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민씨 송식 지묘 (姑母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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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 內系外系

여흥민씨 송식 지묘 (姑母夫)

연송 김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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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 민씨(驪興 閔氏)는 경기도 여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여흥(驪興)의 고려시대 지명인 황려 민씨(黃驪閔氏)라고도 하였다.

고려 인종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민영모(閔令謨)의 증조부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여흥민씨 시조 민칭도(閔稱道)의 증손자인 민영모(閔令謨)가 1138년(고려 인종 16)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태자태사(太子太師)를 역임하였다.

시조 이전에도 1031년(덕종 즉위년)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임명된 민가거(閔可擧) 등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시조 이전의 계보는 알 수 없다.

민영모가 현달하자 그의 증조부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추대하여 민씨 족보가 만들어 졌다.

 

백운거사 이규보가 민식(閔湜)에게 올린 시 속의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는 문장에 근거하여 노(魯)나라의 공자의 제자인 민손<閔損, 기원전 536년 ~ BC 487년 = 민자건(閔子騫)>의 후예라는 설이 있고, 경기도 여주 향리에 있는 영월루 민굴(閔窟)에서 나온 것이 시초라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 민씨 문중에서는 민굴설(閔窟說)은 태고시대(太古時代) 신화(神話)에 나오는 신빙성(信憑性)이 부족한 말이며, 중국(中國)에서 나왔다는 설(說)이 문헌상(文獻上) 증거(證據)가 있으므로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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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의 지명은 고구려의 골내근현(骨內斤縣)이었다가 신라 경덕왕이 황효현(黃驍縣)이라 고쳤다.

고려 초에 황려현(黃驪縣)으로 개칭하고, 1257년(고종 44) 영의현(永義縣)으로 개칭하였으며, 1305년(충렬왕 31)에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종 때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친향이라 여흥부(驪興府)로 승격되었다.

1469년(예종 1)에 여주목(驪州牧)으로 개칭하고, 1896년 경기도 여주군이 되었고, 2013년에 여주시로 승격되었다.

 

민송식 2022.04.04(양력) 소천, 2022.04.07 선영 안장

/ 配(배) 안산김씨 일순 가묘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용산면 부상리 여흥민씨 선영

 

안산김씨 일순 가계도

- 고조부모 : 호원 / 전주이씨

- 증조부모 : 락삼 / 개성김씨, 상산김씨

- 조부모 : 도섭 / 경주이씨

- 부모 : 기형 / 경주이씨

- 오빠 : 범진, 광진, 익진

- 언니 : 용순(김해 김재경)

- 본인 : 일순(여흥 민송식)

 

안산김씨 일순 부모 묘소

 

김기형 사위(婿) 민송식

 

여흥민씨 송식 영정사진 (2022. 4. 7)

 

이 곳 선영은 할미꽃이 많이 피어 있는데 양지바른 곳에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이 곳이 명당이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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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장례식장 8호실

故人 : 성도 민송식 (88셰)

대표상주 : 민병준 (아들 병진, 병희 / 딸 화복, 옥희, 옥순)

 

삼가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민씨(閔氏)의 유래(由來)는 양설(兩說)이 있는데 일설(一說)은 중국(中國) 민자건(閔子騫) 휘(諱) 손(損)의 자손(子孫)이라 했고, 일설(一說)은 경기도(京畿道) 여주(驪州)에 있는 민굴(閔窟)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민굴설(閔窟說)은 태고시대(太古時代) 신화(神話)에나 나오는 신빙성(信憑性)이 없는 말이며 중국(中國)에서 나왔다는 설(說)은 시대적(時代的)으로 보나 문헌상(文獻上) 증거(證據)가 있어 과학적(科學的)이라고 해석(解釋)된다.

 

그 문헌증거(文獻證據)로는 고려 이상국 규보씨(高麗 李相國 奎報氏)가 상시민공식(常侍閔公湜)에게 올린 시(詩)에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고 하여 세가의 전해온 벌열은 계통이 비후인 민자건(閔子騫)에게서 나왔다고 하였고, 또 학자(學者)들이 민씨(閔氏)를 문장(文章)으로 표시(表示)할 때는 요요 화주(華胄)라 하고, 문수화벌(汶水華閥)이니 문수후예(汶水後裔)라고 많이 쓰고 있다.

*** 요요 화주(華胄)는 멀리 중국(中國)에서 나온 민자건(閔子騫)의 자손이라는 말이다.

*** 문수(汶水)는 논어(論語)에 민자건(閔子騫)이가 오기재문수지상(吾基在汶水之上)이라 하는 말에 근거한다.

 

또한 일부문헌(一部文獻)에는 「…민씨(閔氏) 계출중국농서(系出中國瀧西) 금지감숙성(今之甘肅省) 난주야(蘭州也) 주경왕시(周敬王時) 서기(西紀)1010년전(年前) 유민손이한무제시(有閔損而漢武帝時) 유민중숙지고기야(有閔仲叔之古記也) 아여흥민씨지시조(我驪興閔氏之始祖) 민칭도이(閔稱道而) 고려상의봉어(高麗尙依奉御)…」란 문헌(文獻)으로 보아 중국(中國)에서 나왔다는 말이 신빙(信憑)할 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번역)

「민씨는 지금의 감숙선 난주인 중국 농서에서 이어 나왔다.

서기 1010년전에 주나라 경왕때 민손이 있었다는 한무제때 민중숙의 옛기록이 있다.

우리 여흥민씨의 시조는 민칭도인데 고려 상의봉어 이시다.」

 

시조(始祖)의 연대(年代)는 고려중엽(高麗中葉)인데, 그 후(後) 자손(子孫)들이 번영하여 고려조(高麗朝)에는 삼대명문(三大名門)으로 일컬어 왔고, 조선왕조(朝鮮王朝)에 와서는 왕비(王妃)가 네 분이 탄생(誕生)하시고 정승(政丞) 판서(判書)등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즐비하매 사대명문중(四大名門中) 두번 째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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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 민씨(驪興 閔氏)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고려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냈다.

2세 민세형(閔世衡), 3세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로 이어오다가 4세손 민영모(閔令謨)가 1138년(고려 인종 16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랐다.

 

민영모의 장남 민식(閔湜)이 1167년(의종 21) 과거에 급제하여 형부상서에 이르렀고, 차남 민공규(閔公珪)는 1177년(명종 7)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냈다.

민영모 이후 고위 관료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고려사 충선왕조에 왕실과 혼인이 가능한 재상지종 가문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민식(閔湜)의 증손 민지(閔漬)가 1266년(원종 7)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1325년(충숙왕 12)에 첨의정승(僉議政丞)에 이르렀고, 1326년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에 봉해졌다.

 

민공규(閔公珪)의 증손인 민종유(閔宗儒)는 1309년(충선왕 1)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하고, 1319년(충숙왕 6) 복흥군(福興君)에 봉해졌다.[7] 민종유의 아들 민적(閔頔)은 충혜왕 때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에 올랐다.

 

민적(閔頔)의 후손은 4명의 왕비를 배출하며 조선 왕실의 외척으로서 명문의 위상을 유지했다. 민적(閔頔)의 셋째 아들 민변(閔抃)이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지고, 민변의 아들 민제(閔霽)의 딸이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元敬王后)가 되었다.

 

태종의 왕권강화책으로 외척인 민제의 네 아들이 제거되면서 가문의 위세가 위축되었으나 세종 이후 복권되어 민적의 둘째 아들인 민유(閔愉)의 후손 중에서 왕비를 다수 배출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42명, 왕비 2명, 황후 2명, 상신(相信) 12명, 종묘배향공신 6명을 배출하였다.

 

과거 급제자수는 민식-민지 계열이 민공규-민종유 계열보다 다수를 배출하였으나, 3품 이상의 당상관 배출은 민공규-민종유 계열이 월등히 우세하였는데 이는 조선조 배출된 4명의 민씨 왕비 모두 민공규-민종유 후손이었기에 과거보다는 왕비 배출로 인한 인척 등용이 더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적(閔頔)의 12세손인 민광훈(閔光勳)을 파조로 하는 삼방파(三房派)에서 민광훈의 셋째 아들인 민유중(閔維重)의 딸이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되면서 민유중은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에 봉군되었고, 민유중의 형인 민정중(閔鼎重)이 좌의정에 올랐으며, 민정중의 아들 민진장(閔鎭長)은 우의정에 올랐다.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閔鎭厚)는 좌참찬(左參贊)을 거쳐 개성부유수에 이르렀고, 민진후의 동생인 민진원(閔鎭遠)은 영조 때 노론의 영수로서 좌의정에 이르렀다.

 

민진후의 현손인 민치록(閔致祿)의 딸이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가 되면서 여흥 민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閔台鎬)의 딸은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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