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가볼 만한 곳 - 광주 역사민속박물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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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아! 그리운 南道

광주 가볼 만한 곳 - 광주 역사민속박물관 관람

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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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400명대를 오르내린다.  일부 교회관련 시설 ,병원 등에서 확진자가 집단으로발생되고 있고 지역 감염과 N차 감염도 꾸준히 발생되고 있다.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이 계속되어 무력감과 답답함이 쌓여간다. 코로나충장로 2가, 일본인 아오노 데이지로가 1910년 운영십진사지서불과 십진사지석비 십진사지서불과 십진사지석비 한 아오노상점의 술독 술병 일상의 피로도가 높아질 즈음 기분전환을 해주어야 한다. 오늘은 집 근처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관람하며 활력을 충전했다.

2021. 1. 14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전경

  주역사민속박물관, 시립미술관, 중외공원 등은 나의 놀이터다. 자주 이곳을 산책하지만 정작 박물관 관람은 하지 안했다. 코로나로 휴관일 때도 많았지만 실내 활동은 코로나 감염의 위험도가 높아 의식적으로 피해 왔다. 발열 체크, 방문기록 작성 등을 마치고 관람을 시작했다. 관람인원은 10명 내외다.

 

현관로비 대촌 칠석마을 고싸움 부조

  주역사민속박물관은 2020년 이름을 바꿨다. 그 이전까지 광주시립민속박물관으로 광주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박물관은 1층 남도 민속실, 2층 광주 근대역사실, 야외 전시장으로 나뉜다. 1층 남도민속실은 남도의 자연. 남도의 농업, 남도의 집, 남도의 어업, 남도의 시장, 남도의 예술 등 6개 꼭지로 전시하고 있다. 2층 광주 근대역사실은 광주읍성, 충장로, 금남로 등 3개 꼭지다. 

blog.daum.net/yyc5932/473

 

 

정월대보름, 광주칠석 고싸움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다.  정월대보름에는 약밥을 지어먹고 아이들은 연날리기, 바람개비놀이 등을 하고 어른들은 다리밟기, 더위팔기, 편싸움, 줄다리기 등을 한다.  또한 마을수호신인 당산

blog.daum.net

  

  1층 남도 민속실에는 서기 498년 광주를 뜻하는 무진주가 기록으로 나오고 1018년 고려 현종 때 전라도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다. 2018년 전라도 정도 1000년 행사를 전라도 3개 시도(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전라북도)가 모여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1896년 전라도가 전라남도와 북도로 분리된다. 그리고 1946년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고 1986년 광주광역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전라남도가 제주도, 광주광역시의 고향인 셈이다.

 

1 - 1. 남도의 자연

전금도가 새겨진 분청사기, 조선시대 전라도 지도(제주, 충남금산이 전라도에속함)

 

"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 바라보며

제주 어선 비려타고 해남으로 건너올 제..."로 시작하는 단가다.

 

1 - 2. 남도의 농업

 

쟁기 등 농기구, 알곡껍질을 벗기는 대통, 씨앗을 담는 그릇

  대통은 처음 본다(우상사진). 대통은 알곡의 껍질을 벗기는 도구로 벼를 넣어 돌리면 도정이 되어 쌀이 되는 나온다.

 

두례

 

1 - 3. 남도의 어업

 

뜰망배

  뜰망배는 1970년대까지 장흥군에서 사용하던 배다.

배꼬리에 지렛대를 세우고 그 끝에 그물을 달아 고기를 잡던 배다. 지렛대를 내려 물에 잠기해 고기를 가둔 후 그믈을

들어 올려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지렛대가 활처럼 휜다고 해서 궁선 또는 활배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 배도 처움본다.

 

 

1 - 4. 남도의 집

 

양반가의 집 좌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

 

1- 5. 남도의 예술

 

강진 김해김씨 상여

  상여는 죽은 자의 마지막 길을 안내하고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상례喪禮에 사용했다. 조선 후기부터 상여가 웅장하고 화려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강진 김해 김씨가 상여가 그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상여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여다.

 

 

 

나주반

 

 

 2층 광주근대역사실 관람을 시작했다. 전시실은 광주읍성, 충장로, 금남로 3개 꼭지로 나눠져 있다.

광주읍성은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있는 옛 전라남도청 자리에 동헌이 있었다. 읍성은 일제 감점기에 훼손되었지만 옛 자료를 근거로 모형으로 복원해 놓았다.

 

2-1. 광주읍성

 

광주읍성 복원도

 주읍성은 고려 말(14세기) 지금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에 오각형으로 축조된 성이다.

일제강점기인 1900~1910년대에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다. 둘레는 2.5km 높이 3m,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고 성 내부 면적은 축구장 4개의 넓이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광주 관아에는 약 200여 명의 사또가 거쳐갔다고 하며 1879년 광주 읍지에 따르면 인구는 27,000명이었다.

 

광주읍성 중심부 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

 

광주읍성의 관문인 절양루

 양루折楊樓는 광주읍성의 관문이었다. 현 충장로 5가와 독립로가 만나는 곳에 있었는데 이 건물 아래를 통해 서울로 가는 길이 나있어 공북루라고도 불렸다. "절양이란 버드나무 가지를 꺽는다" 인데 이별의 아픔과 재회의 만남을 의미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헐렸다고 한다. 현재까지 절양루가 있던 마을을 누문동이라 불린다. 그 이전에 촬영된 사진을 토대로 복원한 모형이다.

 

어고방목, 1798년 광주에서 3일간 치러진 과거시험에 합격한 57명의 명단. 전체28m
고정봉이 제출한 답안지

 

어사화
글씨 연습을 하던 서판

 

정지장군 갑옷 (보물 제336호)

  지鄭地(1347~1391)는 고려말엽 장군이다.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때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우리 나리 역사상 해군 창설을 주장했다. 해군 병사는 바닷가 사람들을 뽑아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장군이다. 정지 장군은 일본 왜구와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한다. 그의 무덤은 광주 망월동 경열사 안에 있다. 그때 갑옷은 중세 기자들의 갑옷과 비슷하다.

 

. 의병장 재봉 고경명의 친필

 주 충장로는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시호인 "충장공"에서 충장을 따서 붙인 가로명이다. 제봉로는 고경명의 호 제봉에서 따서 붙인 가로명이다. 광주에는 광주출신 장군이나 의병장 등의 호나 시호를 따서 가로명을 지은 곳이 많다.

 

 

 

  라도 의병은 1895년 시작되어 1908년 규모가 더욱 커지고 맹렬했다. 일본군에 비해 구식 무기지만 밝은 지형과 주민들의 도움으로 게릴라전을 펼친다. 무라다 소총은 일본이 1880년대 유럽의 소총을 본떠 만든 것으로 청일전쟁, 농학 농민전쟁, 한말 의병과 전투의 주력 무기로 사용했다. 의병들의 조총보다 훨씬 화력이 좋아 보인다.

 

일본이 사용한 무라다 소총
의병장 조덕균의 조총

 

1909년 일본군에 붙잡힌 의병장들, 사진 촬영후 처형

 

2 - 2. 일제강점기 충장로

 

 장로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600여 년의 세월을 품은 길이다.

조선시대 관아로 통하는 길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상가가 많이 들어섰다.

이 길은 청년 학생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이자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부르짖던 장소이기도 했다

 

1930년대 광주역, 역무원들이 쓰던 도구
광주우편국(1913년 설치), 광주우체국
충장로 거리와 광주극장(1935년 건립되어 현재까지 운영)

    일제강점기 충장로는 거의 일본인 상점으로 채워진다. 한국인 상점과, 중국인 상점(화교)은 불과 몇개에 불과하다.

광주우편국(현 광주우체국)이 1913년에 설치되고 광주극장이 1935년 세워져 지금까지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장로 2가 일본인 아오노 상점
아오노 상점의 술병들

 

 

  흥학관은 구 시청 사거리에 세워진 건물로 1921년 양림동 부자 최명구가 광주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 동창회관으로 기부한 건물이다. 이후 청년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중심 장소가 된다. 1960년에 헐렸다. 홍학관에서는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기린 영화 "이름 없는 별들(1950년 제작)"이 압축되어 상영되고 있다.

 

 

 

2 - 3. 해방 후 금남로

 

  금남로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충장로와 달리 일제강점기에 생겼다.

일본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1920년대부터 도로를 만들어 1930년대 완성한다. 일본 천왕의 이름을 따 명치정이라 불렸다. 해방 후 일제 청산 일환으로 명치정을 금남로로 바꾼다, 금남은 임진왜란 정묘호란때 활약한 광주 출신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군호인 금남 군錦南君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후 1968년 도청 앞 무덕진 이 헐리고 광장이 들어섰고 1971년 동복댐 건설을 축하하는 도청 분수대가 설치된다. 권력의 상징이었던 금남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저항 장소로 바뀌게 된다

 

 

 

 

 광주 식수원인 동복댐 준공을 기념하여 세운 도청 앞 분수대(1971년)가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 광장이 된다

 

 

 

 

 

 

3. 야외 전시장

 

 

상원장군과 하원장군

 

 시실 관람을 마치고 야외 전시장으로 나왔다.

날씨도 좋아 산책 겸 야외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야외전시 유물도 엄청 많다.

대표적인 전시유물은 상· 하원 장군, 십지사지 석불·석비, 태봉산 태실 , 물확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ㅠ기선호 정려

 

유기그릇 제조에 쓰인 물판

 

장독대

  가족들과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관람과 야외전시장을 산책했다.

광주의 역사와 민속들도 다시금 새롭게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지역 문화는 그 지역민들이 관심을 갖고 사랑하며    참여할 때 새로운 문화들과 융합되어 진화하게 된다.

 

십진사지 석불과 십진사지 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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