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절 참부모님 북한 방문 및 김일성과의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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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참부모님 북한 방문 및 김일성과의 회담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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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참부모님 북한 방문 및 김일성과의 회담

 

고향 정주 생가 방문

참부모님께서는 북한을 떠난 지 40년 11개월 만에 북한 정부의 공식 초청에 의해 1991년 11월 30일에 북한 땅을 다시 밟으셨다. 12월 5일에는 정주 생가를 방문하셔서 친족을 만나셨고 이곳은 세계인들이 순례하는 성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북한 방문은 국내외 언론의 큰 관심 속에 이뤄졌으며, 12월 6일 평양 서재골 초대소에서 열린 환송식에서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면서 통일의 원동력이 참사랑이라고 역설하셨다. (p. 856)

 

1 내가 북한을 방문하여 고향에 가는데 헬리콥터 두 대에 나눠 타고 280리를 40분 만에 날아갔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내려서 우리 집이 있던 곳으로 가는데, 거기에도 자동차가 달릴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 놓았습니다. 한 열흘 동안에 그 길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주석이 오는 이상으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무덤에도 잔디를 입히고, 비석을 해놓고 거기에 글자를 새기고 빨간 칠을 해놓았는데 전부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집에 가 보니까 전부 페인트칠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것을 김일성이 지시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토방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토방에 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랐습니다. 마당에는 모래를 깔았습니다. 잘 해놓았습니다. 왕과 같은 에서가 동생을 왕같이 모시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226-119, 1992.02.02) p. 856

 

2 김일성에게 우리 고향을 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 고향은 세계인들이 수련을 받으면서 참관할 수 있는 장소가 될 테니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몰아붙인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해도 거기에 걸리는 것입니다. 하늘이 드리우는 공의의 낚시에는 안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무덤에 상석을 해놓고 잔디를 입혀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김일성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 고향에 가는 길을 2차선으로 자동차 길을 닦고, 묘지까지 가는 길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닦았습니다. 그러니 옛날 이스라엘의 야곱을 대하던 에서보다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왜 훌륭하냐? 이스라엘 민족은 제1의 소생적 이스라엘이었고 기독교는 장성적 이스라엘입니다. 미국은 우리 고향을 성지로 개척할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그렇게 함으로써 제3 이스라엘의 백성으로서 권위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25-314, 1992.01.26)

 

3 내가 김일성과 회담할 때 김일석이 ‘문 총재님, 생가에 가셨더랬지요?’라고 물어서 갔었다고 하면서 고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 ‘그곳은 앞으로 유명한 곳이 될 것입니다. 내가 전부 알아서 수습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예. 알았습니다. 주석님!’이라고 했습니다. 김일성의 말은 하나님 말같이 그렇게 실효가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한 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옛날에 내가 살던 고향과 같이 만들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 처음의 모양대로 여기는 이렇게 하고 저기는 저렇게 할 수 있도록 다 지시해 놓고 왔습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세계 만국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의 순례지가 되고, 내가 옛날에 말한 것들을 생생하게 현실적인 무대에서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226-120, 1992.02.02)

 

4 내가 고향에 갔을 때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왔었습니다. 나는 말을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전부 인사하고 붙들고 안 놓으려고 하는데 내가 공산당 세계를 다 알기 때문에 말을 안한 것입니다. 누이동생, 누님을 보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말을 주고받으면 그날 상부에 전부 보고해야 됩니다. 동생의 보고와 언니의 보고가 다르면 문제가 됩니다. 어떻게 똑같이 보고할 수 있겠습니까? 조카도 보고하고, 왔던 사람들이 전부 보고서를 내기 때문에 그 보고서가 서로 맞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다시 갈 수 있는 길도 막히고, 자기들이 앞으로 살 수 있는 길도 막히게 됩니다. 북한에서는 일가족 전체가 보고합니다. 남편이 보고하고, 아내가 보고하고, 유치원생에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보고하는 길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가족이 전부 똑같이 써도 문제입니다. ‘너희들, 같이 썼구나!’라고 해서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 꼼짝달싹 못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말을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는 세계입니다. (237-305, 1992.11.17)

 

5 나는 고향 땅, 북한 땅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참사를 당한 것을 다 알면서도 김일성을 사랑하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호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 어머니 무덤 앞에 설 때에 통곡이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겠습니까? 뼛골 골수의 기름을 짜서도 울음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서글프지만, 이 원수들 앞에 내가 눈물을 안 보이려고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 아버지의 성묘를 하러 왔다는 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았던 것을 잊지 않습니다. 문제가 자동적으로 풀릴 때까지 내 정성을 다해서 남북통일을 완성하겠다는 것입니다. (394-055, 2002.10.06) p. 858

 

6 북한 내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 성묘를 갔을 때 누나와 동생은 비통한 심정으로 통곡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바라던 오빠가 왔습니다. 동생이 왔습니다.’라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애절한 그 통곡 소리를 듣고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문씨의 아들로서 간 것이 아닙니다. 남북을 통일할 수 있는 주역으로 갔습니다. 무덤에 묻혀 있는 사람들 중에 비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자기 어머니 아버지 무덤만 붙들고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나와 동생이 그렇게 통곡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 미안합니다. 나는 공인으로 왔기 때문에 울 수가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해서 올 때에는 천하가, 만국이 엎드려 부모님의 누울 자리와 부모님을 모실 자리를 정해서 효자의 책임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만민의 축복을 빌어 줄 수 있는 통일왕국을 건설해서 부모님을 모시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304-073, 1999.09.10)

 

7 어머니가 나를 참 사랑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다 압니다. 자식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누나도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여동생도 오빠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한을 가지고 비운의 길을 갔다고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에서 별의별 짓을 다 했다고 봅니다. 나는 그런 북한을 구해주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311-072, 1999.08.19)

 

8 우리 어머니가 참 불쌍합니다. 아들딸 열셋을 낳아서 다섯을 하늘로 보내고 8남매를 길렀지만 나를 제일 사랑하고 나에게는 무엇이든 다 한 어머니인데, 그 어머니에게 버선 한짝, 손수건 하나 사다 준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위해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아무 공이 없더라도 나를 위해 살아온 그 공을 복귀섭리의 끝자리에 가서 전부 드러내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그런 일을 해야 됩니다. 기가 찬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나를 놓고 무엇인가 억울해하면서 콧물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내어 울던 것이 눈에 훤합니다. 북한에 가서 부모님 산소 앞에 서서 생각하게 될 때 불효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불효자입니다. (312-144, 1999.10.14) p. 858

 

9 여러분도 아버님의 고향에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1991년에 아버님이 고향에 가서 보고 실망했습니다. 50년 전에는 거기 산에 나무도 많이 있었습니다. 늑대 울음소리도 들리곤 했는데 지금은 나무가 없었습니다. 그 삭막한 풍경에 실망한 것입니다. 오히려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니 과거의 인상들이 모두 사라져 보리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더 훌륭한 환경을 보고 과거를 지운다면 과거의 기억이 쉽게 지워질 텐데, 반대 입장에서 지우려고 하면 오히려 옛날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용사들, 젊은 정예부대를 모아 옛날 아버님이 봤던 진짜 고향의 모습을 재창조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27-134, 1992.02.11) p. 859

 

김일성 주석과의 역사적 회담

참부모님께서는 1991년 12월 6일 함경남도 흥남시 마전 주석공관에서 남북 현안 등을 놓고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지셨다. 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 등에 합의하였다. 참아버님과 김일성 주석 간에 이와 같은 남북의 현안에 대한 합의가 있은 후 그때까지 경색되었던 남북관계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김 주석과의 회담에서는 3만가정 국제축복결혼식을 북한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하셨다. 참아버님께서는 김 주석을 원수가 아닌 형제의 사랑으로 품으시고 귀환하셨다.

 

10 1987년에 김일성이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공모하여 나를 암살하기 위해서 적군파 25명을 파송했던 기쿠무라 사건의 재판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 원수를 대하게 되는데, 내가 몇 천년 만에 잃었던 형제를 찾겠다고 하는 형의 마음, 동생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생각을 다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고민하던 문제였습니다. 그것만 넘어서는 날에는 아무리 악당이라도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자기 제자보다도, 자기 부하보다도 더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갔다 온 거기에서 재창조역사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르바초프를 만난 후에 세계가 변화하고, 김일성을 만난 후에 남북회담 난항 등 모든 문제가 즉각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거기에 하늘이 움직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창건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224-266, 1991.12.15) p. 859

 

11 내가 있는 한 한국은 망할 수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한 북한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남북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하나님 편과 악마 현입니다. 이제 가인권은 전부 없어졌습니다. 중국 소련 등 공산권이 다 없어지고 남은 것은 북한 김일성뿐입니다. 아벨이 동생이고 가인이 형님입니다. 가인인 김일성을 살려 주어야 합니다. 남한에서는 김일성을 죽이려고 하겠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차와 좋은 비행기를 태워 세계로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일과 잘못에 대해 알게 해주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입장에 세워서 한국은 만국의 왕 중 왕이 오실 나라요, 한국 민족은 선한 민족 중의 선한 민족이라고 선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선한 나라, 선한 사람들이 사는 본향이라고 선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242-192, 1993.01.01)

 

12 내가 김일성을 만나러 갔지만 그가 나에 대해서 여태까지 얼마나 욕을 많이 했습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김일성에 대해 욕을 하고 ‘때려치워라! 주체사상이 뭐냐?’라고 했습니다. 마피아는 나쁜 짓을 가르쳐 주면서도 영원히 남기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그는 영원히 남기겠다고 주체사상을 들고 나왔습니다. 아버님이 주장하는 주체사상과 김일성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면 그의 부모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적의 개념을 갖고 가면 판도가 어그러집니다. 수평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을 마치 40년 전에 잃어버린 형님같이 생각하는 동생의 자리에 서서 하늘 앞에서 서로가 적개심이 없이 환담을 할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고해야 될 때에는 충고도 해야 됩니다. 형님이 잘못했는데도 ‘형님, 괜찮습니다!’라고 해서는 하늘이 정의의 자리에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수대의사당에 가서 ‘주체사상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주의가 아니면 세계의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붉은 왕이 되어 총칼을 가지고 지금까지 해 나왔지만 이제는 맨 마지막의 벼랑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벼랑에서 시작해서 반대의 자리로 올라왔습니다. 김일성은 한반도 북쪽의 손바닥만한 땅에서 주체사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버님은 전 인류가 사는 지구성 전체 앞에 하나님주의를 주장해서 공인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 핍박의 검은 구름은 사라지고 환성과 환영변도의 풍토만이 남았습니다. (226-092, 1992.02.02) p. 861

 

13 내가 두익사상을 놓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두익사상은 하나님주의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우주의 근본문제부터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철학이란 인간의 지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려서는 종교도 철학도 혼란뿐입니다. 최후에 인간이 찾아야 할 것은 종교를 통하든 철학을 통하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볼 때 인간은 하나님, 근본을 찾아 나왔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통일사상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통일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의 근본은 하나님과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은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중심삼고 그 이상을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지으셨느냐? 여기에서 진화론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론은 진화론에 앞서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을 보면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동물세계를 보면 수놈과 암놈이 있고 식물세계를 보면 수술과 암술이 있습니다. 광물세계, 분자세계를 보면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있습니다. 원자세계를 보면 양자와 전자가 있는데, 본래부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될 것을 전제로 하여 창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1.11.30. 북한 평양)

 

14 내가 북한을 방문해서 만수대의 사당에 갔을 때 거기에 모여 있는 당간부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주체사상이 뭐냐? 인간 생애를 보면 80년도 못 살지 않느냐? 40년의 역사를 통해서 세운 그것이 정의가 될 수 있느냐? 손바닥만큼도 안 되는 곳에서 아무리 주체사상을 통해 강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주의가 옳은 거야!’라고 당당하게 선언했습니다. 목숨을 건 것입니다. 그 나라의 한가운데로 혼자 들어가더라도 공포감에 싸여서 미적거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한 것입니다.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천하를 가르는 한판의 대승부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배포가 있는 사람이 이깁니다. 김일성은 역시 사나이다운 사나이였습니다. 세 번씩이나 자기 비서진이 ‘문 총재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만나 안 됩니다.’라고 보고했는데도 그때마다 김일성은 ‘그러니까 내가 만나야 된다.’고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227-040, 1992.02.10) p. 862

 

15 남한이 아벨이라면 북한을 가인으로 생각하고 위하고 투입하면서 하나님같이 잊어버려야 됩니다. 남한 국민이 북한 주민의 2배가 된다고 하니 두 가정이 한 가정씩만 소화하면 되는 것입니다. 국민끼리 형제처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된 나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 방안은 이런 원리원칙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나에게 맡기면 문제없습니다. 내 말대로 했으면 정상회담 같은 것은 다 끝났을 것입니다. 김일성이 나와 약속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제 형제지간으로 당신을 형님이라 하고 나는 동생이라고 합시다. 동생은 문선명, 형님은 김일성, 이렇게 하겠소, 안 하겠소?’라고 제의했는데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접견실에서 현관까지 100미터가 더 됩니다. 거기에서 나올 때 ‘형님, 손 내라우.’라고 했습니다. 그 손을 누구도 못 잡았었는데, 내가 잡아서 비비고 지지더라도 불평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245-149, 1993.02.28)

 

16 김일성과 내가 만난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한번 보십시오. 나와 김일성의 얼굴과 자세를 보면 누가 더 늠름하고 누가 주체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끌고 다녔지 김일성의 안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손이 좀 떨리고 사지가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7년 위로 80세가 넘었으니까 형님뻘이 되지만 내가 붙들어서 끌고 다녔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 주변에 있던 보안 책임자들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릅니다. 김일성의 몸이 다치기라도 하면 사형이라는 것입니다. 즉결처분입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의 신경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끌고 다녔지 끌려 다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53-290, 1994.01.30)

 

17 김일성이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북한에 가기 8개월 전부터 정보를 다 수집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포도 크지만 솔직했습니다. ‘이러이러한 보고를 받았습니다.’라고 솔직히 나에게 다 얘기했습니다. ‘배포가 큰 줄 알았더니 왜 이러냐?’고 반말도 하고, 맨 나중에는 형님 동생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이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언제나 뒷짐을 지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백두산 그림이 있는 자리에 서서 찍었다고 합니다. 그 부하들이 하는 말이, 북한 역사 이래 김일성이 상대의 손을 잡 사진을 찍은 것은 내가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하나될 수 있나?’라고 당에서도 문제가 되었고, 북한 전체에서도 문제가 된 것입니다. (239-042, 1992.11.23) p. 863

 

18 김일성이 80세가 될 때까지 이만 한 배포를 가진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만날 때 원수를 만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만나거나 과거에 가장 친했던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세계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도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227-077, 1992.02.10)

 

19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사탄세계의 재림주형 인물인 김일성을 조건적으로 굴복시키고 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김일성이 나에게 ‘문 총재가 오겠다면 문 총재의 고향에 내가 사는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짓겠소.’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자기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이오?’라고 하니까 김일성이 ‘그러고 말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231-084, 1992.05.31)

 

20 김일성은 사탄세계의 재림주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김일성이 부모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형제의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굴복시킨 것입니다. 장자권을 복귀해서 굴복시켰기 때문에 부모권복귀 기반 위에 김일성을 굴복시킴으로써 부모권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부모권을 복귀함으로써 왕권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새로운 왕권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왕권을 중심삼고 황족이 지상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부모 된 완성한 아담 해와가 왕권과 황족권을 못 갖추었기 때문에 그것을 향하여 전진해야 됩니다. (235-239, 1992.09.20)

 

21 내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을 때 그에게 ‘당신을 형님으로 삼고 나는 동생이 되었지만, 동생의 말을 들어야 돼요.’라고 했습니다. ‘형님의 사상으로는 세계를 요리할 수 없지만 동생의 사상으로는 세계를 요리할 수 있소,’라고 들이댄 것입니다. 한보다 내가 소련이나 중국에 더 큰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한은 나를 반대해도 김일성 자신은 나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246-268, 1993.04.18) p. 864

 

22 내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왔는데, 놀라운 사실이 뭐냐? 김일성의 오촌 조카 되는 사람이 나한테 이야기하기를, 내가 오기 전에 북한에 있는 영통인들, 점쟁이들한테 사진을 가지고 감별을 받았는데 ‘이분은 절대 배신하지 않고 북한에 이익이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김일성이 환영하고 이렇게 만나게 됐다고 얘기했습니다. 김일성이 간부들을 통해 그렇게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김일성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문 총재님을 최고 간부들이 존경할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라고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267-161, 1995.01.05)

 

23 김일성의 부하들이 아버님이 참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을 내가 감옥살이하던 흥남 땅에서 만났습니다. 김일성의 한 부하가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못하겠다고 한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흥남에서 만나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원하는 대로 흥남에 가서 만나게 되었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에서 만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복판에 가서 만난 것입니다. 그것이 다 탕감복귀입니다. 북한 땅에서 고생한 모든 것, 지금까지 하늘섭리의 모든 것이 탕감복귀되는 것입니다. (225-189, 1992.01.20)

 

24 내가 북한에 갔을 때 김일성이 말하기를 ‘당신이 말하는 가인 아벨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아벨권 남한이 책임을 못하고 북한이 책임을 하게 될 때에는 남한의 복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문 총재의 이론적 관이 아니오?’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되겠습니까? 놀라운 것입니다. ‘문 총재 당신이 온다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겠소. 내가 살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서약서를 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수첩에 다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인을 다 받아 왔습니다. (232-048, 1992.07.01)

 

25 중국에 있는 한씨라는 사람이 아버님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북한을 다녀온 후에 중국에 있는 한국대관에서 그 사람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는 대사관에서 깜짝 놀라더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대사관에서 ‘문 선생님이 북한에서 사상 처음으로 그렇게 큰일을 하셨다는데 그렇게 배포있게 이야기한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거기에서 당 간부들을 교육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지금까지 나쁜 편견을 가지고 대했었는데 이제는 아버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아버님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교육재료를 만들어서 4일간 교육을 했다는 보고도 받고 있습니다. 아버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도록 그랬다는 것입니다. (227-135, 1992.02.11) p. 865

 

26 일찍이 나는 중국의 문을 열었고 소련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북한의 문만 열면 됩니다. 3만쌍 국제축복결혼식을 화제로 해서 내가 ‘일성이 형님, 3만쌍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갈 텐데 휴전선을 열 자신이 있소?’라고 하니까 ‘있고말고, 있고말고! 야, 그거 멋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비화입니다. 김일성이 3만쌍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텔이 없잖소?’라고 하니까 ‘원산의 송도해수욕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솔밭에 수십만이 들어갈 수 있소. 그러니 10명당 텐트 하나씩만 가지고 오면 만사가 해결이오.’라고 했습니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그곳으로 먹을 것을 나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원산항을 열 테이까 전부 배로 실어 나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남한 정부와 절충하니까 당국자가 ‘큰일 납니다. 나라의 위신이 뭐가 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통일보다도 나라의 위신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제동을 거니까 오히려 서로의 위신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00여 쌍만 갔다 왔습니다. (239-044, 1992.11.23)

 

27 김일성이 ‘3만쌍 국제축복결혼식을 진짜 하느냐?’며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3만쌍을 어떻게 결혼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3만쌍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3만쌍 결혼식을 하고 나서 그 사진을 한번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사람을 시켜서 이번에 3만쌍 결혼식 사진을 가지고 가서 김정일과 김일성에게 보여 주라고 했습니다. 하여튼 빠른 시일 내에 휴전선을 열어야 됩니다. 김일성이 배포도 크지만 사나이로서 됐더라는 것입니다. 김성을 구슬려서 휴전선을 열어야 하는데, 그 무기가 무엇이냐? 축복결혼식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김일성이 나와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성이 형!’이라고 하면서 세 번씩이나 다짐을 받았습니다. 식당에서부터 송별하는 광장에까지 손을 잡고 나오면서 ‘형님, 동생을 무시하면 안 돼요!’라고 하니까 ‘아이고, 나도 그만한 약속은 지킬 줄 아는 사람이오. 무엇을 원하는지 한번 말해 보소!’라고 했습니다. (239-042, 199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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