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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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생활/유명 화가의 미술품

고흐의 대표작

신선 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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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고호-  후기 대표작 

 

지난 번에 이은 후기 대표작들.

 

 

출처 아트 talk! talk! | 아트톡톡
원문 http://blog.naver.com/guarneri/30024357720
 

 

 

The Starry Night. Saint-Rémy. June 1889. Oil on canvas.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NY, USA

 

 

 

 

L'Arlésienne Madame Ginoux with Books. November 1888. Oil on canva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Branches of Almond tree in Bloom. Saint-Rémy. February 1890. Oil on canvas.

 Vincent van Gogh Foundation,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the Netherlands

 

 

 

 

 

  Sower with Setting Sun (After Millet). June 1888. Oil on canvas.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Red Vineyards of Arles. 1888. Oil on canvas.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Portrait of Père Tanguy. 1887.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Road with Man Walking, Carrige, Cypress, Star and Crescend Moon. Auvers-sur-Oise. May 1890.

Oil on canvas.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Harvest Landscape. June 1888. Oil on canvas. Vincent van Gogh Foundation,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the Netherlands

 

 

 

 

 

Irises. Sait-Rémy. May 1889. Oil on canvas. J.Paul Getty Museum, Malibu, CA, USA

 

 

 

 

 

 Wheat Field with Cypresses. Saint-Rémy. June 188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출처 아트 talk! talk! | 아트톡톡
원문 http://blog.naver.com/guarneri/30024530687

파리에 온 고흐가 그 때까지 최고로 꼽고 있는 화가는 밀레였다. 

마네 그림을 봐도 별로였고, 들라크루아 작품에서도 혁신적이라 여겼지만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고흐는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 대해 처음 보면 말이야 실망스럽고 추하며 되는 대로 잘못 그렸고 색도 형편없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피사로를 만나 인상주의를 알게되고, 쇠라의 점묘법도 배웠다. 그의 보색 법칙은 나중에도 곧잘 그림에서 등장한다.

파리에서 고흐는 수많은 꽃그림과 정물들도 그렸다. 이들은 모두 고흐가 원하던 색을 발견하기 위한 무수한 실험들이었다.

 

화상이었던 탕기를 만난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배경은 당시 유행하던 일본풍으로, 그리고 탕기 영감의 선량한 성품과, 그의 미술에 대한 깊고도 거룩한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인상주의와 점묘법, 일본 화풍을 터득했지만, 더 이상 파리는 그에게 평온한 곳이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환경을 원했다.

더 밝은 하늘 밑에서 자연을 관찰한다면 일본인들이 느끼고 그렸던 방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아를로 떠났다. 아를에 도착하여 단순화한 선과 더 과장된 색채에 메달렸다. 일주일만에 그는 새로운 눈을 가졌다

 

"남프랑스의 자연은 북쪽의 팔레트로는...정확하게 그릴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겠지. 이제 팔레트는 전적으로 화려해.

하늘색, 핑크, 오렌지, 주황, 진노랑, 연두 맑은 포도주빛, 자주. 하지만 이 모든 색채를 강하게 함으로써 다시금 차분함과 조화를 얻게 돼.

 아를의 풍경은 그를 몰아부쳤고, 그는 엄청난 속도로 캔버스를 정복해나갔다.

 

"나는 파리에서 배웠던 것에서 벗아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나 자신을 활발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더 임의적으로 채색하곤 하니까"

 

 

"나는 이 그림에서 빨강과 초록으로 인간의 무서운 열정을 표현하려고 했어. 실내는 핏빛과 칙칙한 노랑에 복판에는 초록 당구대가 놓여있지. 오렌지와 초로 불빛이 타오르는 레몬 등이 네 개 걸려 있고. 여기저기에서 가장 낯선 빨강과 초록, 보라와 파랑이 부딪치고 대비되지..

 

 

"내 침실일 뿐이야. 색으로만 모든 것을 그렸지. 그렇게 단순화해서 사물에 위대한 스타일을 부여하려고. 여기에서는 휴식과 취침을 암시하려고 할 뿐이지. 가구의 굵직한 선은 방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해야 하겠지.

 

  

(고흐는 나중에 생 레미에서도 2점의 이 그림을 그린다. 오르세에 있는 건 생 레미에서 그린 것이다.)

 

고흐가 원한 것은 색의 조합을 통해서 다른 분위기들을 표현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9월에 그는 야경에 매혹되어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다. 밀짚모자에 초들을 매달고..

 

 

푸른 밤공기 가스등 불빛에 비친 카페. 밤의 광장의 정경과 그효과를 그리는 일에 나는 열중하고 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10월에는 고갱이 도착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고갱은 포도 따는 그림을 그렸다. 이 고흐의 붉은 포도밭은 생전에 팔린 유일한 그림이 되었다.

 

 

둘은 열심히 자신들의 세계를 추구해 나갔다. " 고갱과 나는 초상과 그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치열한 논전을 벌여, 진이 다 빠질 정도로 긴장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질 지경이었지".

고흐는 친절한 이웃 지누 부인을 아를 전통복 차림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 노란색과 부인이 입고 있는 보라는 보색관계로 고갱을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갱이 고흐 초상화를 그린 날 저녁, 드디어 사건은 터졌다. 겨우 2달만에 고갱은 다시 되돌아가버렸다.  한 쪽 귀를 자른 고흐는 병원에 입원했고

2주 후인 1889년 1월 7일 퇴원했다. 우편집배원 룰랭이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고흐는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봐 두려워했고, 결국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신부는 테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때때로 그를 강하게 흔드는 병세의 자취 같은 것은 없는 듯합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놀랍도록 솔직하고 단순하게 말합니다. " 신부는 생 레미를 권유했고, 고흐는 찬성했다.

 

1889년 5월 8일, 고흐는 생 레미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다. 수용소는 밀밭과 포도밭, 올리브 숲에 둘러싸인 비옥한 평야 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붓꽃과 월계수가 활짝 핀 화단도 있었다. 수용소의 기록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서른 여섯 살의 네덜란드 출신 고흐가 시립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환각과 환청의 심한 광증으로 시달리던 중 자신의 귀를 직접 위해하게 되었음을 확인한다. 현재 그는 이성을 되찾은 듯 보이지만 독립적으로 살아갈 용기와 힘이 없다고 느껴 자발적으로 이 수용소 입소를 요청했다. "

 

수용소의 환경은 쾌적하지도, 치료에 도움을 받지도 못했지만, 고흐는 그림만을 생각했다.

한 달 쯤 지나서 야외작업이 허락되었고 또 다시 고흐는 그림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에 생 레미 정원들을 그렸고, 다음엔 삼나무에 매달렸다.

"아직도 삼나무에 매달려 있다. 그것들을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싶어. 푸르름이 아주 독특해."  

 

   

 

 

                

 

생 레미에서도 고흐의 병은 여전한 것이었다. 아를에서 만큼은 아니었지만, 자살충동과 경악스런 환각이 뒤따랐다.

"이런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나는 고통과 신음에 대해 겁에 질린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겁이 나지만, 어쩌면 바로 이런 비겁함이 이제 내게 열실히 작업하게 하지"

 

생레미에서 그린 그림들에서  고흐는 갈색과 칙칙한 빛깔에 대한 특별한 집착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분홍과연두의 부드러운 색조를 선호했다.

그러나, 생레미를 떠나기 얼마전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다.

노란 별빛과 오렌지색 달빛으로 흥건히 접은 깊은 파란 하늘 속으로 격렬하게 솟아오른 삼나무.

 

 

또한 고흐는 들라크루아,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묘사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고흐는 붓을 놓지 않았다. 또 발작이 찾아오고

진정 된 후 그는 아몬드 나무를 그렸다. 어린 조카에게 줄 것이었다.

 

 

1여 년간의 고독한 수용소 생활은 그로 하여금 외로움을 느끼게 했고, 그는 다시 북쪽으로 가고 싶었다. 1890년 5월 16일, 고흐는 수용소를 떠나

5월 17일 파리에 도착했지만, 파리의 어수선함은 그에게 무리였다. 이미 예기해 놓은 대로 그는 이제 가셰 박사가 있는 오베르로 갔다.

오베르에 도착해서도 고흐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애썼다.

" 오베르는 매우 아름다워. 진짜 시골의 전형적이고 그림 같은 장중한 아름다움이지"

60대 초반인 가셰박사는 아마추어 동판화가이자,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있었고,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었다.

고흐는 가셰박사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초상을 그리고 있어. 푸른 코트에 파란 코발트빛 배경으로. 자주빛 꽃이 핀 디기탈리스와 노란 책이 놓인 붉은 탁자에 기대고 있지"

 

 

또한 성당도 그렸다.

"순수한 코발트 빛인 진한 파란색 하늘을 바탕삼아 보랗빛으로 보이지. 색유리창들은 울트라마린 반점들을 닮았고, 지붕은 보랏빛인데 일부 오렌지색이 섞였어. 배경에는 활짝 핀 풀꽃들과 장및빛 모래가 햇살을 받고 있고..

 

 

오베르에서 고흐는 만족했다 " 아를로 가기 이전보다 내 붓놀림에 더 자신이 생겼어"

빈센트의 작업은 소모적일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매일 거의 한 점씩 때로는 두 점씩의 그림을 그렸는데, 가끔 여러 점을 동시에 그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들은 헉간같은 더럽고 옹색한 구석에 처박아졌다. 누구도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7월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언덕 아래까지 펼쳐진 밀밭으로 덮인 넓은 평원에 완전히 빠져버렸지요. 요즘 저는 차분하고, 너무 차분해서 원래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베르로 온 5개월 동안 그에게는 발작도 없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불안했다.

 

"요동치는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밀밭, 나는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망설이지 않고 표현했다"

 

 

7월 27일. 고흐는 테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총알이 박힌 가슴을 틀어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7월 29일 새벽 1시. 고흐는 테오의 팔에 안겨 지상에서 찾지 못한 영원한 안식을 얻기위해 떠났다. 

 

 

절대 고독 속에서, 자신의 정신병을 걱정하며,

늘 희망을 품지만 그와는 다른 현실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평범하기만한 

시골의 밀밭과 사이프러스에서 

고흐는 다채로운 색을 보았고, 자신의 감정과 영혼이 담긴

그림들을 뽑아내었다.

 

평온한 시골 들판이 이렇게 격렬한 감정을 담을 수 있음을

고흐를 통해서 알게 되고,

무심코 지나치던 들판을 보면 고흐의 그림이 오버랩되면서

그의 열정을 느끼게 된다.

 

 

 

 

Wheat Field,  Arles: June, 1888, Amsterdam, P. and N. de Boer Foundation

 

 

 

 

Wheat Field with the Alpilles Foothills in the Background, 반고흐 뮤지엄

 

 

 

 

 

 

Wheat Fields with Reaper at SunriseSaint-Rémy: early September, 1889, 반고흐뮤지엄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Auvers-sur-Oise: July, 1890, 반고흐뮤지엄

 

 

 

 

 

 

Wheat Stacks with Reaper, Auvers-sur-Oise: July, 1890,The Toledo Museum of Art


 

 

 

 

 

Green Wheat Field with Cypress, Saint-Rémy: mid-June, 1889,  Narodni Gallery (Prague)

 

 

 

 


Wheat Field with Cypresses at the Haute Galline Near Eygalieres, Saint-Rémy: late June, 1889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Wheat Field with Cypresses, Saint-Rémy: September, 1889, Collection Niarchos

 

 

 

 

 

Wheat Field with Cypresses, Saint-Rémy: early September, 1889, London: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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