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모든 디테일을 숙지해야 한다.

 

검찰이 PC로 필요한 진술서를 작성해서 보여준다. , , H 3인은 손으로 진술서를 베껴서 자필 진술서를 만든다. 이 진술서를 가지고 반복 연습을 한다. 연습을 하다가 말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진술서를 수정한다. 연습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영상녹화실에서도 진술을 녹화한다.

 

김 씨는 법정 증언을 두 번 했다. 2011221일과 323. 최 씨는 그 사이 37일에 증언했다.

죄수 H의 출정 기록에는 20111월 말부터 약 두 달 동안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던 특수1부에 스무 차례 출정한 기록이 남아 있다. 대부분 증인 최 씨의 출정 기록과 겹친다.

 

김 씨는 당시 출소한 상태였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검 감찰이 시작됐는데, 그 과정에서 김 씨의 검찰 조사 기록이 확인됐다. 1월 말부터 본인이 법정 증언을 할 때까지 10번 검사실을 방문했다. 김 씨는 1주일에 한 번 이상 꼬박꼬박 검사실을 방문했다.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12시를 넘기는 심야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H는 훈련과 증언의 모든 과정을 한만호를 죽이기 위한 검찰의 삼인성호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세 명이 말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고, 살인죄도 덮어씌울 수 있다.

H에 따르면 검찰은 김, , H를 연습시켜 차례로 법정에 내보낼 계획이었다.

 

아들과 관련된 일을 겪고, H는 검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척)했다. 검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H는 검사실에서 종종 회식을 주선했다. 밖에 있는 직원이나 친지를 시켜서 고급 음식을 검사실로 배달시켰다. 유명한 맛 집이나 고가의 호텔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먹었다. 수육, 족발, 스시에 추가로 담배까지. 증거를 남기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카드 사용 내역은 남게 돼 있으니까. 조카가 사 오기도 하고, 회사 부하 직원 윤 모 씨가 자주 사왔다. 검사들, 부장들, 최 씨, 김 씨 등 검사실 식구도 많아서 보통 10인분 넘게 사 왔다.

 

회사 부하 직원이었던 윤 씨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H의 조카에게서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검찰청 출입 내역을 받았다.

조카에게서 받은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검찰청 출입 내역을 토대로 그날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201131일 오후 45. 서울 지하철 3호선 매봉역 근처 스시생이라는 초밥집. 서울중앙지검에서 그리 멀지 않다. 20대 중반의 젊은 남성이 스시 도시락 525천 원어치를 신용카드로 구매했다. 이 남성은 1시간 뒤인 510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갔다. 출입한 곳은 당시 한명숙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특수부 1128호였다. 이 남성은 533분 중앙지검을 나왔다. 검찰청에 머문 시간은 23분이었다. 스시 도시락을 놓고 바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스시생을 찾아가 봤다. 이름이 주문진세꼬시로 바뀌었다. 10년 전에는 스시가 주메뉴였다고 했다. 지금도 스시생이라는 이름을 버리지는 않았다. 스시생이라는 간판도 함께 달려 있었다.

10년 전에 스시 도시락 하나에 제일 비싼 게 5만 원 정도였다고 했다. H의 조카는 여기서 525천 원을 썼다. 적게 잡아도 도시락 10개는 샀다는 말이다.

H는 검사들도 함께 음식을 먹었다고 주장했다. H의 조카는 도시락을 그냥 놔두고 나왔다고 기억했다. 적어도 10인분은 넘는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이 벌어진 무대는 1128호였다. 당시 1128호에 있던 엄희준 검사에게 여러 번 전화하고 문자, 카톡을 보냈으나 답은 없었다. 당시 특수1부의 부부장은 임관혁 검사, 특수1부장은 김기동 검사였다.

 

 

검찰은 세 개의 화살(증인)을 준비했다. 두 개는 과녁에 명중했다. 김 씨는 법정 증언을 두 번 했다. 2011221일과 323. 최 씨는 그 사이 37일에 증언했다. 언론은 이들의 증언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세 번째 화살은 끝내 쏘지 못했다. 죄수 H가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제가 최**, **을 통해서 말했어요. 나 이번에 법원(증인) 나가면 양심선언 할 거다. 검사 저 새끼가 다 조작했고, 저놈이 조작해서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리고 검사뿐 아니라 그 지휘 라인 전체가 알고 있었다는 걸 내가 양심선언 할 거다. 그리고서 (검사실)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3월 말부터 4월 사이 H의 출정 기록에는 특수1부 출정 요구를 4차례 거부한 사실이 남아 있다.

H는 검찰이 아들을 소환한 사실에 분노하면서 복수를 계획한다. 검찰의 계획대로 H는 김**, **과 증언 훈련을 충실하게 받는다. 이제 검찰의 치부를 알게 됐으니 갑이 된 셈이다. 갑이 된 H는 증언을 거부했다.

H는 검찰이 자신을 법정에 세우려 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중에 확보하게 된 공판 과정을 녹음한 파일에는, 검찰이 H에 대해서도 증인 신문을 요청한 것으로 돼 있는데, 한명숙 변호인은 H도 검찰 측 증인에 불과했기에, 그를 증인으로 세우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 김의 정체

 

H는 검찰이 모해위증교사를 했다고 폭로했다.

 

검찰 측 증인 김 씨는 한만호의 서울구치소 동료 재소자였다. 상습 사기 전과가 있고, 한만호와 만났을 때도 사기죄로 복역하고 있었다. 검찰청을 출근하듯 들락거렸다. 구치소에서는 동료 재소자들이 검찰 정보원이라고 평가했다. H는 김 씨와 검찰을 한 몸이라고 표현했다.

한명숙 사건 수사팀에도 수십 차례 출정을 갔다. 한만호를 전부터 알던 사이라고 증언했지만, 한만호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법정 증언에서 검찰이 원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증언을 했다. 김 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지인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KBS는 김 씨와 인터뷰를 했는데, 김 씨는 본인의 법정 증언을 다시 뒤집었다.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돈을 직접 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비서나 측근에게 줬다. 배달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고 한만호에게 들었다는 거다. 검찰의 공소사실과도 다르고, 본인의 법정 증언과도 다르다.

 

검찰도 잘못 많이 했죠.”

 

출소 이후 일주일에 세 번꼴로 검찰을 드나들었다. 마음이 바뀌면서 불안정해진 한만호를 안정시키는 데 검찰이 자신을 활용했다.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검찰 직원이 매번 마중을 나와 건물 뒷문으로 출입했다. 만나고 싶은 재소자들을 불러서 검사실에서 마음껏 만났다.

검찰은 당시 한만호가 진술을 번복할 수 있다는 낌새를 차렸다. 출입기자나 다른 검사를 통해서 풍문이 전해졌다고 검찰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출입 등록을 하지 않고 뒷문으로 드나들었다는 것은, 김 씨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한명숙 수사팀)보안손님이었다는 말이다.

H는 대검 감찰부 조사에서 중앙지검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말을 김 씨에게 들었다고 했다. 김 씨가 출입 등록 절차 없이 구치소 수용자들이 하차하는 곳을 통해 검사실에 드나들었다는 말을 자신에게 했다고 한다.

 

한만호가 증언을 번복하기 전부터 검찰은 김 씨를 비밀 통로로 드나들게 했다. 검사는 재판정에서도 위증을 교사했다는 말이 된다.

한만호가 진술 번복을 하기 두 달 전, 김 씨는 한만호를 면회했는데, 그 때 한명숙 수사팀이 불러서 갔고, 검찰이 도와달라고 하더라는 말을 한만호에게 했다.

 

2020년 김 씨의 KBS와의 인터뷰는 2011년 법정에서 검사가 한 질문을 모두 부정하는 내용이다. 한만호의 심기를 달래기 위해 재판 전부터 검찰이 자신을 불러들였다는 것, 게다가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뒷문으로 들였다는 것, 자신은 본래 검찰이 관리하고 활용하던 사람이었다는 것.

이 말은 곧 검사가 법정에서 위증을 유도했다는 뜻이 된다.

 

2020년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검 감찰부(감찰부장 한동수)는 감찰에 착수했다. 감찰의 핵심은 증인에 대한 검사의 모해위증교사가 있었느냐 여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한명숙 사건을 대검 감찰부에서 인권부로 넘겼다.

한명숙 사건은 검찰의 유력한 특수통들이 관여한 사건이다. 윤총장 라인이라고 평가받는 검사도 다수 포함돼 있다.

 

감찰 방해 논란이 있었고, 대검 감찰부는 한명숙 사건을 다시 조사했다.

20211월 감찰부는 H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했다.

H는 이 사건에서 위증교사 의혹을 폭로한 사람이자 위증교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만호의 번복된 진술을 무너뜨리기 위해 검사가 증인들에게 허위 사실을 훈련시켰다.’

H의 폭로였다.

 

엄희준 검사실 관계자들이나 김 씨는 증인신문 연습 사실은 인정했다. 통상적인 조사를 넘어서 검사와 증인이 법정 증언을 연습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만호의 진술 번복 뒤 엄희준 검사실은 분주했다. 매일매일 한만호의 동료 재소자들을 소환한다. H21, 최는 18, 김은 10. 김은 재소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

최의 경우 본인의 증언이 끝나고 나서도 검사실에 들락거렸다.

김과 최, H가 같은 날 검사실에 불려간 것도 8번에 이른다. 11시를 넘겨서 조사를 한 날도 7번이다.

피의자도 아니고 단순 목격자, 참고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강도 높게 조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사팀이 사전에 급조한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하라고 했으며, ‘수사팀이 사전에 급조한 내용에서더 보태지 말라고 했다고, H는 주장했다.

 

검찰의 기소 내용에 부합하게 증언을 연습하는 건 반칙이다. 헌법재판소도 검찰의 이런 행위를 공권력 남용이자 위헌으로 판결했다.

H의 변호사인 신장식 변호사는, 반복적인 증언 연습 행위가 공개재판주의와 적법절차를 위반하고,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과 최, H가 증언 연습을 했다는 건 이제 서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김과 최, H를 검사실에서 수십 차례 조사했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검찰은 그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한만호의 경우 검찰은 73번을 불렀다. 그중 진술조서가 있는 건 5번이다. 68번은 뭘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시간에 검사, 수사관과 함께 시나리오를 가다듬고 증언을 연습했다고 한만호는 비망록에 적었다.

증인 김 씨나 최 씨의 검찰 조사 기록은 어떨까?

제출된 건 20101227일 작성된 두 쪽짜리 김 씨 진술서 달랑 하나였다.

변호인단은 조서가 됐든 녹화 영상이 됐든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검찰 측 입장이 좀 오락가락했다. 면담만 했고 진술서나 녹화된 영상은 없다고 했다가, 김 씨만 녹화를 했고 최나 H는 녹화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반면 H는 진술서를 작성해 날인을 했고, ‘충분한 훈련을 거친 뒤에 영상 녹화를 해서 관련 서류에 날인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증거 개시 결정으로 검찰은 자료를 제출했는데, 역시 201012월 녹화된 김 씨 조사 영상 달랑 하나였다. 김과 최, H를 조사한 횟수는 적어도 49번에 이른다.

 

2020년 대검 감찰부도 한명숙 수사팀에 이 영상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으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검찰보존사무규칙 제8조에는 유기징역이나 금고 이상이 확정된 사건 기록은 영구 혹은 준영구보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준영구는 최소 70년이다.

대검 감찰부는 한명숙 변호인단에 검찰에 있어야 하는 기록인데 없다. 혹시 영상이 있으면 제출해 달라는 메모를 보내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당시(10년 전) 변호인단에 있었던 변호사들이 서로 수소문해 겨우 자료를 찾았다. 감찰부에 제출했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 뻔한 영상이다.

 

검찰이 촬영한 김 씨 조사 영상의 녹취록을 입수했는데, 20101227일 엄희준 검사실에서 녹화했다. 시간은 30분 정도. 1220일 한만호가 진술을 번복했으니 딱 일주일 뒤에 진행된 조사다. 김 씨가 법정에서 증언하기 두 달 전에 녹화된 영상이다.

김은 검찰 조사에서 한만호를 어디서 처음 봤는지 기억을 못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김 씨의 기억은 많이 발전했다. 날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대사까지 기억했다.

 

검찰 조사 때는 한명숙이라는 이름을 2~3일 뒤에 들었다고 했다. 법정에서는 처음 만난 날 들었다고 했다.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는 구치감에서 만나기 전부터 원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KBS 인터뷰에서는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직접 줬다고는 안했다고 했다.

 

한명숙 사건의 핵심은 한만호가 한명숙에게 9억을 어떻게 전달했느냐이다. 김 씨는 이 부분에 대해 검찰 조사에서 몰랐던 부분을 법정 증언 때는 아주 자세히 알게 된 것이다.

 

20101227(검찰 조사)2011221(법정 증언) 사이 김 씨는 검사실에서 연습만 한 것은 아니었다. 김 씨는 교통사고를 내서 경찰조사를 받고 있었다.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량에 일부러 사고를 낸 혐의였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에 전화가 두 번 이상 걸려왔다. 서울중앙지검의 한명숙 수사팀이었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김 씨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 진실의 유효기간

 

삼인성호라고 하는데, 김 씨와 H, 그리고 최 씨가 그 삼인이다. 김 씨와 H는 취재가 됐는데, 최 씨는 찾을 수 없었다.

한명숙 1심 재판 2년 뒤인 2013, 최 씨가 감옥에서 검사를 팔아 브로커 짓을 하다 추가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동료 죄수를 속여 17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KBS는 전혀 다른 사건으로 최 씨의 가족을 취재하다 최 씨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최 씨는 한명숙 사건 이후 출소했다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놀라운 건 최 씨도 2020년에, 자신이 법정에서 한 증언은 검찰이 만들어낸 거라고,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자신에게 위증교사를 했다는 주장이다. H와 똑같은 주장이다. 시점은 뉴스타파 보도 한 달 전쯤이다. H는 최 씨와 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다른 최 씨(이하 최2)도 있다. 2는 한만호가 서울구치소로 이감 왔을 때 사소 일을 하던 죄수였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최2도 폭로에 동참했다. 2는 자신이 쓴 진술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어떻게 쓸 것이지 알려주고 교정해 줬다고 했다.

 

, , H, 2. 등장 인물 4명 중 H, 최 씨에 이어 최2도 검찰이 진술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31이다. 남은 1인 김 씨는 말할 때마다 진술이 바뀌는 사람이다. 4명은 모두 재소자이거나 재소자였다.

 

 

# 공소시효

 

2020년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H는 고발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에 이야기하기 전부터 한명숙 사건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었다.

양승봉 변호사는 2013년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에서 피해자였던 유우성을 변호하고 있었다. 유우성은 구치소에서 H와 만나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양승봉은 유우성에게서 H를 소개받았다. 이후 H의 사건 일부를 담당하기도 했다.

양승봉은 2013H를 처음 만났을 때도 한명숙 사건에서 검찰 수사에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내용과 같은 내용이었다고 한다.

 

H는 한명숙 사건 진실 규명에 적극적이었다. 201712H는 변호사 양승봉을 통해 청와대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진정서에는 검찰이 아들을 볼모로 압박을 해 어쩔 수 없이 증언 조작에 협조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진정서는 청와대에서 대검찰청으로 이첩됐다. 20183월 서울중앙지검으로 송부됐다. 중앙지검은 20187월 공람종결 처분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2020622H는 당시 검찰 수사팀과 지휘 라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감찰 요청 및 수사 의뢰서를 대검 감찰부에 제출했다.

수사 의뢰 대상은 검사만 13명이다. 수사팀 엄희준, 신응석 검사, 특수1부 부부장이었던 임관혁, 주영환 검사, 특수2부 부부장 조재연 검사, 특수1부 부장 김기동, 이동열 검사, 특수2부 부장 권오성, 최윤수 검사, 중앙지검 3차장 윤갑근 검사, 중앙지검장 노환균, 한상대 검사, 검찰총장 김준규 검사. 여기에 당시 수사팀에 있었던 검찰 수사관 두 명과 경찰 한 명이 포함돼 있다. 재소자였던 김 씨, 최 씨도 당연히 들어가 있다.

이들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혐의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모해위증, 모해위증교사, 모해위증 방조, 협박, 강요 등이다.

감찰의뢰 당시 상당수 혐의는 공소시효 완성이 된 상황이었다. 특히 핵심 혐의라고 할 수 있는 검사들의 직무유기, 직권남용의 공소시효는 5년과 7년으로 한참 지났다.

모해위증과 모해위증교사는 공소시효가 10년이다. 공소시효는 322일에 완성된다.

 

 

# 마지막 편지

 

검찰은 왜 한만호를 73번이나 불러 조사를 했을까?

한만호의 진술 번복 뒤, 재소자들을 불러 증언 연습까지 시킨 검사실 풍경은 블랙코미디다.

2016년 한만호는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검찰의 회유로 거짓 진술을 했지만, 재판정에서 한명숙의 얼굴을 보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만호는 원주교도소에 있던 20172월 한명숙에게 편지를 한 통 보낸다. 한명숙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의정부교도소에 있었다.

 

“... 쏟아지는 죄책감 자책감으로 감히 서신 올리기가 두렵고 민망함에, 염치없게도 기나긴 시간의 망설임 끝에 꼭 한 번만큼은 서신이라도 올려야만 될 것 같아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

최후 진술 시 그리 진술하였습니다. ...일생을 명예로운 정치인으로 살아오신 분을 모함하여, 인생 말년을 수감 생활로 마무리하게 한 파렴치한 범죄의 형벌로 여기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 하였습니다.“

 

한명숙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한만호는 출소하면 찾아뵙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한만호는 2018년 출소해 그해 겨울 사망했다.

 

한만호는 73번에 걸쳐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68번은 조서도 없다. 김 씨도 최 씨도 마찬가지였다.

 

수사권 독점, 영장청구권 독점, 기소권 독점,

모두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검찰에 부여한 독점적 권한이다. 그런데 검찰은 이 권한만 키우고, 나쁜 놈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선택적 수사, 선택적 기소, 무소불위의 검찰권.

검사는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2020년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검 감찰이 시작됐다. 조사 주체를 놓고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충돌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검 감찰부가 감찰을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했다. 적정 인력은 배치되지 않았고, 수사권도 없는 검사 한 명이 모든 것을 담당했다.

 

검찰이 죽고 사는 문제였다. 담당 검사 임은정은 자신이 맡은 일을 검찰에서 저주받을 조사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한명숙 사건은 20101220일을 기점으로 나뉜다. 이 날은 한만호가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뒤집은 날이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1220일 이전에는 돈을 줬다는 한만호의 진술을 토대로 한명숙의 불법정치자금 수수를 입증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1220일 이후에는 한만호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사건으로 바뀌었다.

1220일 이전은 한명숙 전 총리 불법정치자금수수 사건이고, 1220일 이후는 검사모해위증교사사건이다.

 

증인 최 씨의 모해위증 공소시효는 202136일이었고, 김 씨는 322일이었다. 이들을 모해위증으로 기소하면 교사범의 공소시효는 멈춘다.

 

222일 법무부는 임은정 검사에게 수사권을 부여했다.

대검 감찰부 내부에서 기소를 두고 논의가 진행됐다.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담당 검사는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허정수 감찰3과장은 반대했다.

임은정은 사건을 수사로 전환하겠다는 보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한동수 감찰부장은 판사출신이다. 한동수는 2019년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감찰부장에 임명됐다. 임은정 검사는 평소 SNS나 언론을 통해 검찰 개혁을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이 두 명 모두 검찰 내부에서는 비주류, 정확하게 말하면 왕따로 평가받는다.

 

202132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한명숙 재판 모해위증 사건의 주임검사를 허정수 감찰3과장으로 지정했다. 공소시효 나흘을 남기고 담당검사를 갈아치웠다. 기소하지 말라는 뜻이다.

윤석열은 33일 총장직에서 사임했다.

윤석열은 임기 마지막 지시로 검사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덮었다.

35일 허정수 감찰3과장은 사건을 불기소 종결처리했다. 최 씨에 대한 공소시효 36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322일은 김 씨의 공소시효였다. 317일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 부장단 회의를 열어 다시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대검 부장단에 고검장들을 포함해서 회의를 열겠다고 했다.

대검은 319일 회의를 열었고, 불기소가 결정됐다. 3232일 공소시효도 지나갔다.

한명숙 사건에서 검사가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 검사는 언제나 안전하다

 

201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터졌는데,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유우성의 국경 출입 기록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유우성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간첩 조작사건으로 바뀌었고, 유우성은 국정원 수사관과 검사 2명을 고소했다.

간첩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이번에는 간첩 조작 사건을 수사했다. 2020년 검찰은 국정원 직원 2명을 기소했다. 검사 2(이시원, 이문성 검사)에게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제 식구 감싸기논란이 불거졌으나 곧 잊혀졌다.

 

모든 형사 사건은 돌고 돌아 검찰에 도착할 수밖에 없다. 기소는 검사에게 부여된 독점적 권한이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할 때는 거의 언제나 증거가 불충분하다.

 

박수종과 유준원은 구속됐다. 그러나 박수종과 유준원의 사건을 덮은 검사들은 아무도 조사받지 않았다.

죄수들에게 불법적인 편의를 제공했던 검사들 역시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다.

검사가 죄수에게 진술을 강요하고 선거에 개입하고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도 결국 덮이고 말았다.

 

20211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공식 출범했다. 참여연대가 공수처를 공론화한 지 25년만이다. 처음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 체제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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