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제통문, 수심대, 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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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통문, 수심대, 파회

연송 김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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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나제통문(羅濟通門)

 

덕유산 자락에는 무주 구천동계곡이 있다.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았다고 구천동이라는 말도 있고, 성불한 불자가 구천 명이라 해서 구천동이 됐다는 말도 있다.

'아홉'은 많다는 뜻이고 천() 또한 많다는 뜻이니 굽이가 험하고 깊은 골짜기라는 말도 된다.

 

이곳에 있는 나제통문의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의 인공동굴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에 위치하며 덕유산국립공원에 있는데 이 문이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1경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추정되고 굴이 생기기 전에 석모산에는 무풍면과 설천면을 오가던 사람들의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 개발 등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굴을 뚫었다고 하는 나제통문은 가슴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을 가로지른 산줄기의 암벽을 뚫어 만든 문이며, 문위에 “羅濟通門(나제통문)“이라는 글자를 새겨져 있다.

석각으로 조성된 나제통문 현판은 전북이 낳은 서예의 대가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1903~1999) 선생이 1976년에 썼고 나재통문 앞쪽에 있는 "德裕亭(덕유정)"의 현판도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이다.

 

나제통문은 1910년경 일본 사람들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용이하게 옮기고 그 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신속히 옮겨가기 위하여 뚫은 굴로 당시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였다고 한다.

 

라제통문은 본래 “기니미굴”로 불리다가 1950년경 안성면장이던 김철수옹이 무주군의 향토지인 “적성지”에 “라제통문”으로 불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이 관문의 이름이 라제통문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무주군의 행정기록을 적어놓은 '무주군청지 적성지(赤城誌)'에 당시 공사를 한 작업일지가 적혀있다.

당시에 '기미니굴'을 중심으로 위쪽마을은 '기니미 마을'로 아래쪽은 '이미리 마을' 이라고 불렀다.

이 굴의 명칭이 바뀐 것은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부터 인데 '기니미굴'을 '나제통문'으로 바꿔 불렸다고 한다.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상임연구위원인 역사학자 오재성선생은 “이제는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것을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놀랍다” 며 '불과 몇 십년 전 일도 이렇게 왜곡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 역사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47년생인 오재성은 나제통문 동쪽 무풍면에 살았다.

1961년 명승고적 33군데를 골라 지도를 만들어 그 명승지마다 이름 적은 종이를 만들어 핀을 꽂았다.

 

사진을 찍고 관광지도를 다시 만들었는데 무주 구천동 33경은 그때 만들어졌고, 1962년 4월 20일 구천동 33경이 당시 교통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10대 관광지에 선정됐다.

 

그때 그 종이판을 만들고 핀을 꽂은 사람이 오재성이었다.

그가 말했다. "가난했으니까, 무슨 역사의식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었다.

기니미굴이라고 하면 누가 오겠는가. 그냥 관광객 모으려고 근사하게 나제통문이라고 이름 붙인 거지. 돈벌이를 위해 만든 이름이 역사가 되더니 1996년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에 당당하게 나제통문 사진이 등장하고 삼국시대 대목에 나제통문은 1920년대 건설된 통로다.

 

오재성이 말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1980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 가서 내가 “나제통문” 이름 붙인 거다 그러니까, 아니래. 삼국시대 것이래. 그래서 뚫은 것이 일제강점기 뚫었고, 목격한 사람도 다 있다, 그렇게 난리를 치러서 1990년대 들어서야 교과서에서 사진이 빠지게 되었다.

 

나제통문 반대편 열녀 경주김씨지비

굴 양쪽에 나제통문 현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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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대(水心臺), 파회(巴洄)

 

무주구천동에는 33()이 있는데 그중에서 12경 명승인 수심대가 있고 그 아래에 제11경 파회(巴洄)가 있다.

 

수심대는 옛 신라의 고승 일지대사가 여기의 맑은 물 속에 비친 모습을 보고 도를 깨쳤다고 하여 이곳 이름을 수심대(水心臺)라고 하였다.

물이 돌아 나가는 곳이라 하여 수회(水回)라 부르기도 한다.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루고 병풍처럼 두른 모습이 금강산을 연상시킨다 하여 소금강 또는 금강봉이라고 부를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수심대와 파회 사이 걔곡에는 이곳을 조망하기 위해 다리가 놓여져 있다.

 

 

수심대 바로 아래에 명승이자 무주구천동의 제11경 파회(巴洄)가 있다.

()는 쉽게 말해 크게 물이 돌아가는 물돌이 지형으로 안동 하회마을의 회()도 같은 한자를 쓴다.

무주 구천동 33경 중 11경인 파회는 고요한 소에 담겼던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지며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키다 기암에 부딪히며 제자리를 맴돌다가 기암 사이로 흘러들어 가는 곳으로 바위에 파회(巴洄)’라고 새겨져 있다.

파회는 구천동 3대 명소 중 하나로 고요한 연못에 잠겼던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져 암석에 부딪치며 뱀 모양을 그리는 보기드문 경관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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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태권도의 성지 태권도원 - 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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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반디랜드 / 무주곤충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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